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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덕후’ 특별 선발제도 도입하자

[칼럼] ‘덕후’ 특별 선발제도 도입하자

기사승인 2017. 01. 1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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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조희연 교육감 명함사진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학교 현장을 방문하다 보면 어떤 특정 분야에 외골수로 빠져들어 그 분야에서 매우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는 아이들을 더러 보게 된다. 가령 도마뱀·이구아나 등 열대 지방에 서식하는 파충류에 빠진 학생이 있다. 이 친구는 도마뱀의 종류별 생태와 습성, 좋아하는 먹이 등을 낱낱이 알고 있다. 모두 인터넷 등을 찾아가며 스스로 학습한 것이다. 부모님들은 이 학생에게 “도마뱀에 대한 관심은 이제 그만 좀 끊고 공부 좀 하라”고 성화였다.

이 학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반전 해피엔딩이다. 비록 대학 진학은 포기했지만, 이 학생은 지금 수입 열대 동물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다. 도마뱀 때문에 학생을 꾸중하던 아버지보다 돈을 더 많이 벌고 있다고 한다. 열대 파충류 ‘덕후’의 성공기이다.

우리 학생들 가운데는 ‘동물 덕후’만 있는 게 아니다. 심지어 ‘역사 덕후’도 있다. 최근 서울시교육청이 연 역사 토론회에서 만난 학생은 역사적 사실과 연대, 배경에 대해 줄줄 꿰고 있었다. 어떤 질문을 던져도 외우고 있기라도 한 듯 대답이 줄줄줄 거침없이 나왔다. 랩을 듣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덕후’는 가히 자연과학과 인문, 사회과학을 가리지 않고 존재한다.

돌이켜보면 우리 세대의 학창시절에도 이런 덕후는 존재했다. 다른 일에는 좀 서툴지만 한가지만은 확실하게 해내는 친구들은 늘 있어왔다. 사람들마다 관심과 흥미가 다르기에 어떤 분야에 덕후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오늘날 복잡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려면 종합적 지식과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공부할 때 ‘편식’하지 말고 기본 소양으로 폭넓은 지식과 시각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제너럴리스트만을 양산하는 게 최선의 교육인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개성과 재능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의 교육 시스템은 열대 동물에 관심이 있으면 이구동성으로 “동물학과에 가라”고 한다. 마치 대학의 동물학과에 가면 모든 게 다 해결된다는 듯이. 그러나 어떤 ‘학’을 전공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의 관심과 재능을 계발하고 발전시키는 일이다. 동물학과에 가기로 작정을 한다 하더라도 걸림돌은 ‘점수’이다. 정작 대학에 들어갈 때는 ‘점수’에 맞춰서 대학과 학과를 선택해야 하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열대 동물에 미친 듯이 빠져서 ‘덕후’가 될 정도의 학생이면, 공부할 시간에 ‘덕후 행위’를 했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대학의 동물학과에 진학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이건 교육의 전도(顚倒) 현상이다. 이 때문에 자신의 관심과 흥미와 재능을 살리는 방향으로 전공을 선택할 수 있는 학생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게 된다. 관심 분야와 전공이 겉도는 학생들을 양산하는 입시제도라면 근본적으로 수술이 필요한 게 아닐까?

나는 ‘덕후’가 된 우리 아이들의 재능을 살려내기 위해 입시제도에 ‘덕후 특별전형’ 같은 것을 도입할 것을 제안하고 싶다. 기본적인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능력만 인정이 된다면, ‘동물 덕후’ ‘곤충 덕후’ ‘역사 덕후’ ‘목공 덕후’ 같은 아이들을 과감하게 선발해 자기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도록 하는 게 우리 교육을 좀 더 본분에 가까운 모습으로 바꾸는 일이 되지 않을까?

한 가지 척도만 가지고 학생들에게 경쟁을 강요하고 선발하는 것은 인간을 중심에 둔 교육이 아니다. 고대 그리스 신화 속의 프로크루스테스처럼 침대의 길이에 따라 사람을 자르거나 잡아 늘리는 교육은 이제 그만둬야 하지 않을까? 다양한 기준과 척도로 학생을 평가하고 저마다의 재능과 개성을 최대한 다 발휘하도록 하는 교육제도를 갖추는 것, 그것이 우리 사회가 선진국의 궤도에 진입했음을 평가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척도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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