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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형원 칼럼] 심리치료, 디지털 헬스케어와 만나다

[강형원 칼럼] 심리치료, 디지털 헬스케어와 만나다

기사승인 2020. 10. 12.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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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적자원개발학회와 함께하는 4차 산업혁명의 의미<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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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형원 원광대 한의대 교수
황제께서 물으셨다. “옛적에는…오직 정신적 암시를 주는 것만으로 기분을 전환시켜(移精變氣) 병이 나았는데, 요즘은 약도 먹고 침도 맞아도…낫지 않기도 하니 까닭이 무엇입니까?”

기백께서 대답하셨다. “그때는 사람이 짐승, 새들과 함께 자연 속에서…사시사철에 맞게…살았습니다. 대인(對人) 간 얽힌 감정도 없었고. 입신출세의 욕망도 없었고…나쁜 기운이 인체에 침범해도 피부 겉에만 머물 뿐 정신 피로를 틈타서 체내에 깊이 침입하는 일은…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축유법(祝由法)과 같은 정신적 암시만 주고도 병이 나았습니다. 요즘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다.…정신적인 고뇌가 내장 기능을 손상시키고 …계절에 반하여…살고 있습니다. 복잡하게 깊이 손상당한 병은 기분을 변화시키는 것(移精變氣)만으로는 어렵습니다.”

한의학 이론서 중 가장 오래된 《황제내경》의 『소문(素問) 이정변기론편(移精變氣論篇)』에 나오는 내용이다. 황제내경이 전국시대(기원전 403~221년) 후기 내지는 전한시대(기원전 206~서기 8년)에 쓰였으니, 질병에 대한 물음이 시대를 초월하여 이어져 왔음을 엿볼 수 있다. 다만 질병은 시대를 흐르며 더 복잡성을 띠고 다양해져 당대에 맞는 치유방법이 필요하다.

이정변기(移精變氣)는 ‘정(精)을 옮겨서(移) 기분(氣)을 변화시킨다(變)’는 의미로 오늘날 정신치료에 해당한다. 원래 정신의 완성체는 ‘정기신(精氣神)’이다. 정(精)은 몸을, 신(神)은 마음을, 기(氣)는 몸과 마음의 연결성과 활동성을 의미한다. 즉 몸의 움직임이 기분을 변화시켜 마음을 치료한다. 여기서 몸의 움직임은 처음 접하는 감각의 작용에 의해 즉시 기분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 듣는 것, 보는 것, 촉각, 입맛, 향기를 통해 우리의 기분이 달라진다. 감각을 통해 기의 작용을 유도하여 마음의 변화를 꾀한다.

이정변기의 주요기법은 시대별, 사회적 상황, 생활환경, 의학 이론 등에 따라 계속 변화해왔다. 상고시대에는 위의 내용에서처럼 축유(祝由)가 성행했다. 이는 주로 무의(巫醫)에 의해 축문(呪文)이나 독경(讀經), 기도(祈禱), 부적(符籍), 설유(說諭) 등의 방법인 종교적 의식을 말하는데 현대에까지 그 잔재가 남아있다. 내경시대에서는 침, 약물 등의 치료법이 등장하고, 후대에 경락이론의 확립으로 안마도인법, 기공명상 그리고 오행이론에 따른 오지상승법(상극되는 감정으로 문제감정을 다스림) 등이 이정변기의 방법으로 등장한다. 현대심리치료에서도 이정변기가 응용된다. 트라우마 치료에 쓰이는 감정자유기법(Emotional Freedom Technique), 정위반응(Orienting response), 브레인스팟팅(Brainspotting) 등이 좋은 사례다.

오감을 통한 정신치료를 현대 디지털로 접목하는 ‘디지털 치료제(Digital Therapeutics)’가 시도되고 있다. 디지털 치료제는 질병을 예방·관리·치료하는 데 애플리케이션, 게임,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등 소프트웨어를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VR을 활용한 노출치료, 인지행동치료가 공포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치유에 이미 시도돼 왔고, 2019년에는 VR기반 인지행동치료가 신(新)의료기술로 등재되었다. 이제 VR이 심리치료의 좋은 매개체라는 게 점차 입증되고 있다. 지난 8월 식약처는 디지털 치료제에 ‘디지털 치료기기’라는 공식명칭을 부여하고 이에 대한 심사 가이드라인을 발표하여 한국판 뉴딜정책에 발맞추고 있다.

분주한 일상을 멈춰 세운 코로나19는 손씻기나 거리두기 등 기본 방역이라는 고전적 예방의학의 중요성과 언택트 사회에서 새롭게 요구되는 소통방식을 필요로 해 이에 적극적인 대응 방안이 모색되고 있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의 마음으로 고전적 심리치료기법이 디지털 멘털 헬스케어와 만나 치유의 영역에서 새로운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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