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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든 후 날개 짓을 한다

[칼럼]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든 후 날개 짓을 한다

기사승인 2020. 04. 28.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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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석
헤겔이 그의 역저 법철학에서 쓴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든 후 날개 짓을 한다’에 대한 해석과 그 용법은 분분하다. 이 문장은 그리스신화 속,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아테나)가 저녁녘에 산책을 나설 때면 부엉이와 동행했다는 데서 유래한다. 이는 어두운 밤길에도 눈을 밝혀 진리를 추구한단 점에서 철학적 사유의 태도에 대한 은유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세상 이치를 관찰해가는 ‘이성의 눈’에 대한 자각이 그 배경이다.

위와 같은 해석은 동시대에 벌어지는 어떤 사회적 현상에 대한 깊은 고찰은 일정기간이 지난 후에야 평가가 가능하단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전혀 다른 관점에서 보면, 철학이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는 비아냥거림과 조소로 사용되기도 한다. 결국 철학적 사유란 것이 결과에 대한 해석에 불과할 뿐이며, 문제해결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없고 탁상공론에 불과하단 주장 역시 강한 소구력이 있어 보인다.

이와 같은 모티브를 영화 소재로 잘 활용한 작품이 있다. 바로 박찬욱 감독이 연출한 ‘공동경비구역 JSA’다. 영화가 시작되면 음산한 분위기에서 부엉이가 클로즈업된다. 이어서 한발의 총성이 울려 퍼진다. 남북한 병사들이 첨예하게 대치된 상태에서 실수로 화기에 불이 뿜기라도 하면 국지전이 발발할지도 모르는 상황, 긴박한 움직임 속에 총격전이 벌어진다. 분위기만으로 봐선 날카롭게 대치된 사태가 아차 하는 사이에 전쟁으로 확산돼도 전혀 이상하지 않아 보인다. 이러한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중립국 법무관이 파견된다. 한국계 입양인인 스위스 국적의 장교 소피(이영애 분)가 그 주인공이다. 그녀는 총격전에서 생존한 남북한 병사들을 차례로 만나 고군분투 끝에 사건의 진실을 밝혀낸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생존한 병사(이병헌 분)마저 권총을 입속에 넣고 방아쇠를 당겨 버리고 만다. 영화는 아름다운 청년들의 즐거운 조우를 유쾌하게 그리다가, 끝내 비극으로 막을 내린다.

극중 여러 차례 등장하는 부엉이는 미네르바의 그것과 동일하다. 총격현장에 있었던 이들 이외에 유일한 목격자가 바로 부엉이다. 부엉이는 사실이 무엇인지 아는 유일한 존재이며 소피가 찾아야할 진실을 상징하기도 한다. 물론 부엉이에게 물어볼 수는 없는 일, 그녀는 합리적인 추론과 흔적이 남긴 과학적 데이터를 이용해 팩트에 가깝게 접근한다. 그럼에도 그 사실에 접근했다는 사실조차 밝히지 못하고 법무관 자리에서 사임한다. 그러나 결과는 두 병사의 자살이라는 끔직한 비극으로 끝을 맺는다. 영화에서 사용된 미네르바의 부엉이에 대한 모티브는 결과에 대한 주석을 다는 정도로는 비극을 막을 수 없는 철학의 한계를 드러냈다.

그러나 사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가 개봉된 시점은 2000년 9월, 이보다 앞서 6월 15일 새천년을 맞이해 남북한 정상이 만나 평화추구를 약속한 역사적인 일이 펼쳐졌다. 때문에 영화는 비관적이기보다는 ‘비극을 통해 비극을 끝내야하는 당위’를 우리 가슴속에 각인시켰다는 해석이 마땅하다. 올해는 남북정상이 만나 평화체제를 약속한 이후, 꼬박 만으로 20주기가 되는 해이다. 그간 우리는 롤러코스터를 탔고, 지금도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비극이지 않길 염원한다. 비극은 이야기 속, 소망성취를 위한 진혼곡쯤으로 충분하다. 모처럼 북풍 없이 총선이 치러지나 했는데, 최근 김정은 사망설로 뭔가 수선하다. 그래서 환호성이라도 질러야 한단 말인가.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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