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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미래 대진단] ‘탈아입구론’ 부활, 아베 정권 ‘탈전후 내셔널리즘’

[동북아 미래 대진단] ‘탈아입구론’ 부활, 아베 정권 ‘탈전후 내셔널리즘’

기사승인 2013. 11. 21.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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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8주년 특집] 일본 경제 침체 국면서 아베식 보수 정치 급부상

아베 신조(安倍晋三)일본 총리는 “아버지보다 외할아버지의 유전자(DNA)를 이어받았다”고 말한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종전후 ‘A급 전범’으로 몰렸다 미·소냉전을 계기로 재기에 성공, 1957년부터 1960년까지 3년간 총리를 지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다. 


그는 1993년 아버지의 지역구 야마구치(山口)1구에서 중의원에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다. 폐번 이전 조슈번(長州藩)으로 불린 야마구치현은 규슈(九州) 가고시마(鹿島)현의 사쓰마번(薩摩藩)과 함께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의 주역들을 배출한 곳이다. 그 핏줄을 이은 아베 총리가 현재 강경우익 행보로 동아시아에 또 다시 파란을 낳고 있다.

아베 총리는 지난 8일 참의원 대회에서 일본판 NSC인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설명하면서 “북한은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을 개발해 위협하고 있다. 중국은 군사력 증강의 투명성이 결여돼 있고 주변 해역 활동을 급속히 확장하고 있다”면서 “(북한과 중국이) 일본의 안전보장 환경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언론들은 이를 전하면서 “아베 총리가 국회에서 중국과 북한이 일본의 안전을 위협한다고 직접 거론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아베 정권이 추구하는 집단적 자위권의 목표가 중국과 북한임이 확실해지는 대목이다. 하지만 정작 중국의 군비 증강은 미국을 겨냥하고 있다. 북한도 미국의 군사적 위협을 강조하며 핵무기와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

아베 정권의 행보가 미국의 보조자로서 미국에 위협이 되는 중국과 북한의 군사력 봉쇄에 ‘큰 손’ 거들겠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이유다. 일본의 우경화에 경계의 눈길을 보내던 미국이 최근 일본의 군사대국화 움직임에 반색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과 달리 한국 등 주변국에서는 아베 정권의 탈아시아 행보를 우려하고 있다. 아베 정권에 ‘탈아입미(脫亞入美)’라는 딱지도 붙였다. 메이지 시절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가 주창한 ‘탈아입구(脫亞入歐)’론에 빗댄 표현이다.

또 일본이 과거 20세기 초 영국을 등에 업고 제정러시아에 맞섰다면 이제는 미국과 손을 잡고 중국 봉쇄에 나섰다는 비판도 가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취임 후 동남아시아와 인도에 정성을 쏟고 있다. 이 지역들은 인구가 급증하고 경제가 급성장하고 있는 곳이다.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는 중국과의 관계 악화를 대비한 움직임으로 분석된다.

일본은 슈퍼태풍 하이옌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필리핀을 지원하기 위해 어느 때보다 적극적이다. 1000만 달러를 지원하고 자위대도 1000여명 파견하겠다고 나섰다. 자위대 창설 이래 해외 긴급구호 사상 최대 규모다. 필리핀은 남중국해 도서 영유권 문제로 중국과 대치하고 있다. 역시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의도다.

아베 정권의 탈아입미는 잘못된 역사 인식과 맞물려 있다는 게 문제다. 과거에 대한 반성이 없다면 과거 탈아입구에서 출발한 일본제국주의처럼 또 다시 일본의 침략이 재연될 수 있다는 게 주변국의 우려다.

와타나베 오사무(渡邊治) 히토쓰바시(一橋)대학 명예교수는 2007년 출판된 저서 ‘아베정권론’에서 1차 아베 정권의 대외적 행보를 ‘탈전후형 내셔널리즘’이라고 이름 붙였다. 현 아베 정권은 지난 2006년 1차 집권의 연장선에 있다.

와타나베 교수는 이 책에서 탈전후형 내셔널리즘이 전후 보수 내셔널리즘과 현저히 다르다고 분석했다.

1980년대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根康弘) 정권으로 대표되는 전후 보수 내셔널리즘은 아시아의 일원이라는 인식과 함께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에 대한 일정 정도의 반성이 있었지만 아베 정권에서는 이를 찾아볼 수 없다는 지적이다.

나카소네 정권은 우익 성향을 드러내며 자위대의 전력을 크게 강화시켰지만 전두환-로널드 레이건-나카소네로 이어지는 한·미·일 동맹의 전성기를 누렸다. 과거에 대한 최소한의 반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결과다.

반면 아베 정권은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군의 관여를 인정한 1993년 고노담화(河野談話),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에 일정 정도의 반성을 표시한 1995년 무라야마 담화(村山談話)를 부정한다.

와타나베 교수는 “이러한 내셔널리즘이야말로 현대의 경제 세계화 체제에서 미국과 함께 세계의 경찰관으로서 역할을 해야 하는 대국화를 목표로 하고 있는 일본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서는 알맞은 구조”라고 설명했다.

고노담화의 주인공인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전 관방장관은 지난 6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은 지정학적으로 아시아의 일원이며, 한국·중국과 관계를 강화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다”면서 아베 정권의 대외 정책을 비판했다. 하지만 고노 전 장관은 일본 내 소수파에 불과하다.

아베 총리는 보수합동 정권인 이른바 ‘55년 체제’가 무너진 1993년에 정계에 입문했다. 그는 정계 입문 초기 별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일본 사회가 급격히 우경화되면서 젊은 정치지도자로 급부상했다.

그 시기는 일본 경제가 붕괴하고 한국·중국 경제가 부상하던 시절이다. 일본 경제의 침체가 한국과 중국에서 비롯됐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극우파에게 유리한 정치환경이 조성됐다.

와타나베 교수는 “아베는 처음부터 강경파의 정치가로서 출발했다. 이러한 정치 경력은 보수정치의 안정된 30년 동안에는 주류에 올라설 가능성이 없는 길이었다”면서 “아베가 만약 1960년대에 정치생활을 시작했다면 이런 타입의 정치가는 보수 정치의 주변부로 남았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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