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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대한민국 XX, 더 이상 못 참겠다”

[칼럼] “대한민국 XX, 더 이상 못 참겠다”

기사승인 2018. 05. 13.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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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도발적인 대사 “대한민국 학교! 다 X 까라 그래!”로 유명한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유하 감독 작품을 따라가다 보면, 어떤 특정 시간과 공간에 천착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중에서도 ‘강남’에 대한 감독의 애정은 개인적인 기억의 재현을 넘어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역순으로 좇아가는 계보학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계보학은 정통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족보학과 틀려서, 그 계통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어떤 권위나 권력이 생성된 계기나 동기가 너무나 보잘것없는 것임을 밝히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말하자면 ‘뭣도 아니었음’을 학문적으로 규명해 내는 방법론이다. 우리가 지금 바라보는 두려움의 대상이나 경외감 혹은 부러움의 근거가 허구에 가까운 신화에 불과했음을 증명해 내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얼마나 조작된 상징적 욕망체계 속에서 헤매고 있었는지를 직시하게 한다.

감독의 프로필엔 특이한 이력이 보인다. 감독은 청년시절인 90년대 장정일 시인과 함께 문단의 촉망을 받던 신인이었다. 시집 ‘바람 부는 날엔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로 세기말의 불안과 욕망을 다소 냉소적인 태도로 묘사했던 시인은 동명의 영화로 영화감독의 길을 선택하지만, 평단과 대중의 외면을 받는다. 공백 기간을 보낸 후 ‘결혼은 미친 짓이다’로 재기에 성공한 감독은 ‘말죽거리 잔혹사’라는 영화로 대중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는다. 70년대 말 한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암울했던 시대의 불온한 정서를 하이틴 멜로와 홍콩 느와르 풍으로 잘 버무린 영화는 평단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게 된다. 이후 몇 편의 영화를 통해 다양한 소재로 자신이 가지고 있던 문제의식을 대중과 소통하려던 감독은 영화 ‘강남 1970’을 선보이며 다시 ‘강남’으로 발길을 돌린다.

이들 영화들을 이어보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부유한 공간인 강남에 대한 인류학적 보고서가 된다. 감독은 세기말의 압구정동이라는 욕망의 거리에서 70년대 말 교련복으로 상징되는 말죽거리의 한 고등학교로, 그리고 다시 배추밭과 넝마주이들의 터전이었던 알몸의 강남으로 시간 이동을 한다. 이러한 작업은 결과적으로 어떻게 강남 신화가 구축됐는지에 대한 계보학적 연대기가 된다.

이를 통해 유신독재 시절 기획된 부동산개발을 통해 재산을 축적하려는 권부와 재력가들의 더러운 치부가 그대로 재현되기도 한다. 또 그 시절 학창시절을 보내고 이후 청년이 돼 기성세대에 저항했던 386세대의 내면적 세계관에 삼투압 된 물질적 욕망과 민주주의라는 이상적 사회에 대한 욕구가 어떻게 모순적인 방식으로 부딪히게 되는지 고스란히 드러나기도 한다. 감독은 자기가 속한 세대의 ‘자기모순의 근원’을 계보학의 입장에서 좇아가며 스스로를 해체하는 작업을 했던 것이다.

유하는 상업영화 감독으로서 현실적인 감각을 지닌 동시에 현실에서 한걸음 벗어나 관찰자로서 보고 느끼는 대로 시어를 골라내는 시인이다. 그의 유년과 청년시절에 대한 기억에 남아있는 이미지나 특정 트렌드로서 고유명사는 그대로 시어가 되고, 그 시절의 보편적 관념은 그의 영화에서 해체된다. 특히 유하의 작업은 자전적 풍경으로서 서울이라는 공간의 인류학적 보고서와 그가 속한 386세대가 관통한 삶의 궤적에 대한 재현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렇게 감독은 서울이라는 욕망의 공간에서 생존과 이상의 문제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던 베이비붐 세대의 ‘욕망의 잔혹사’를 뜨거운 상업영화 코드에 차가운 방식으로 그려내고 있다.

‘강남 1970’의 등장인물들은 우연히 욕망의 전쟁에 끼어들었다가 헛된 욕망의 끝도 잡아보지 못하고 사그라져 간다. 바로 이 자리에, 세속의 공간에 이주한 소시민의 아들인 ‘말죽거리 잔혹사’의 고등학생 주인공은 ‘생존과 계급적 이념의 체험장’인 학교라는 공간에서 숨 막혀 하다가 스스로 일탈을 감행한다. 영화 ‘바람 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의 90년대 말 오렌지족으로 대변되던 이 욕망의 공간에서 인간관계는 권력과 돈에 의해 규정된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 역시 소진돼 버리거나 비자발적인 이주를 선택한다.

그렇지만 감독은 항상 그 폐허와도 같은 전쟁터의 공간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누구인가를 정확하고도 분명하게 묘사하고 있다. 강남을 배경으로 한 일련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과 주요 인물들은 대부분 밀려나거나 사그라졌지만, 그 와중에도 반드시 살아남아 권력을 쟁취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 부모나 배후의 권력, 부를 배경으로 하는 자들이었다. 감독의 영화가 허무주의로 읽히며 냉소적인 태도를 일관적으로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상을 꿈꾸면서도 욕망을 실현하고자 한 386세대를 대변한다. 현실 세계에서 그렇게 그들은 어쩌다 어른이 됐다. 그리고 그들은 격변하는 서울이라는 비좁은 공간의 생존경쟁에서 스스로가 항구적인 갑이 되기 위한 잠재적 을로서 현재 권력인 갑들을 위한 욕망의 체제에 순응하고 복종한다. 이어 저마다 다른 듯 비슷한 방식으로 일그러지고 끝내 소진돼 간다.

그런데 지금은 그 을들이 갑이라는 두려움과 부러움이 대상이 허상이었음을 직시하고 거리로 나선 듯하다. 현재 언론엔 대한민국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국적 항공사 사주 집안의 ‘갑질’이 연일 폭로되고 있다. 이제는 갑질도 모자라 밀수까지…. 아직 바닥을 치지 않은 듯하다. 그들의 행태를 보고 있자니 분통이 터진 사원들은 거리에 나섰다. 그동안 참아왔던 울분을 한꺼번에 담아 “대한민국 갑질 다 X 까라 그래”라고 외치는 듯하다. 이제는 ‘대한항공 잔혹사’를 끝내야 한다는 그들의 외침이 비장해 보인다. 진심으로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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