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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당신’이 부처입니다...화순 운주사

[여행] ‘당신’이 부처입니다...화순 운주사

기사승인 2020. 04. 28.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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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운주사
운주사의 석불은 하나같이 못생겼다. 투박한 얼굴, 밋밋한 몸통마다 온 힘을 다해 돌을 쪼았던 민초들의 간절함이 스며있다. .


문득 ‘못난이 석불’이 떠오른다. 전남 화순 도암면 천불산 자락에 운주사가 있다. 창건기록도, 내력도 알려지지 않은 사찰이다. 진실은 아득하고 전설만 가득한 공간. 못난이 석불이 여기 있다.

맞다. 운주사는 ‘천불천탑’으로 잘 알려졌다. 야트막한 산마루 사이로 난 길을 따라 판판한 골짜기를 차분하게 밟아가면 느닷없이 나타나는 석불과 석탑의 행렬. 조선중기 인문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은 운주사에 대해 ‘절의 좌우 산마루에 석불과 석탑이 각각 1000개 있다’고 설명한다.
 

여행/ 운주사
천불산 골짜기를 따라 운주사로 향할 때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이 석불과 석탑이다.


누가, 어떤 이유로 이 많은 석불과 석탑을 봉안했을까. 몇 차례의 발굴과 학술조사가 진행됐지만 창건기록과 천불천탑의 실체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등장하니 이맘때 까지는 실재했을 것이고 석탑과 석불이 꼭 1000개씩은 아니어도 그만큼 많은 수가 있었을 것이라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현재 운주사에는 약 100기의 석불과 21기의 석탑이 남아있다. 이것 역시 적지 않은 숫자. 이토록 많은 석불과 석탑이 봉안된 사찰은 아주 이례적이다.

꼬리에 꼬리를 문 상상이 숱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신라시대 고승인 도선국사가 국운을 일으키기 위해 조성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도선국사는 우리나라 지형을 배(舟) 모양으로 봤다. 배는 중심이 무거워야 안정적이다. 따져보니 운주사가 들어 앉은 자리가 배의 중심이었다. 그래서 도술을 부려 하루 만에 천불천탑을 세우려 했다는 것. 전설은 새벽 닭이 일찍 우는 바람에 끝내 완성하지 못한 것으로 끝난다. 고려시대 몽골의 침략을 막아내기 위해 세웠다는 ‘설’도 있다. 경남 합천 해인사에 보관 중인 팔만대장경이 만들어진 이유와 비슷하다. 또 소설가 황석영은 그의 장편 ‘장길산’에서 노비와 천민들이 신분해방운동을 벌이며 세운 것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상상이고 전하는 이야기일 뿐이다.
 

여행/ 운주사
운주사는 ‘천불천탑’이 있었던 것으로 전한다. 지금은 약 100기의 석불과 21기의 석탑이 남아있다.
여행/ 운주사
운주사 ‘와불’. 후대의 사람들은 와불이 일어나면 미륵의 세계가 도래한다고 믿었다.


어쨌든 이 많은 석불이 하나같이 못생겼다. 불상인지 돌장승인지 도통 구분이 안 간다. 우스꽝스러운 얼굴에 눈매가 희미하고 코는 삐뚤거나 닳아 없어졌다. 몸은 밋밋한 돌기둥 같고 팔과 손은 균형이 잡히지 않았다. 몸통과 머리의 비율이 맞지 않고 크기도 제각각이다. 못난이 석불은 바위에 비스듬히 기대 있거나 들판에 홀로 덩그러이 서 있고 볕 잘 드는 산마루에 아예 드러눕기도 했다. 자태와 자세에서 여느 불상다운 근엄함은 찾아볼 수 없다.

석탑도 석불처럼 이상하게 생겼다. 세련미는 온데간데없다. 원형의 돌을 무심하게 쌓아 놓았다. 축구공, 함지박 모양도 있다. 석탑에 흔히 있을법한 연꽃이나 구름 문양 대신 ‘V’ ‘X’ ‘O’ ‘X’ ‘Ⅲ’ 처럼 외계인의 문자 같은 문양을 새긴 것도 있다. ‘항아리탑’처럼 생긴 모양에 따라 붙은 이름은 또 어찌나 토속적인지 읊조릴 때마다 미소를 짓게 된다. .
 

여행/ 운주사
원형의 돌판을 쌓아 올린 ‘명당탑’.


그런데 사는 것이 퍽퍽하다 느껴질 때, 듬직하고 화려한 금동불보다 못난이 석불이 먼저 떠오를 때가 있다. 석불도, 돌을 쪼았던 석공도 ‘나’를 닮아서 그럴 거다. 못난이 석불의 얼굴은 미륵의 세계를 갈구하는 민초들의 얼굴이다. 돌을 쪼은 솜씨는 서툰 민초들의 것임이 분명해 보인다. 삶에 대한 간절함으로 온 힘을 다해 돌을 쪼았던 그들은 지난한 일상을 간절함으로 버티고 있는 ‘우리’와 닮았다. 성철 스님(1912~1993)은 ‘자기를 바로 봅시다’라는 법어를 통해 “자기가 본래 부처”라고 했다. 각자 부처의 본성을 갖고 있으니 이를 발견하기 위해 마음을 가라앉히고 깊이 생각해야 한다는 가르침일 거다. 못난이 석불을 딱 5분만 바라보고 있으면 내면으로 깊이 침잠할 수 있다. 과거를 잃어버린 사찰, 황량한 들판과 산마루에 흩어진 못난이 석불 중에는 ‘당신’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못난이 석불과 석탑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오는 이유다.
 

여행/ 운주사
오늘날 운주사를 찾는 사람들은 돌멩이를 차곡하게 쌓아 돌탑을 세운다. 시간을 관통하는 수많은 기원과 소망이 ‘천불천탑’을 이룬다.


하나만 더 추가하면 운주사에서는 ‘와불’은 꼭 본다. 대웅전 옆 숲길을 따라 10여 분 가면 만난다. 장삼을 걸치고 가슴에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웃는 얼굴을 하고 누운 불상이다. 누워 있지만 사실은 일으켜 세우지 못한 것으로 전한다. 도선국사가 천불천탑 공사를 할 때 그를 보좌하던 상좌가 일이 하기 싫어 꾀를 냈다. 날이 밝기 전에 닭울음소리가 나면 일이 끝날 것으로 생각해 닭울음소리를 냈다. 그러자 석공들이 와불을 세우지 않은 채 하늘로 올라갔다. 후대 사람들은 ‘와불’이 일어나는 날 미륵의 세계가 온다고 믿고 있다.

석불과 석탑을 알현하러 가는 여정은 마음을 살피는 시간, 운주사를 에둘러 산책로가 잘 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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