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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CCTV 유감(遺憾)

[칼럼] CCTV 유감(遺憾)

기사승인 2019. 06. 1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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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준 서울시의사회장
박홍준 서울특별시의사회 회장
CCTV 시스템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나치독일에서 장거리 미사일 발사 순간을 모니터 했던 것이 최초로 알려져 있다. 3년전 추계로 3억대가 훨씬 넘었으니 현재는 전세계적으로 4억대 이상 설치됐을 CCTV는 77년이 지난 지금 연중 24시간 한 시도 쉬지 않고 지구촌 곳곳을 감시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CCTV는 위법적인 행위가 발생하기 쉬운 장소에 감시(Surveillance)를 통해 범죄의 발생을 줄이거나 발생된 범죄를 영상자료화 해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그 설치목적이다. 사물을 대상으로 할 경우에는 가성비가 CCTV 설치여부에 대한 판단기준이 되겠지만 그 대상이 사람일 때에는 반드시 사회적 의미를 고려해야 한다. 사람을 감시한다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기본 원칙인 인권보호에 어긋나는 행위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CCTV가 한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의료기관의 수술실에 설치되고 더 나아가 모든 수술실에 설치의무화를 주장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대리수술 등 불법적인 의료행위와 의료분쟁을 예방할 수 있다지만,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수술실의 특성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생각된다.

무엇보다도 수술실은 생명을 다루는 장소다. 단 한 순간도 긴장을 풀 수 없는 고도의 집중이 필요한 곳이다. 35년 넘게 수 많은 수술을 해온 필자도 매번 수술 전에 머리 속으로 그리며 집중과 긴장을 늦추지 않고 수술에 임하고 있다. 사소한 실수가 환자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수술실은 주어진 최선의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전념을 다해 생명을 구하고 고귀한 의술이 행해지고 있는 수술실이 범죄발생의 위험도가 아주 높아서 꼭 감시해야 될 장소이며, 모든 의사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한다면 어떠한 의사라도 최선을 다하기 어려우며 방어적인 수술이 될 것이다. 더구나 다양한 치료 과정의 일부인 수술현장을 멀리서 전경으로 CCTV 녹화한다는 주장이 의료분쟁의 어떠한 해결책이 될 것인지 설득력을 갖기도 어렵다.

환자와 의사는 신뢰가 최우선이다. 나의 병을 고쳐줄 수 있다는 믿음과 나를 믿고 찾아온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는 사명감이 우선인 것이다. 환자는 수술실에 설치된 CCTV 때문에 안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수술을 담당하는 의사를 신뢰할 때 진정으로 안심할 수 있다. 신뢰가 무너진다면 무엇이 남겠는가. 의사보다 CCTV를 의지하겠다는 왜곡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의심하고 감시받고 위축된 분위기는 소극적인 수술과 방어수술, 더 나아가 위중한 수술의 회피현상으로 이어지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와 가족에게 돌아가게 된다. 이런 변화에 대한 부작용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강제 설치로 발생될 수 있는 여러 문제로 인해 미국을 비롯한 OECD국가중 수술실에 CCTV 설치의무화를 시행하는 나라는 한 곳도 없다.

개인정보유출 위험 또한 상당하다. 수술실 특성상 환자가 촬영을 동의하건 않건 간에 민감한 인체부위가 포함된 프라이버시 자료가 유출 위험에 처해질 수 있다. 어떤 방식이던 영상 디지털자료는 해킹이나 유출 등 그 보안을 담보할 수 없으며 유포된 영상정보의 최대 피해자는 환자 자신이다. 얼마 전 모 의료기관에서 연예인의 성형 동영상이 몰래 촬영돼 거액의 금품을 요구하며 협박한 사건이 한 예다. 현재 아동학대, 학교 폭력 등을 예방하기 위해 공론화됐던 유치원과 학교의 CCTV 설치도 개인의 기본권 제한 문제로 의무화 되지 못한 상황에서 수술실의 CCTV 설치의무화는 인권침해 소지가 크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환자의 생사를 좌우하는 최전선에서 식사와 잠을 건너뛰며 환자의 생명을 구하고자 수술에 전념하는 많은 의사들을 CCTV로 감시하겠다는 주장은 너무 지나치지 않은가 묻고 싶다.

이미 외과계의 몰락은 한창 진행 중이다. 수술할 의사가 빠르게 감소하며 외과계 전공의 지원은 미달된 지 오래다. 분만 가능한 병원 찾기 힘들어지고, 일부 지역은 뇌출혈로 쓰러져도 신속하게 수술 받기 어렵다. 소아 심장수술을 담당할 의사의 부족으로 심장병 환아들은 수술받기 위해 외국으로 가야 할 날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정치권은 하루속히 치료과정에서 불가피한 결과를 입은 환자를 보호하고 소신진료, 최선의 수술을 할 수 있는 진료환경 조성을 위한 국가적인 제도보완을 논의해야 한다. 지금 우리 수술실에 필요한 것은 불신의 CCTV설치가 아니라 최선을 다한 의료진에 대한 신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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