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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사평역’, 마침내 그 침묵의 눈이 녹다

[칼럼] ‘사평역’, 마침내 그 침묵의 눈이 녹다

기사승인 2019. 05. 20.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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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석 교수
‘사평역’은 7~80년대의 산업화로 밀려난 소외된 민중과 서민들의 정서를 노래한 시인 곽재구가 그린 상상의 공간이다. 소설가 임철우 또한 곽재구의 시 ‘사평역에서’를 모티브로 한 단편소설 ‘사평역’을 발표한 바 있다. 우연한 기회로 필자는 이들 작품이 고등학교 국어 문학교과 과정에서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몇 해 전, 필자가 운영하는 강의시간에 과제로 수강생들이 단편다큐를 만들었다. 서너 명이 팀을 짜서 조별로 ‘잊혀진, 혹은 잊혀져가는 공간’에 대해 현장 스케치를 한 후 학기 말 과제로 영상물을 제작해 발표하는 형식의 수업이었다. 그중 한 팀이 기획시간에 아이템으로 가져온 것이 ‘간이역’이었다. 학생들은 고등학교 때 배운 시 ‘사평역에서’와 소설 ‘사평역’이 그린 좀처럼 오지 않는 행복을 기다리는, 서민들이 품고 있는 삶의 관조가 녹아있는 간이역에 대한 쓸쓸하면서도 평화로운 이중적 풍경을 담아보고 싶다고 했다.

강원도 태백의 한 간이역을 섭외하고 그곳에서 기차를 타는 지역민들과 방문객들을 인터뷰하고 그들 간의 정서적 교감과 차이를 비교해서 담아내려 한다는 기획 의도였다. 내부자와 외부자의 시선을 교차 편집한다는 구체적인 플롯에 대한 대안도 마련해 놓고 있었다. 필자 역시 기획 의도가 좋다는 평가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마음에 걸린 것이 있었다. 학생들이 파워포인트 자료에 링크해 놓은 시 ‘사평역에서’에 대한 동영상 강의 때문이었다. 대학입시용 인터넷 강의로 보였다. 10분 정도 분량의 짧은 강의였는데 유머러스한 강사의 명쾌한 설명이 돋보였다. 그러나 그 명쾌함 때문에 시에 대한 여타의 해석은 불가능해 보였다. 고등학생들이 시를 읽고 느끼고 시인과의 교감을 시도하거나 혹은 시인이 관통한 시대와 조우할 어떤 여지도 남겨두지 않았다.

인터넷 강의의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사평역에서’는 간이역대합실에서 언 손을 난로에 녹이며 겨울 창가에 아름답게 쌓여가는 눈꽃을 바라보며 오지 않는 행복을 기다리는 서민들의 애환과 관조의 정서가 녹아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틀린 해석은 아니지만 필자가 읽고 느꼈던 사평역과는 괴리가 컸다. 본의 아니게 수업시간에 정색을 하며 수강생들에게 ‘사평역에서’에 대한 필자의 해석을 장광설처럼 늘어놓았다.

‘시를 스테레오 타입으로 해석하면 안 되고, 아무리 서정시라 하더라고 시가 쓰여진 시대의 정서가 무엇인지 맥락을 잡아야 한다’며 긴 호흡으로 말하다 보니 불쑥 필자 역시 해석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는가 하는 자기모순을 발견했다. 그리곤 괜히 무색해져 필자의 해석도 여러 해석 중 하나에 불과하다며 꼬리를 내렸던 기억이 있다. 그럼에도 ‘사평역에서’는 침묵에 대한 미안함의 정서로 읽힐 필요가 있다.

필자의 입장에서 ‘좀처럼 오지 않는 막차’의 기억을 연착되는 행복으로 해석하는 것은 오류다. 연착된 기차가 도착하면 기어이 막차를 타고 사평역을 떠나야 하는 죄스러움이 고스란히 시어에 녹아있다. 광주학살 직후 침묵으로의 도피가 일상이 돼가던 시절에 품고 있던 민중의 자기 고백으로 해석될 수 있다. 대합실 창가에 핀 눈꽃도, 사평역사를 덮어가고 있는 함박눈의 은유도 모든 것을 덮어 보듬어 주는, 삶을 관조하는 애환의 정서로 해독하기보다는, 침묵으로 인해 진실이 조용하고도 지속적인 방식으로 은폐되는 현실에 직면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막차를 타듯 그 사실마저 외면해야 하는 시대에 시인이 느낀 비루함의 정서로 읽힌다.

그런 관점에서 시를 읽어가다 보면 ‘굴비 한 두름, 사과 한 광주리’는 광주의 희생자들에 대한 비유라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 파랗게 얼어 곱은 손을 펴가며 톱밥을 난로에 집어넣고, 쌓여만 가는 눈꽃에 진실이 감춰져 가는 현실을 녹여보려 애쓰지만, 역부족인 미약한 민중의 힘을 상징한다. 막차가 오고 사람들이 기어이 그 열차를 타고 가버리면, 덮여가는 진실과 침묵의 눈을 녹일 자는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그 기차는 막차이기 때문이다.

막차가 떠난 후 아무도 머무르지 않게 되면, 조용히 쌓여가는 함박눈처럼 침묵으로 덮여 수수꽃 단풍잎 같은 붉은 학살의 진실을 기억조차 못 할 수도 있다는 미안함과 죄스러움의 정서를 시인은 노래하고 있다. 시인이 그린 눈 쌓인 사평역사와 대합실의 풍경은 침묵으로 살풍경을 덮어버린 은폐된 공간이다. 사평역은 이름 그대로 학살의 시대, 역설적으로 평화로워 보이기에 평화가 죽은 공간을 노래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실 사평역은 상상의 공간이 아니라 시인이 시를 쓴 1981년 당시, 1년여 시간이 지났음에도 광주학살이 있었다는 실체자체도 모른 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히 침묵에 빠져있던 대한민국 5번째 공화국 현실에 대한 은유로 읽힐 필요가 있다.

그런데 지난주, 마침내 사평역을 덮고 있던 그 침묵의 눈이 봄날처럼 녹아내릴 것 같은 뉴스를 접하게 됐다. 그 동안 피해자들의 목소리만이 학살을 증언했기 때문에 진실의 문제가 정쟁의 문제로 오독돼 왔다. 하지만 이젠 가해자의 위치에서 당시 임무를 수행했던 정보부대 노병들의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그 사실만으로도 이미 충격적이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광주의 학살이 우발적인 충돌이 아니라 쿠데타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했던 당시 군부의 기획이었다는 증언이 있었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증언들이 봇물 터지듯 이어질 것 같다.

대한민국이라는 사평역에 봄날의 눈처럼 온 땅을 덮고 있던 40년 된 동토의 은폐된 막이 녹아내리고 그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눈이 녹아 드러난 붉은 남도의 황토엔 희생자들의 피가 녹아있다. 이제 우리는 그들의 희생과 용기를 내어 증언대에 오른 증언자들의 증언을 밑거름 삼아 역사쓰기를 새로이 해야 한다. 봄이 왔으면 우마를 깨우고 쟁기를 챙겨 녹은 땅을 갈아엎는 것이 마땅하다. 더 이상 잡초들이 자라지 못하도록...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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