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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정의 씨어터토크]‘스웨그에이지’, 독창성·완성도 갖춘 우리 이야기

[현수정의 씨어터토크]‘스웨그에이지’, 독창성·완성도 갖춘 우리 이야기

기사승인 2020. 05. 14.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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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 "날카로운 사회풍자와 해학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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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의 한 장면./제공=PL엔터테인먼트
‘스웨그(swag)’라는 단어의 기원은 윌리엄 셰익스피어 희곡으로 소급된다. ‘한여름 밤의 꿈’에서 ‘스웨거(swagger)’가 ‘건들거리며 걷다’는 뜻으로 사용됐던 것이 처음이었다. 우리 시대에는 대중 가수들을 통해 그 의미가 확장돼, 개성을 자유스럽게 발산한다는 긍정적인 뜻으로 통용되고 있다. 대학로 홍익대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박찬빈 작·이정연 작곡·우진하 연출)에는 조선의 힙합족이라 할 수 있는 ‘골빈당(骨彬黨)’이 음악에 맞춰 건들거리며 걷는데, 그 모습이 매우 멋스럽다. 개인의 자유와 예술을 억압하는 권력에 대항하는 몸짓이기 때문이다.

뮤지컬 속 조선은 ‘시조의 나라’란 뜻을 담고 있으며, 국민들은 시조를 즐기던 사람들로 묘사된다. 조정에 시조와 관련된 모든 일을 담당하는 ‘시조대판서’라는 품계 높은 관직이 마련돼 있을 정도다. 그런데 시조가 금지된 암흑기가 펼쳐지니, 이는 시조대판서의 자리를 놓친 송홍국의 계략 때문이었다. 자신보다 실력이 좋은 평민 출신의 ‘자모’가 자리에 오르자 양반 출신의 송홍국이 그를 모함하고, 그 과정에서 임금과 대신들을 조정해 시조를 금지하도록 만든 것이다. 사람들을 선동하고 역심을 유발한다는 이유였다.

주인공은 자모의 아들이며 타고난 시조꾼인 ‘단’. 그는 양반 행세를 하고 길거리에서 시조를 읊는 등 금기를 범하고 돌아다닌다. 그러한 단을 골빈당으로 끌어들이는 인물이 있으니, 바로 송홍국의 딸 ‘진’이다. 진은 아버지에 맞서며 신념을 추구하는 강인한 캐릭터로, 사건을 해결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한편 골빈당 당원들은 스승이었던 자모의 아들을 찾는 중이었는데, 단이 바로 자신들이 찾던 사람임을 알게 된다. 그렇게 똘똘 뭉친 골빈당은 점점 더 과감한 시조 행보를 보여준다.

그러던 중 15년 만에 전국시조대회가 열리게 되는데, 사실 여기에는 송홍국의 꿍꿍이가 숨어 있었다. 2막에서는 시조대회의 흥겨움 속에서 인물들의 갈등이 극대화된다. 이때 골빈당이 부르는 ‘정녕 당연한 일인가’는 양반이 아니란 이유로 억울함을 당하는 사람들의 가슴 아픈 사연들을 담고 있다. 이는 단지 조선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 동시대 서민들의 애환을 떠올리게 한다. 이때 내용과 대조되는 흥겨운 박자는 오히려 슬픔과 분노를 강조하는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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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의 한 장면./제공=PL엔터테인먼트
이 작품의 스웨그는 운명을 개척하며 성장하는 인물들의 모습뿐 아니라, 개성 넘치는 스타일에서 느껴진다. 먼저, 시조를 활용해 상황과 캐릭터를 표현한 가사가 매우 참신하다. 송홍국과 양반들은 연시조를, 진이는 그 틀을 깬 사설시조를 노래한다. 그리고 단이는 아예 새로운 시조 형식을 독창적으로 만들어내며, 많은 부분을 랩으로 표현한다. 음악은 이러한 시조의 운율을 효과적으로 담았는데, 중독성이 있어서 한 번 들으면 계속 떠오른다. 악기뿐 아니라 장단과 음계에서도 힙합과 국악이 오묘하게 조화된 가운데, 클래식·재즈·레게 등이 가미되며 상황과 캐릭터를 표현한다.

앙상블뿐 아니라 주요 인물들이 쉼 없이 춤을 춘다는 점에서도 여타 뮤지컬과 다르다. 게다가 군무 중 모두가 골고루 조명을 받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노래하는 이 작품의 주제와 잘 맞는다. 전통적인 춤사위를 살리면서 비보잉, 락킹, 현대무용, 탈놀이 등을 융합한 안무가 독창적이다. 이처럼 움직임이 많은 만큼 무대는 복잡하지 않은 단일 세트로 디자인됐다. 대신 선(線)을 다양하고 독특하게 활용한 조명이 스펙터클한 쇼 장면과 인물들의 심리를 역동적으로 혹은 상징적으로 비춰 주었다.

이 작품은 우리나라 소재와 전통연희를 활용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사극이지만 내용과 형식의 동시대성을 담았다는 점에서 남다르다. 만일 삼대가 함께 관람한다면, 겪은 세상이 다른 만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는 흥미로운 생각이 든다. 날카로운 사회풍자를 담고 있지만, 해학과 익살로 가득 차 있어서 대중성도 지닌다. 단 역의 양희준과 진 역의 김수하를 비롯한 배우들의 퍼포먼스도 뛰어났는데, 격하게 춤을 추면서도 안정적인 노래와 또렷한 발음을 들려주었고, 호흡이 잘 맞는 연기로 기량을 과시했다.

/현수정 공연평론가(중앙대 연극학과 겸임교수)


현수정 공연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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