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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치혐오증과 양비론, 그따위 것은 없다!

[칼럼] 정치혐오증과 양비론, 그따위 것은 없다!

기사승인 2019. 05. 02.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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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석 교수
지난 4월 ‘미국’에 대한 할리우드 영화 두 편이 국내 상영됐다. 한 편은 조던 필 감독의 ‘어스’이고 다른 작품은 아담 맥케이 감독의 ‘바이스’이다. 먼저 전작은 판타지 공포 형식을 취하며, 다양한 상징코드를 숨겨놓음으로써 관객과 지적 게임을 유도하는 한편의 우화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뒤의 작품은 지난 부시 정권 시기에 부통령을 지낸 딕 체니의 인생 행적을 건조하게 재연하고 있다. 실제인물에 대한 고증과 묘사로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그런데 판이한 포맷의 두 작품 모두 미국의 현실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보인다. 또한 매우 비판적인 관점에서 미국인들에게 정치에 무관심할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경고하고 있다.

‘어스’는 레이건 시대 신자유주의가 표방된 이후로 미국인들의 삶이 어떻게 왜곡됐고 그로 인해 잃어버린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호러의 방식으로 풀어낸다. 사실 공포 장르로 분류되지만 어처구니없어 헛웃음이 나오는 코믹한 신도 많다. 지하의 복제인간을 도플갱어로 등장시켜 SF 장르를 차용하고, 구약성서의 예레미야서 11장 11절을 원용해 미국이 현재 걸어가고 있는 왜곡된 방향에 일침을 가한다. 유다왕국의 멸망처럼 자유경쟁이라는 시장을 우상으로 숭배한 미국 역시 종국적으로 자멸의 길을 걷고 있지 않으냐는 질문이며, 나아가 멕시코와의 국경에 펜스를 치겠다는 트럼프의 공약까지 우화적인 방식으로 비틀어 미국 현 정부의 난민 정책을 대놓고 힐난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현재 미국 사회에서 계급계층 간의 갈등이 고양되고 경제적 양극화가 고착화된 문제의 원인이 80년대 소수 네오콘 세력에 의해 획책된 자유경쟁 체제의 우상화라는 허위의식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꼬집고 있다.

바이스의 경우엔 배우들의 분장이 어쩌면 그렇게도 실제인물과 닮아있는가에 대해 놀라게 된다. 리얼리티를 구축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인 듯 싶다. 어쨌든 배트맨으로 유명한 크리스찬 베일이 거구의 딕 체니 역을 맡아 청년 시절에서 노년까지 극사실적으로 연기해 내고 있다. 그 외에도 부시 역을 맡은 배우는 입매 무시까지 똑같이 재연해 낸다. 이런 이유로 바이스는 영화임에도 마치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 ‘화씨 911’의 속편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영화의 두드러진 문제의식은 네오콘 세력의 핵심인 딕 체니를 통해 미국정치 이면의 막전막후와 어처구니없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데 있다. 영화에서 묘사되는 대통령 후보군에 대한 소수엘리트그룹이 도모하는 모종의 책략, 대통령 후보와 러닝메이트가 될 부통령후보의 결탁, 정치권과 경제계의 커넥션, 군사복합체를 옹호하는 미 국방성 수뇌부들의 뻔뻔스러운 작태를 보고 있자면 머나먼 타국의 이야기임에도 격하게 감정 이입하게 된다.

지금 한국에서도 영화보다 영화 같은 사건들로 넘친다. 그래서인지 요즘 두드러지게 대중의 관심을 끄는 한국영화가 없어 보인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클럽 버닝썬에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 마약과 연루된 각계각층의 유명인들에 대한 소식, 김학의 사건이라고 불러야 할 고 장자연씨의 죽음을 둘러싼 권력의 유착관계에 관한 강한 의혹들, 북미핵협상을 중심으로 한 남북미를 비롯한 동북아시아 국가들의 치열한 외교전, 구금된 두 전직 대통령의 보석과 형 집행 정지요구에 관한 논란, 재벌가의 경영권승계 문제를 두고 조작된 분식회계사건 등등 얼른 떠오른 굵직한 사건들만 나열해도 손가락이 모자라 보인다.

