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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성탄절의 위장 평화

[칼럼] 성탄절의 위장 평화

기사승인 2018. 12. 2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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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변호사 사진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고문 / 숙명여대 석좌교수
성서는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가 첫 번째 호적 칙령을 내렸을 때 예수가 탄생했다고 전한다. 유대의 헤롯왕 시절이다. 이것은 단순히 예수의 탄생시기를 밝힌 기록이 아니다. 여기에는 빛과 어둠의 극명한 대조가 숨어있다. 카이사르의 손자뻘이자 양아들인 옥타비아누스는 안토니우스와의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뒤 원로원으로부터 아우구스투스(존엄한 자), 프린켑스(제1시민), 임페라토르(최고사령관)의 칭호를 부여받으며 사실상 첫 로마황제가 된다. 그는 제국의 국경을 튼튼히 수비하는 한편, 도로망을 확충하고 물자의 생산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전에 없는 번영과 평화의 시대를 열었다. 200년에 걸친 로마의 평화(Pax Romana)가 개막된 것이다.

그러나 제국의 식민지 유대에게 로마의 평화는 어둠의 시절이었다. 로마의 꼭두각시인 헤롯왕은 원래 안토니우스를 지지했지만, 옥타비아누스가 집권하자 재빨리 그에게 빌붙어 치욕스런 왕좌를 유지했다. 그 어둠의 시대에 예수가 탄생하여 2000년이 넘는 그리스도의 평화(Pax christi)로 영혼의 빛을 밝힌 것이다. 특정 종교를 대변하는 말이 아니다. 온 세계인이 평화를 기원하는 크리스마스 시즌이기에, 이 시대의 화두인 평화의 의미를 되짚어보려는 것이다.

로마의 평화와 그리스도의 평화가 같은 시기에 시작된 것은 매우 신비롭다. 로마의 평화는 무력으로 다른 나라를 억압하면서 겉으로만 평온을 유지하던 외면적·소극적 평화, 전쟁만 없을 뿐 자유와 정의가 짓밟힌 어둠의 평화였다. 반면에 그리스도의 평화는 군사력이나 민중혁명으로는 이룰 수 없는 내면적·정신적 평화, 신앙 안에서 거듭난 영혼이 누리는 빛의 평화다. 우리가 정치현실에서 바라는 평화는 로마의 평화도, 그리스도의 평화도 아니다. 내면적·정신적 평화야 정치권에 바랄 일도 아니지만, 외면적·소극적 평화에 만족할 수도 없다. 우리가 소망하는 평화는 ‘단지 전쟁이 없는’ 외면적 평화를 넘어 ‘자유와 정의가 살아 숨쉬는’ 실질적 평화임에 틀림없다.

동방박사로 알려진 페르시아의 천문학자들이 멀고먼 사막을 건너와 헤롯왕에게 메시아의 탄생지가 어디인지 물었다. 제사장들이 베들레헴이라는 답을 내놓자, 헤롯이 박사들에게 약속한다. “가서 아기를 찾거든 내게 알려주시오. 나도 그에게 경배하려 하오.” 거짓말이었다. 메시아를 찾아내 죽이려는 위장 평화의 속임수였다. 얼마 후 헤롯은 베들레헴에서 갓 태어난 사내아이들을 모두 살해했다고 한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를 노래하던 첫 번째 성탄절 무렵, 사악한 권력의 위장 평화가 베들레헴의 아기들을 불행한 희생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외면적 평화에 집착하는 정치권력은 내면적 평화는 물론 실질적 평화도 바라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적대시한다. 자유롭고 정의로운 실질적 평화가 자신의 권력을 위협할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무장을 해체하려는 국제적 노력이 힘겹게 계속되는 중이다. ‘화평굴기’를 외치는 중국이 팍스 시니카(Pax Sinica)를 꿈꾸며 미국의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에 맞서는 이때, 중국을 등에 업은 북한정권이 비핵화라는 평화를 약속하면서 그 대가로 체제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자유·인권·정의가 없는 외면적 평화의 약속이다. 인권탄압의 세습독재체제에서 진정한 평화는 가능하지 않다. 북의 핵무기·생화학무기가 모두 폐기되고 2500만 북한동포의 자유와 인권이 보장된 실질적 평화를 이뤄내지 않으면 안 된다.

외면적 평화와 실질적 평화, 그 선택과 결과는 모두 우리 겨레의 몫이다. 당장은 비핵화가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이기에 북의 비핵화 선언만이라도 진정한 약속이기를 바라지만, 만약 그것이 로마를 등에 업은 헤롯의 거짓말처럼 위장 평화의 제스처에 불과하다면, 아마도 우리는 불행한 희생을 걱정해야 할지 모른다. 첫 번째 크리스마스의 저 베들레헴 아기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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