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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박 전 대통령, 불구속 기소가 원칙이다

[사설] 박 전 대통령, 불구속 기소가 원칙이다

기사승인 2017. 03. 22.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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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21일 박근혜 전 대통령을 검찰에 소환해 21시간 동안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다. 노태우, 전두환,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네 번째 검찰에 소환된 전직 대통령이지만, 대통령 임기를 마치지 못한 채 탄핵을 받은 상태에서 검찰에 소환되기는 헌정사상 처음이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전직 대통령이 검찰의 포토라인에 서는 것 자체가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를지라도 이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말아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이 포토라인에서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습니다"라고 짧게 말했는데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진정한 사과를 하지 않았다고 비판하고 있다. 대통령을 지낸 사람답지 않게 개인의 방어권에만 신경을 쓰고 그간 빚어진 국정혼란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불필요하게 정치적 파장을 만들지 않겠다는 의중도 존중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탄핵 결정과정의 순서가 뒤바뀐 탓에 이런 비판은 '범법자'가 아니라 '피의자'인 대통령에게 죄를 시인하라고 윽박지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박 전 대통령은 범법 사실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민심'에 따라 탄핵됐다. 이런 일은 자유 민주주의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그래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너무 미성숙하다는 게 미국의 유력 언론인 CNN의 뼈아픈 논평이다. 우리는 이미 사설을 통해 이런 점들을 지적했다. 국회가 적법 절차를 무시하고 대통령 탄핵소추를 의결해 직권을 정지시켰고, 헌재가 권력을 남용하고 재산권을 침해했다는 애매한 이유로 만장일치로 대통령 파면을 선고했다. 지금 헌법재판관들이 심층 취재를 해온 기자로부터 사실관계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판결을 했다는 이유로 고발당한 상태다.
 

검찰수사와 재판이 선행되고 탄핵이 되었더라면, 검찰의 포토라인에 선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시비를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고, 헌재 재판관들이 고발을 당해서 헌재가 권위에 손상을 입는 사태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모든 것들이 우리의 법치주의와 민주주의가 성숙되기 위해 겪는 성장통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세계 10대 경제대국이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흔히 경제에 비해 낙후된 정치가 선진화되어야 한다는 말을 하지만 법치를 뒷받침할 사법의 선진화도 우리가 반드시 이뤄야 할 과제임이 드러나고 있다.
 

5년 단임제 대통령이 임기를 1년도 남기지 않았고 국가안보와 경제적 어려움이 산적한 상태에서 국회와 헌재는 대통령을 파면했다. 아직 최순실 씨의 재판이 진행 중이고 죄가 확정되지 않았는데 대통령 탄핵부터 결행했다.
 

과연 이게 자유민주주의 헌정을 수호하는 것인지 해외 유수 언론들은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민심에 민감한 국회가 얼마든지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공직자들을 구체적 범법 사실이 없더라도 파면시킬 것이다. 차후 정치권에서 이 문제를 심각하게 고심하길 바란다.
 

물론 우리는 법리적 차원이 아니라 국민의 마음을 살피는 정치적 차원에서 박 전 대통령이 검찰이든 특검이든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했다가 이유가 무엇이었든 결과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아쉬운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은 누구보다 청렴결백하고 원칙을 지키는 정치인으로 박 전 대통령을 지지해 왔다. 특검과 헌재와 일정과 방식을 놓고 줄다리기하다가 불출석했는데 박 전 대통령이 특검이든 헌재든 출석해서 충분히 진실을 소명했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그러다 보니 박 전 대통령이 일부러 수사를 받지 않겠다고 한 것처럼 비쳐졌고, 이것이 오히려 의구심을 키운 빌미를 주었다고 본다. 사후약방문격이지만 왜 참모들이 진작 적극적으로 수사에 응하도록 조언하지 않았는지 그게 궁금하다.
 

지금 일각에서는 검찰이 박 전 대통령의 구속여부에 대해 고심이 많을 것이라면서 정치권의 눈치를 보지 말고 원칙대로 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검찰이 잘 판단하겠지만, 굳이 우리가 의견을 밝히자면 구속요건을 엄밀히 검토해 구속 여부를 결정하는 게 원칙이며, 그런 원칙에 비쳐볼 때 불구속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우선 도주 우려가 없다. 명예를 존중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진실이 밝혀진다고 말하는 박 전 대통령이 전 세계가 보고 있는데 도주를 하겠는가. 다음으로 증거 인멸의 우려도 없다. 지금 청와대의 기록들이 국가기록으로 봉인되는데 사저에 나온 대통령이 어떻게 증거인멸을 시도할 수 있겠는가. 일부에서는 김기춘, 조윤선, 안종범, 정호성 등 박근혜정부의 주요 인사들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이미 구속했기 때문에 총책임자에 해당하는 박 전 대통령도 구속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들의 구속도 구속요건을 살펴볼 때 무리했다는 주장도 많다.
 

과유불급이라고 했다. 파면까지 시켜놓았는데 구속이라는 칼날을 또 대야 하는지 의문이다. 굳이 구속해서 박 전 대통령을 포승줄로 묶어 전세계에 비참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국익에 부합하는지도 의문이다.
 

재판을 통해 혐의가 밝혀지면 박 전 대통령이 죗값을 치를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의 구속은 검찰이 이미 파면된 대통령을 정식재판을 받기도 전에 단죄하는 격이 된다. 우리는 검찰이 이 점을 잘 감안해서 현명한 판단을 내릴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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