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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오페라 70주년]①1950년대 한국인들은 왜 창작오페라 탄생을 고대했을까

[창작오페라 70주년]①1950년대 한국인들은 왜 창작오페라 탄생을 고대했을까

기사승인 2020. 03. 18.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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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창작오페라의 발아...현제명 작곡 ‘춘향전’
2020년은 이 땅에서 한국인이 작곡하고 한국어로 노래하는 오페라가 처음 공연된 지 70주년을 맞이하는 해다. 현제명 작곡의 오페라 ‘춘향전’이 1950년 5월 초연된 이래 오늘날까지 한국의 창작오페라는 우리네 정서와 이야기를 담아오고 있다. 대한민국 창작오페라 70주년을 맞아 손수연 오페라 평론가가 그 출발과 발전과정을 되짚어보고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는 글을 5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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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세토오페라단의 ‘춘향전’ 중 한 장면./제공=베세토오페라단
한국인에 의해 공연된 최초의 오페라는 베르디 오페라 ‘춘희’(라 트라비아타)였다. 일제강점기인 1940년 일본 후지와라 오페라단에 의해 오페라 ‘카르멘’이 전막 공연된 바 있으나 이는 일본인에 의한 공연일 뿐이었다. 한국인이 제작하고 한국 음악인들이 공연한 첫 번째 오페라는 1948년 1월 16일 서울 시공관에서 공연된 ‘춘희’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한국에서 오페라가 공연된 것은 해방 후의 일이나 19세기 후반 이 땅에 서양음악이 도입되고 발전하는 동안 오페라에 대한 호기심은 상당했던 것 같다. 정통 오페라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1940년대 작곡가 안기영이 주도한 향토가극 운동이라든가, 해방 전 작곡가 한형석이 중국에서 작곡해 공연한 항일가극 ‘아리랑’ 등이 한국형 오페라를 향한 관심을 말해준다.

최초의 오페라가 공연된 지 2년 뒤인 1950년 5월 드디어 한국인에 의해 한국 전통 소재로 창작한 오페라가 서울에서 초연된다. 현제명 작곡, 이서구 대본의 오페라 ‘춘향전’이었다. 이 작품이 공연되기 전인 1950년 3월 21일자 경향신문 사회면을 보면 ‘春香傳 오페라化 玄濟明씨 努力으로’라는 제목으로 “解放 後 各界各層에서 大望中이던 春香傳의 오페라화가 완성되었다. (중략)요즈음 완성은 보아 五月上旬頃에는 國內에서 먼저 上演하리라한다”고 쓰고 있다. 기사에 나온 ‘해방 후 각개각층에서 대망 중…’이란 표현처럼 당시 우리 예술계에서는 한국 창작오페라의 탄생을 고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현제명 춘향전
현제명 오페라 ‘춘향전’ 프로그램 북.
그렇다면 해방 후 어지럽던 그 시기에 우리 전통예술도 아니고, 자주 접해 본 것도 아닌 서양 예술형식의 한국적 완성에 왜 그리 많은 관심을 가졌던 것일까? 한국전쟁 발발 직전인 1950년 5월 20일 서울 부민관(당시 국립극장) 무대에서 첫 선을 보인 ‘춘향전’은 각계각층에서 고대한 만큼 좋은 성과를 남겼다. 10일의 공연기간 동안 5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고 하는데 당시 서울 인구가 169만 명 정도였던 것을 생각하면 기록적인 흥행이었다. ‘춘향전’은 전쟁이 한창이었던 1951년 7월 대구과 부산 등지에서도 다시 공연되며 인기를 끌 정도였다.

오페라 ‘춘향전’은 판소리 다섯 마당의 ‘춘향전’과 마찬가지로 5막6장으로 구성됐다. 판소리 ‘춘향전’에 익숙해 있던 관객들은 리듬과 선율이 서양의 음악형식으로 작곡된 오페라를 낯설어하기도 했지만 새로운 장르에 대한 호기심과 익숙하고 쉬운 아리아의 멜로디 등은 인기의 비결이 됐다. 쉽고 친근한 멜로디는 오페라 ‘춘향전’의 큰 약점이자 강점이었다. 평면적이고 직설적인 노랫말에 붙은 단순한 화성의 악곡은 사실 오페라를 위한 오케스트라 악보로 사용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오페라가 생소한 당시 관객들에게는 간결하고 복잡하지 않은 점이 오히려 접근을 쉽게 하는데 도움이 됐다.


오페라 춘향전 작곡가 현제명
오페라 ‘춘향전’의 작곡가 현제명.
훗날 오페라 ‘춘향전’의 연출을 맡기도 했던 연극연출가 이진순은 이무렵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앞으로 오페라를 조직적으로 확장시켜 오페라 창작을 왕성히 하고 우리 오페라로 세계무대로 나아가자’고 했다. 첫 번째 오페라에서 이렇게 호기로운 주장이 나왔다는 것은 당대 예술인들이 오페라에 거는 기대를 보여준다.

2020년이 한국 창작오페라가 70주년이라는 기준은 바로 이 오페라 ‘춘향전’에서 비롯된다. ‘춘향전’이 과연 최초의 한국 창작오페라인가에 대한 다른 견해가 있고, 작곡가 현제명의 친일행적에 대한 논란도 존재한다. 그러나 고유의 소재로 그 시절 한국인의 마음을 두드리고 세계에 내놓을 한국의 오페라를 만들어보자는 희망을 품게 한 작품이라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을 듯하다.

/손수연 오페라 평론가, 상명대 교수(yonu44@naver.com)


손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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