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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네 말도 옳다

[칼럼] 네 말도 옳다

기사승인 2016. 12. 28.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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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영 수필가, '편지가 꽃보다 아름답다' 저자, 인사동 '희여골' 대표
방촌 황희 정승은 고려 말 3명, 조선 초 4명의 왕을 모신 고려, 조선시대를 통틀어 최장수 재상이다. 그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직언으로 조선 건국 초 태조와 정조의 미움을 사서 좌천과 파직을 거듭했다. 태종이 발탁, 중용했지만 세자였던 양녕대군을 폐위하려하자 폐장입유(廢長立幼), 장자를 폐하고 아랫사람을 세우는 것은 재앙을 부르게 되는 근본이라고 강력하게 반대했다. 그러나 결국 양녕이 폐위되고 후에 조선 최고의 성군이 되신 세종, 충녕대군이 왕세자가 되자 반대파였던 황희는 삭탈관직되고 교하로 유배되었다. 이렇게 원칙과 소신을 지키면서 격동의 고려 말 조선 초 최장수 재상이 되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조선시대 정승은 단순한 왕의 자문 역할이 아니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최종적으로 결정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훌륭한 정승 한명 두면 자연 성군이 될 수 있다고 할 만큼 국정수행능력과 균형 잡힌 판단력이 필요했다. 황희정승의 판결에 관해서는 널리 알려진 일화가 있다. 어느 날 그의 집 두 여종이 서로 심하게 말다툼을 했다. 분을 참지 못한 한 여종이 그에게 달려와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했다. 그러자 그는 "네 말이 옳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다른 여종이 와서 사실이 아니라며 자신의 입장을 호소했다. 그는 그 말을 다 들은 후 "네 말도 옳다"라고 답했다. 

마침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조카가 "아니 옳고 그름을 가려주셔야지 두 사람 말이 다 옳다고 하시면 어떡합니까?"라고 말하자 그는 또 다시 " 네 말도 옳다."라고 했다.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 황희정승의 우유부단함이나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이해하곤 한다. 그러나 필자는 이런 식의 태도가 정확한 판결을 하기 위한 의도가 있었고 누구보다 뛰어났던 그의 판단력이 최장수 재상을 가능하게 하지 않았을까 추론해 본다.
 
윗사람이 한쪽의 편을 들거나 자신의 말을 무시한다는 느낌을 받게 되면 위축이 되고 자신의 주장이나 논거를 충분히 제기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네 말이 옳다.'는 믿음을 심어주면 신이 나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 할 모든 근거들을 빠짐없이 얘기한다. 상반되는 두 논거들이 완벽하게 준비되어졌을 때 비로소 균형 잡힌 공정한 판단이 가능해진다. 

동서고금 세상은 늘 시끄럽다. 우리는 최근에도 개성공단 폐쇄, 사드배치, 국정교과서 채택 등 극심한 국론 분열이 있어왔다. 논리 다툼이 아니라 종북좌파나 수구꼴통이라는 단세포 이분법적 파벌다툼이 되어서는 다음에 또 다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도 편싸움만 반복될 것이며 발전은 없을 것이다. '네 말도 옳다'는 경청과 토론이 있어야 자신의 오류가 보완되고 더 완벽한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다툼이 단순한 다툼으로 끝나서는 아니 된다.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할 수 있는 토론으로 발전해야 한다. 더 완성된 결론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네 말도 옳고, 네 말도 옳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명재상, 성군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다른 의견, 듣기 싫은 소리도 경청하며 공정함을 잃지 않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자신을 극력 반대했던 황희를 중용한 세종대왕 같은 포용력이 있어야 한다.
 
산은 하나지만 사계절 모습은 각기 다르다. 봄 산을 보고 꽃이 없는 산은 산이 아니라거나 겨울 산만 보고 눈이 없는 산은 아니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자신이 직접 본 것이라 확신을 가지고 있겠지만 일부만 보았기에 편향된 시각을 가질 수도 있는 것이다. 편 가름과 나만 옳다는 태도, 강압과 밀어부치기로는 바른 판단을 할 수가 없다. '네 말도 옳다'는 열린 마음과 배려가 있어야 미래의 희망이 커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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