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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예술가들의 맥박’ 중국 문화혁명이 남긴 미술

[기고] ‘예술가들의 맥박’ 중국 문화혁명이 남긴 미술

기사승인 2018. 03. 11.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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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 중국 상하이대학교 미술대학원생
문화혁명 겪은 청년 예술가들 '역사 상처 조준'
서양 현실 비판주의와 합치 '상흔미술' 나타나
중국, 세계 미술시장 1위 우뚝...이젠 '완전한 미술' 꿈꿔
한결 중국 상하이대 미술대학원생
한결 중국 상하이대 미술대학원생
중국의 문화혁명이란 1966년부터 1976년까지 마오쩌둥((毛澤東)에 의해 일어난 극좌 사회운동 주의를 뜻한다. 그리고 이를 반대하는 세력을 가차 없이 숙청하는 권력 다툼 속에서 남겨진 예술을 중국의 혁명 미술이라 부른다.

이 기간에 남겨진 미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단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중국의 사회주의 세계관이 사람들에게 확실히 침투할 수 있게 마오쩌둥은 예술이라는 도구를 어떻게 사용했는지다. 둘째, 문화혁명 이후 현실 사회를 비판하는 중국 현대미술의 4대 천왕이 나오기까지의 배경을 알 수 있는 도구이기도 하다. 중국사회가 현재 왜 그러한 모습인지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자료다.

◇ 문화혁명 이전

잔혹한 문화 혁명이 시작되기 이전 당시 중국의 화가들은 캔버스 대신 목판화를 선택했다. 당시 캔버스는 그들의 한달 월급보다 더 비쌌다고 한다. 그래서 흑백의 작은 목판화들로 그들의 세계를 표현해 나갔다. 갖고 다니기도 쉽고 복제하기도 용이했다. 또 은색과 회색, 흰색의 선 굵은 판화로 모노크롬이라는 흑백이 주는 강렬함을 통해 전해지는 작가의 세계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대표적인 작가는 리 화, 구 위안 등이 있다.

한국에서도 박정희 정권시대에 모노크롬 회화가 출현하고 유행했다. 박서보와 이우환, 최병소 화가 등이 있다. 세계 곳곳에서도 정치적 이념을 담은 회화들의 특징은 주로 색을 절제한다. 정권과 모노크롬의 연관성은 단순히 우연을 넘어서 필수적인 요소가 아닌가 싶다. 아기가 처음 태어났을 때 분별할 수 있는 색은 흑백이다. 예술 속의 흑백은 예술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침투할 수 있는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중국 그림 1 21
1970년대 중국 포스터
◇ 문화혁명(Red·Bright·Shining)

예술은 인민을 위해 봉사하고 그들의 현실 생활을 반영해야 한다. 그 대대적인 공공미술 작업과정에서 이 시대의 작가들은 각자의 개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빨갛고 밝고 빛나야 한다.’ 이 시대의 선명한 작품들의 기준은 다름 아닌 마오쩌둥의 네 번째 부인 강칭이 세운 기준들이다. 강칭은 마오쩌둥과 함께한 4인방의 우두머리가 됐고 감옥에서 자살하는 비극적인 운명을 맞았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 문화공작 고문이기도 했던 강칭이 남겼던 영향력은 지금도 이렇게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탈북자들은 탈북을 시도하며 죽음의 위기가 닥칠 때마다 누군가에게 간절히 기도를 하게 되는 대상이 ‘하나님·부처님’이 아닌 ‘김일성·김정일’이라는 이름이라고 한다. 아주 오래 전부터 보고 들었던 그것은 그 사람에게 믿음이 되고 신념이 되며 더 나아가 사람의 운명을 이토록이나 좌우하는지 알게 해주는 좋은 예다.

작품이 이야기 하려는 것이나 사람들에게 공산당이 어떤 것인지 전달하려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다. 마오쩌둥의 초상화나 조각은 늘 남성적이고 한 손을 들고 있다. 마치 로마제국의 줄리어스 시저 황제와 같이 전형적인 위대한 ‘지도자의 포즈’다. 마오쩌둥에게서 나오는 후광이 빨간색인 것조차 디테일하다. 작품 속의 빨간색 옷을 입은 사람들은 모두 행복하게 웃고 있으며 먹을 것이 없을 정도로 가난한 당시에 볼살이 통통하게 올라와 있다.

회의나 강연을 하거나 공부를 하는 모습들도 자주 보이는데 빨간색, 즉 공산당이 이 모든 부유와 교육을 가져다 준다는 것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시선마저 ‘미래지향적’이라는 뜻을 담은 늘 먼산 어딘가를 쳐다보는 듯하며 정면이 아닌 위를 향하고 있다. 이 시대의 작품들은 추상적이지 않고 ‘나는 대단한 중국인이 되고 싶어요’, ‘나는 영웅이 되는 것을 배우고 싶어요’ 등 작품의 해설이 필요 없이 제목 자체가 명확하고 노골적이다.

중국 그림 1 2
1970년대 중국 포스터
◇ 문화혁명 이후

1976년 마오쩌둥이 죽고 나서 억압받던 화가들은 점점 눈을 뜨게 된다. 중국 첫 독립 예술잡지인 ‘중국 미술보’가 출간된 1985년을 기점으로 중국은 그들만의 ‘아방가르드’를 조금씩 되찾아가게 된다. 그리고 이 문화혁명을 겪은 청년 예술가들은 자신의 경험과 감정, 실패에 대한 반성을 지난 역사의 상처에 조준시켰다.

그리하여 명령으로 인한 창작과 현실을 왜곡하던 것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경향이 서양의 현실 비판주의와 합치어져 ‘상흔 미술’이라는 양식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동안 중국 현대미술을 장악하던 팡리준, 쟝샤오강, 쩡판즈, 위에민준 등 4대 천왕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 됐다. 중국만의 팝아트가 탄생하게 된 배경도 이 혁명 미술에 기반했다. 억압받았던 그들의 마음과 시대를 풍자하고 조롱함으로써 달래려하는 그들의 마음이 배였다.

오랫동안 미술시장의 패권을 잡고 있던 미국에 이어 2위를 놓고 영국과 순위 다툼을 벌이던 중국은 지난해 1위로 우뚝 섰다(‘아트프라이스(Artprice)’·‘아트론(Artron)’ 잡지 기준). 현재 국제 미술계에서 중국은 무서우리 만큼 커다란 시장이다. 이제와 돌이켜 보면 분명 상처가 됐던 그들의 역사는 예술가들의 현실에 활기찬 ‘맥박’이 됐다. 이제 중국의 미술은 정치성을 벗어나 완전한 미술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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