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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주자의 글을 잘못 읽지는 않았구나.”

[칼럼]“주자의 글을 잘못 읽지는 않았구나.”

기사승인 2017. 09. 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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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영 대한북레터협회 회장, 희여골 대표, (주) 보림에스앤피 부사장
물고기의 IQ는 0.3이라고 한다. 낚시꾼이 미끼를 던지면 물고기는 입질을 한다. 다른 물고기들이 낚싯바늘에 걸려 잡혀가는 것을 보고서도 입질을 멈추지 않는다. 발버둥 치며 고통스러워하는 동료의 모습을 보면서도 아무 생각 없이 계속 입질을 한다. IQ가 0.3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의 IQ도 물고기와 별반 다르지가 않다. 동료 정치인이 뇌물을 먹고 끌려가는 추한 모습을 보고서도 또 다시 뇌물을 먹는다. 이런 저능아의 모습은 동서고금에 늘 있어왔고 앞으로도 계속 반복되어질 것이다. 물고기건 사람이건 탐욕은 끝이 없다. 그러나 탐욕으로 쌓은 부가 곧 행복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돌이켜 보면 정직하고 부끄럼 없는 삶이 평화롭고 오히려 더 복되다.

북위 태무제에게 총애를 받던 적흑자가 베 천필을 뇌물로 받은 사실이 발각 돼 고윤에게 의견을 물었다. “왕의 총애를 저버려서는 안 됩니다. 죄를 사실대로 고하고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라고 고윤이 답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모두 반대했다.“ 사실대로 말한다면 무슨 벌을 받을지 알 수 없습니다. 잠시 숨겨두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적흑자가 고윤을 원망했다. ”그대는 어찌하여 나를 죽을 곳으로 유인하는가“ 그리고 태무제에게 그런 일이 없었다고 고했다.

태무제는 그가 거짓말을 한 것을 알고 화가 나서 죽여 버렸다. 태무제는 고윤에게 태자를 가르치게 했고 최호에게 북위의 국사를 편찬하게 했다. 역사에 실재한 일들을 충직하게 적다보니 태무제가 참기 힘든 불미스런 일들도 기록 돼 졌다. 태자의 스승 고윤도 문제가 됐다. 태자는 고윤에게 모든 것은 자기가 알아서 할 테니 자기 말만 따르라고 했다.

태자가 태무제에게 말했다. “고윤은 소심하고 지위도 낮습니다. 국사는 모두 최호가 쓴 것이니 고윤을 사면해 주십시오.” 태무제가 고윤을 불러 물었다. “국사는 모두 최호가 쓴 것인가?” 고윤이 말했다. “아닙니다. 저와 최호가 함께 만든 것입니다. 실제 저술은 제가 최호보다 많이 했습니다.” 태무제가 태자에게 말했다. “고윤의 죄가 최호보다 큰데 어떻게 사면시킨단 말이냐?” 태자가 굽히지 않고 말했다. “고윤이 폐하를 대하자 정신이 혼미해진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 분명 최호 혼자 한 짓이라고 했습니다.”

태무제가 고윤에게 다시 물었다. “정말인가?” “아닙니다. 어찌 감히 폐하께 거짓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태자께서는 저를 불쌍히 여기시어 저의 목숨을 구해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태자께서 소신에게 물은 적도 소신 또한 그런 말씀을 드린 적도 없습니다.” 태무제는 고윤의 충직함과 솔직함에 감동했다. 나중에 태자가 고윤을 꾸짖으며 말했다. ”내가 그대를 살려주고자 했는데, 왜 나를 따르지 않았는가?“ 고윤이 답했다. ”저는 최호와 함께 국사를 만들었습니다. 최호에게 죄를 씌우고 거짓으로 삶을 구걸할 수는 없었습니다. 양심을 어기고 구차하게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은 당당하게 죽는 것보다 불쌍하고 초라합니다.”

국격은 돈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양심 바른 공직자가 많아지고 의로움이 넘쳐나야 한다. 국민은 지도자를 신뢰하고 지도자는 국민에게 정직하고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탐욕의 노예가 되지 않는다면 정권이 바뀔 때 마다 감옥에 끌려가는 욕됨은 피할 수가 있을 것이다. 최익현은 신창현감에 임명 돼 백성들의 칭송을 받았다. 상관이던 관찰사 유장환은 개인적인 부당한 일들을 많이 했다. 곧은 최익현은 그 잘못을 수차 지적했다. 유장환은 유감을 품고 그의 인사고과를 나쁘게 주었다. 최익현은 그날로 사직했다. 신창 백성들이 길을 막으며 머물기를 원했으나 그는 망설임이 없었다. 이 소식을 들은 스승 이항로는 “최익현이 늙은 부모를 모시고 어린 자식을 키우려면 생계가 막막할 것이다. 그럼에도 거취를 선뜻 결정했으니 주자의 글을 잘못 읽지는 않았구나.”라고 했다.

고궁절(固窮節), 도연명은 가난 속에서도 절개를 지키며 사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부귀와 도의가 늘 서로 싸우지만 도의가 이기니 얼굴에 근심이 없다고 했다. 살아가면서 두려운 것은 춥고 배고픈 것이 아니라 마음에 때가 끼는 것이다. 삶은 무(無)에서 와서 영겁(永劫)의 무로 다시 돌아간다. 현실은 잠시 스쳐가는 것이기에 전부인양 집착할 필요가 없다. 찰나의 가난을 근심하지 말고 영겁의 도를 근심해야 한다. 구차하고 궁색해도 그것에 구속되지 않는다면 관리는 욕됨을 막을 수 있다. 누구를 만나도 부끄러움이 없고 평화롭다면 소찬도 성찬보다 값지고 빛날 것이다.

글/황태영 대한북레터협회 회장, 희여골 대표, (주) 보림에스앤피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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