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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두 가지 불온한 상상

[칼럼] 두 가지 불온한 상상

기사승인 2018. 07. 15.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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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영화 ‘2009-로스트 메모리즈’는 가상의 역사를 다룬다. 만약 일본이 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 되고 동아시아 패권을 장악했다면 이후 우리 역사는 어떻게 됐을까? 대체역사를 기반으로 하는 이 영화의 기본 설정은 매우 도발적이다. 영화에서는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가 수포로 돌아가고 이토 히로부미가 이끄는 일본이 승승장구해 그들이 말하는 대동아공영권을 이뤄 2009년 확고한 제국을 형성한다.

만약 이 영화의 제작 주체가 일본이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아마도 반일집회가 서울 도심 곳곳에서 일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2009-로스트 메모리즈’는 이시명 감독이 연출하고 배우 장동건과 일본배우 나카무라 토오루가 투톱으로 주연을 맡은 메이드 인 한국 영화이다. 보수적 논객으로 유명한 소설가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를 원작으로 표방한 이 영화의 결말은 ‘타임 슬립’이라는 영화적 플롯을 통해 과거로 돌아가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성공시키고 역사를 온전하게 되살려 마침내 2008년 통일 대한민국으로 우뚝 서 번영을 이루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마지막 신은 회복된 일련의 역사적 장면을 몽타주 시퀀스로 처리해 우리의 애국심을 고취시킨다. 재미있는 것은 복원되기 전 ‘후레이센진’이라고 불리는 대일 조선인 저항단체 레지스탕스요원의 남루한 차림의 초췌한 어린 딸이 복원된 대한민국 역사의 몽타주 시퀀스에서 건강하고 예쁜 모습으로 등장해 관객의 심장을 뭉클하게 만들기도 한다는 점이다. 역사는 선조들의 것임과 동시에 우리의 것이지만 당위로서 미래의 것이다. 자연스럽게 우리가 애국심에 동화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이들에게 온전한 유산을 전해주는 것이 우리 자신의 유한한 DNA를 전달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상상이지만 영화와 같은 상상 하나를 해보자. 만약 국군기무사의 기획대로 2016년 11월 혹은 2017년 4월 촛불집회가 무력으로 탄압되고, 수백 대의 탱크와 특수전부대가 위수령이라는 이름으로 서울을 에워싼 후 군부의 영관급 장교들이 정부요직을 장악해 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됐다면 2018년 지금 우리의 일상은 어떻게 되었을까? 2018년 2월의 평창의 축제도, 4월의 남북정상의 만남이라는 평화적 무드도, 북미정상의 전쟁 종식에 대한 논의도 우리는 볼 수 없었을 것이다.

2018년 2월의 동계올림픽은 군부의 친위 쿠데타에 반대하는 서방국가들의 보이콧으로 반쪽 올림픽이 되고, 세계의 언론은 싸늘한 시선으로 정치적 후진국으로서 대한민국을 다룰 것이며 핵실험과 미사일 정국은 오늘도 우리 국민들을 불안에 떨게 했을 것이다. 특히 많은 국민들이 빨갱이로 몰릴 것을 두려워하며 반동의 시간을 살고 있었다면 이는 북한의 위협보다 훨씬 더 무서웠을 것 같다. 아니면 각성된 민중의 봉기로 내전에 준하는 상황을 맞아 우리는 서로 총부리를 들이대고 있을지도 모른다. 상상을 제안했지만 끔직하다 못해 몸서리가 쳐진다.

비극적이다. 영화처럼 ‘타임 슬립’이라는 장치 외에는 방법이 없어 보인다. 어디로 가서 역사를 온전히 돌려놓아야 할 것인가를 상상해야 한다. 만약 친위 쿠데타가 성공하고 군부를 동원한 수구세력이 무력으로 대한민국을 장악함으로써 국민들이 경찰국가에 온순해진다면 언제 어느 시점에서 누가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 무엇을 어떻게 바꿔 놓아야 할 것인가? 자고 있는 어린 아들 녀석에게 아빠의 불온한 상상이 미안해진다.

내 아이가 혹은 내 아이의 아이가 그런 미션을 수행해야 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라도 내 몸을 던져야만 할 것 같다. 우리 보통의 엄마아빠들이 유관순 열사가 되고 안중근, 윤봉길 의사가 될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아이들이 박종철, 이한열 열사가 돼야 하기 때문이다. 무력으로 지배되는 세상을 아이에게 넘겨줄 수는 없다.

만약 국군기무사의 기획대로 그런 일이 실제 일어나 많은 국민들이 빨갱이로 몰려 박해를 받은 후 일부 국민이 군부의 폭력을 피해 국제 난민이 돼 중동의 어느 해안가에 도착하고, 그 나라의 수용소에 격리돼 난민 신청이 받아들이기를 기다리는 상황에서 근본주의 이슬람정권이 이슬람권을 오염시킬 수 있다는 여론을 받아들여 난민 신청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상상도 해본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을 어느 땅에서 키울 수 있을까? 역시 불온하다 못해 끔찍하다. 역사엔 가정은 없지만 역지사지와 타산지석은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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