그런데 요 며칠 전 검경수사권조정에 관한 법률개정과 선거법개정에 대한 법안을 신속처리절차(패스트 트랙)로 처리하는 문제를 두고 벌어진 ‘국회난장판’ 사건은 우리를 우울을 넘어 조울증 상태에 빠지게 한다. 정치인들의 꼴불견으로 코미디보다 웃긴 상황이 연출되고 소위 ‘동물국회’가 된 국회의사당의 풍경은 우리들 맘의 울화를 치밀게 하고, 정치에 대해 혐오감을 가지게 충분했다. 한마디로 웃기기도하고 화나기도 한 ‘웃픈 현실’ 앞에 시민들로 하여금 대한민국정치를 어쩔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 봉착하게 하였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시민들은 권한을 맡긴 정치인들을 불신하고 직접적으로 국민청원과 같은 참여의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바로 잡기 위해 나섰다. 특정 야당에 대한 해산 청원이 연일 기록을 경신 중이다. 또한 맞불형식으로 현 여당에 대한 정당 해산 청원도 진행 중이다. 그 구도를 살펴보면 지난 촛불혁명 시기와 양상이 닮았다. 시민들의 탄핵 요구에 태극기 부대가 맞불을 놓고 있는 형국과 흡사하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역동성과 그에 수반된 갈등상황을 그대로 방치했을 때 되돌아오는 반동의 힘은 매우 폭력적인 방식으로 출현할 것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지금 수구세력의 작태는 정치 혐오증을 유발한다. 무책임한 언론은 중립을 가장해 양비론을 펼친다. 이들 세력 간의 암묵적인 협업은 궁극적으로 정치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고 다수의 국민들에게 정치를 외면하게 하고 무관심에 빠지게 한다. 정치가 실종된 틈을 비집고 수구 기득권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안정적인 시기의 일상적인 참여는 건강하나, 대립과 반목의 시기에 왜곡된 방식으로 폭주하는 참여는 자칫 갈등상황을 장기화하고 증폭시킨다. 이 같은 상황을 선순환으로 바꾸는 길은 정개특위에서 선거제도의 개정을 통해 온전한 대의민주주의가 원활하게 이뤄지게 함에 있다. 현재의 선거제도는 개별지역과 특정 기득권 세력의 권리만을 대의 할 뿐 다양한 사회의 계급계층을 대변하지 못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확실하게 정비해 다양한 가치를 대변하는 정당의 국회 진출을 보장하고 대의민주주의를 온전히 수행하는 것만이 혼선을 방지할 수 있는 길이라고 본다.

생각해보면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정치적 현안들이 웹툰이나 소설, 그리고 영화 등의 모티브로 활용되고 지금 여기의 우리 사회가 어떠했든지 증언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간과하면 안 될 것 같다. 그 소재가 진실 공방이든 막전막후이든 미스터리와 서스펜스 혹은 감동코드 등으로 플롯에 녹아들어 관객의 기억을 매개하게 된다는 점을 직시할 때 무관심하게 넘어갈 일이 아니다. 만약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철저히 은폐돼 그대로 넘어갔다면 우리는 현재 전혀 다른 국면과 대치하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그리 어렵지 않게 상상이 간다. 국가의 역할이 무엇인지 묻고 따지고 하는 사이 우리의 역사의 큰 줄기와 물꼬의 방향이 역동적으로 변하게 됐다. 그러나 늘 혁명적 상황일 수는 없지 않은가? 때문에 다양한 민의가 반영될 건강한 대의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제도가 무엇인지 언론과 정치권은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리고 제대로 선택을 받아야 한다. 이제 정치 혐오증과 양비론이 설 자리는 없다. 그따위 것은 시민이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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