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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상대평가와 자가당착

[칼럼] 상대평가와 자가당착

기사승인 2019. 01. 15.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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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석 교수
열흘 전쯤 한 학생으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학점 평가 방식에 대한 불만이었다. 교수의 평가가 배제된 수강생들끼리의 평가 방식은 담당 교수가 수강생들에게 평가를 떠넘기는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메시지를 접하고 정신이 번쩍 났다.

비교적 성적에 후한 편임에도 필자가 운영하는 수업에서 학생들이 수행해야 할 과제가 많기에 수강생들은 내심 A학점 이상을 기대했던 것 같다. 평가 방법에 대해 교수자로서 많은 고민이 따른다. 특히 고급 트랙 과목의 경우 조별 과제를 수행한 후 수강생들이 평가를 하는 방식으로 해왔다. 창작의 결과물에 대해 교수의 주관적 평가는 옳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교수의 개인적인 취향을 강요하고 싶지 않으며 피드백을 했을 때 학생들이 그것을 받아들이면 후한 학점을 주게 되는 ‘인지상정’을 배제하기 위함이다. 창작에 있어서 학생들이 반드시 교수의 의견에 따를 필요는 없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기에 몇 년 동안 이 방법을 고수해 왔다. 그게 맞는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그 방식을 바꿔야 할 것 같다.

몇 해 전 삼성이 입사시험인 SSAT(現 GSAT)를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가 취소한 일이 있다. 취지는 계량화된 평가를 폐지하고 대학에 자율권을 주어 인재를 추천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게 문제였다. 삼성이 입사시험에서 드는 비용을 절감하고 대학 간에 삼성 입사 TO를 두고 경쟁을 유발함은 물론, 같은 대학 내 전공 및 과별로 ‘취업권’을 두고 경쟁을 유발시켜 대학을 삼성의 통제하에 두고자 하는 의도로 읽혔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를 간파한 여론의 반발로 무산됐다. 이와 같은 내용에 대해 수업시간에 토론을 한 적이 있었다. 자본의 숨은 의도에 대해 알고서 응하자는 취지였다. 그런데 메일을 보낸 학생의 입장에선 그것과 필자의 평가방식에 차이가 없어 보였나 보다. 성찰해 보면 평가의 고통을 학생들에게 전가해 모면해보고자 했던 것 같다. 자기모순에 빠졌다.

작년에 스크랩해 두었던 신문 기사들을 정리하던 중 눈에 띄는 글이 있었다. 유명 일간지에 실린 ‘랭본대’라는 대제목이 달린 연재기사였다. 이는 ‘랭킹으로 보는 대학’의 준말이다. 해당 기사는 대학의 경쟁력을 비교 우위의 차원에서 다루고 있다. 특이한 점은 이 연재기사가 단 두 번에 그쳤다는 점이다. 두 번째 연재로 마지막이 된 기사를 소개하면 서울대와 같이 경쟁력이 높은 대학일수록 상대평가에서 취득할 수 있는 A학점 비율이 50%대로 높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반대로 경쟁력에서 하위에 있는 대학일수록 학생들이 취득할 수 있는 A학점비율을 20%대로 현저하게 축소하고 있다.

대학이 학생들의 평가에서 전격적으로 상대평가를 도입하게 된 계기는 주요언론사를 자칭하는 일부 신문사들이 대학평가를 실시한 데 있다. 여러 가지 평가항목 중 감초처럼 자리 잡고 있는 것이 학점을 상대평가로 관리하고 있는지에 대한 여부다. 학내 시설이나 전임 교수의 수, 연구 실적 등은 비용과 노력이 뒤따르지만, 딱히 별다른 노력 없이도 받을 수 있는 점수라면 대학 측에서 실시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앞에서 소개한 ‘랭본대’를 연재한 신문사가 선발주자였다는 점은 주지할 만한 사실이다. 그렇게 시작된 상대평가 방식에 대해 해당 언론사가 준엄하게 꾸짖고 있으니 모순 자체라 아니할 수 없다. 아마 해당 언론사에서도 이 점 때문에 연재를 중단하지 않았나 싶다.

현재 대학 내부에서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고자 역량 강화 방식의 수업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기존 지식기반의 티칭프로그램방식에서 4차 혁명시대에 맞는 러닝프로그램으로서 역량 강화 방식의 커리큘럼에 대한 모색이 진행 중이다. 역량을 체크하기 위해선 ‘계량화된 상대평가’가 아닌 ‘역량에 대한 보고서 형식의 평가’가 이루어져야 마땅하다. 패러다임이 바뀐 마당에 헌 틀에 새 프레임을 꾸겨 넣을 수는 없다. 그에 따른 비용은 교육부의 지원 하에 대학 내 구성원들이 품앗이하고 기업이 인용하는 방식이 돼야 한다. 이제 경쟁의 프레임을 거둬 낼 때다.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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