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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아웃브레이크, 모든 비밀주의와 싸워야 하는 이유

[칼럼]아웃브레이크, 모든 비밀주의와 싸워야 하는 이유

기사승인 2020. 03. 04.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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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석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맞아, 바이러스감염사태를 소재로 한 영화 중 이미 고전에 속하는 ‘아웃브레이크’를 새삼스레 다시 챙겨보았다. 비교적 오래된 영화지만 잘 짜인 서사구조 등 개봉당시 흥행요소가 충분해 보였다. 그런데 정작 이 영화가 필자에게 흥미롭게 다가오는 지점은 바로 바이러스를 다루는 집단이 군(軍)이라는 사실이다.

군대라는 조직의 특징은 일사불란한 명령체계와 비밀을 유지해야 하는 폐쇄성에 있다. 적에게 발각되지 않고 작전을 효과적으로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이같은 특성으로 군대 내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를 자체적으로 무마시켜버리는 등 여러 가지 폐단이 벌어지기도 한다. 바로 이점을 아웃브레이크는 모티브로 삼고 있다.

아웃브레이크의 내러티브는 패턴을 반복해서 벌어지는 비극을 영웅서사의 방식으로 극복하는 신화적 형식을 취한다. 아프리카 자이르에 주둔한 용병캠프에서 이유 불명의 역병이 발생한다. 사태수습을 위해 급파된 미군은 구제를 위해 의료지원을 하는 대신 캠프가 소재한 마을 전체를 폭격해 몰살시키는 어마어마한 결정을 내린다. 치명적 바이러스가 확산되지 못하게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그 속내는 사실 생물학무기개발을 목적에 두고 있다. 백신을 개발하고도 사람을 살리기보다는 효과적인 무기로 활용하기 위해 모든 것을 비밀에 붙인다.

봉인된 진실은 동일한 방식으로 비극을 반복하기 마련이다. 영화의 플롯에서는 30년 시간차를 두고 끔찍한 일이 다시 발생한다. 우여곡절 끝에 미국으로 유입된 변종바이러스에 대해 대처하는 방식은 두 가지다. 투명한 역학조사를 통해 병마와 싸우려는 의료진들의 고군분투와 조직의 이해관계에 따라 비밀을 은폐하려는 세력이 벌이는 모략은 사사건건 서로 부딪힌다. 군과 같이 폐쇄적인 집단의 최종선택은 모든 것을 제로상태로 돌리려 한다. 그러나 그 방법이란 파괴적일 수밖에 없다.

군은 집단적인 발병이 일어난 작은 도시에 폭탄을 투하해 몰살시키려는 작전계획을 세우고 마침내 통수구권자의 결재를 얻어낸다. 힘을 잃게 된 의료진들 역시 감염자들과 함께 화염에 사라질 운명에 놓이게 된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는다. 물론 영화는 비극으로 끝을 맺지 않는다. 할리우드 특유의 전개로, 주인공들은 자기희생을 불사하고 거대한 골리앗과 싸워 마침내 이긴다. 다윗의 후손들이 자주 선택하는 엔딩이랄 수 있다. 뻔해 보이지만 나쁘지 않다.

사실 바이러스가 다른 무엇보다 두렵게 다가오는 이유는 보이지 않기 때문인데, 만약 눈에 보인다면 우리가 느끼는 공포는 절감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조직을 보호하기 위한 집단의 대처라는 것이 엄폐와 은폐와 같은 비밀주의 방식을 취할 수밖에 없기에 비극은 반복된다. 비극을 끝내는 일은 진실을 덮어버리기보다 끝까지 파헤쳐 드러내는 방식이 돼야만 가능하다.

코로나19 유입초기, 질병관리본부가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방역체계를 잘 작동시켰나 싶었는데, 사태가 급격하게 뒤바뀌게 돼 안타깝다. 전염사태가 특정지역을 중심으로 만연하게 된 데에는 마치 군사미션을 수행하듯 비밀리에 이루어지는 종교집단 ‘신천지’ 특유의 포교형식에서 비롯됐다고 전해진다.

게다가 아직까지도 관계당국과의 협조를 꺼리고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은 정보가 있다는 뉴스도 접한다. 지금이라도 조속히 진실을 밝혀야 한다. 작금의 상황이 만연해진 상태로 장기화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현실이 되지 않길 바란다. 여하튼 우리가 알아야할 것은 조직의 기반이 되는 비밀주의란 자신들만이 구원될 것이라는 발상에서 시작됐다는 점이다. 단언컨대 인류애가 배제된 신앙과 구원은 종교일 수 없다. 단지 극단적 형태의 이기주의일 뿐이다.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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