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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새벽닭의 첫 울음소리

[칼럼] 새벽닭의 첫 울음소리

기사승인 2017. 01. 0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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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변호사 사진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고문
누가 바보 같은 행위를 일컬어 ‘닭짓’이라고 빈정거리는가. “지혜가 부족한 사람에게/ 닭대가리라고 놀리는 것을 보았다, 허나/ 필요한 만큼 이상의 지혜를 가지고 있다/ 암탉은 알을 낳고 품어 병아리를 기르고/ 수탉은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을 깨운다…/ 날개깃아래 병아리를 모으는 암탉에게서/ 희생적인 참사랑을 깨닫는다…/ 닭은 사람에게 온 영혼을 바칠 뿐/ 계산적이거나 결코 원망하지 않는다”(김필영, ‘닭에 대한 예의’ 일부)

플라톤의 <파이돈>에 사형집행을 앞둔 소크라테스의 유언이 실려 있다. “아스클레피오스에게 수탉 한 마리를 빚졌으니 대신 갚아주게.” 이 유언에는 여러 해석이 따르지만, 실제로 자신의 채무를 대신 갚아달라는 부탁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유비(類比)로 읽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의술의 신이다. 병원이나 약국의 표지에는 뱀이 감긴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가 그려져 있다. 고대 아테네에서는 병이 나은 환자가 의술의 신에게 수탉을 감사의 제물로 바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죽어 없어지는 육체와 달리 영혼은 불멸이라고 믿었던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죽음을 삶이라는 질병에서 해방되어 영원에 들어가는 치유로 생각하고, 그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의술의 신에게 닭을 제물로 바쳐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닭은 치유의 상징이었다.

예수의 수제자 베드로는 스승이 로마총독의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게 되자 뭇 사람들 앞에서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했다. 밤이 깊도록 세 번이나 스승을 부인하며 저주까지 퍼부었다. 때마침 닭이 홰를 치며 울었다. 문득 먼발치에 묶인 채 서있는 스승과 눈길이 마주치자 베드로의 머리에 퍼뜩 떠오르는 스승의 말씀이 있었다. “닭이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할 것이다.” 베드로는 재판정을 빠져나와 가슴을 치며 통곡한다.

역사를 바꾼 예수 최후의 날, 그 전야(前夜)의 모습이다. 메시아를 심판하는 법정 밖에서는 수탉 한 마리가 베드로를 고해(告解)의 법정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스승을 배신하고 저주하며 괴로워했던 제자에게 수탉은 참회의 새벽을 알리고, 닭의 울음소리에 제자는 뉘우침의 눈물을 쏟아낸다. 새벽닭은 그렇게 베드로의 지친 영혼을 일깨웠다. 이후 베드로는 사도들의 수장(首長)으로 다시 태어난다. 닭의 울음은 영혼의 각성제였다.

밤새 울다가도 날이 밝으면 또 다른 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눈물을 닦아야 한다. 울음은 새벽빛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새벽닭의 첫 울음은 한 맺힌 넋두리도, 지난밤 번민의 여운도 아니다. 소망의 새벽을 알리는 나팔소리다. 갓 태어난 아기가 고고(呱呱)의 울음으로 제 삶을 시작하듯이.

올해는 정유년(丁酉年) 닭의 해다. 지난해는 이 땅의 닭들에게 비극적인 운명의 한 해였다. 무려 2000여만 마리의 닭과 오리를 산 채로 땅속에 묻었다. 그야말로 닭짓보다 더 바보 같은 삽질이었지만, 그것밖에는 조류 독감에 대응할 적실한 방법을 알지 못했다. 전염병의 예방과 관리에 실패한 당국의 무능이 수많은 가금류를 비참하게 죽였다. 닭띠 해에는 닭의 수난과 양계농민의 절규가 없기를 바란다.

새벽닭의 첫 울음은 잠든 세상을 향한 ‘말 걸기’다. 밀실의 문을 노크하는 소통의 시작이다. 민주정치의 리더십은 소통의 능력에 있다. 지난해에는 소통의 결핍에서 초래된 국정 혼란으로 나라의 품격이 손상되고 국민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어느 때보다 치유와 소통이 절실하다. 올해에는 대통령선거가 있다. 지난날 그 많은 선거 뒤에 얼마나 큰 좌절의 아픔이 따르곤 했던가. 이번 선거 뒤에는 촛불 광장의 불꽃 대신 화합 마당의 웃음꽃이 만발해야겠다.

니체는 국민을 아프게 하는 정치권력을 ‘화염과 연기로 세상을 기만(欺瞞)하는 불개’에 비유했다. 썩은 보수, 가짜 진보의 낡은 세력들이 내뿜는 기만의 연기와 분노의 화염으로 온 정치판이 소란스럽다. 불개 같은 정치꾼들의 선동과 술수에 휘둘리면 국격의 회복이나 국민적 상처의 치유는 불가능하다. 격변하는 국내외 정세 속에서 나라의 정체성과 민생의 근본이 흔들리지 않도록 새벽닭의 새해 첫 울음소리를 깊이 새겨야겠다. 치유와 각성, 그 소통의 울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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