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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방탄 대(對) 애국

[칼럼] 방탄 대(對) 애국

기사승인 2019. 06. 24.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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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BTS)가 세계적인 현상이 됐다. 그 중심엔 팬클럽인 아미가 있다. 어쩌면 아미는 현상을 넘어 세계문화사의 흐름을 바꾸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사전적으로 아미는 군대를 의미하는데, 이는 방탄소년단의 열렬한 군대가 되겠다는 다짐과도 같다. 전 세계에 포진해 있는 아미들이 지난 6월 초에 있었던 영국 웸블리 스타디움 공연에 몰려들었다. 마치 다국적 군대가 날을 잡아 일종의 집회를 연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들 군대의 적은 스타트랙의 지구연방군처럼 우주 바깥에 있지 않다. 군대를 자처하는 그들의 적은 누구인가?

사실 방탄소년단이 나오기 전 우리에게 방탄이라는 단어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았다. 방탄의 사전적 의미는 ‘날아오는 탄알을 막다’다. 자연스럽게 방탄복이 연상된다. 그런데 머릿속에 불량방탄복이 바로 떠오른다. 불량방탄복! 말 그대로 질이 좋지 않은 방탄복이다. 과거 총알에 뚫리는 방탄복은 방산 비리의 상징이기도 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일급비밀’의 소재가 바로 방산 비리다. 군과 정치권 그리고 기업의 결탁은 비리의 종합세트였다. 이로 말미암아 각종 군 장비들이 엉망으로 관리되고, 국민의 세금이 권력자들과 마름들의 호주머니에 들어갔다. 영화와는 달리 군 내부비리를 폭로한 장교는 양심선언 이후 삶이 고단해졌다고 전해진다.

방탄이란 단어가 부정적인 의미에서 사용된 경우가 또 있다. 바로 ‘방탄 국회’다. 국회의원은 국회 회기 중 국회의 동의를 얻지 않는 한 체포되지 않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 면책특권으로 법을 만드는 회기 기간 중 적어도 입법권을 보호하려는 장치이다. 바로 이런 점을 악 이용해 문제가 있는 소속의원을 보호하기 위해 특정 다수당이 주도해 열리는 국회를 의미한다. 기득권을 지켜내려는 권력 집단과 비호세력이 방탄의 의미를 오염시켜 놓은 지 이미 오래인 듯싶다. 지난 주 어렵사리 국회가 개원했음에도 아직 정상적인 국회 일정을 소화하지 못하고 있는 시점에서 과거의 악습인 ‘방탄 국회’조차 부러워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그야말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어찌하였든 BTS 이전, 방탄(防彈)이란 단어는 방탕(放蕩)하다는 뉘앙스까지 풍겼다. 방탄이란 단어가 긍정적임을 넘어 친밀하게 다가오는 것은 한마디로 격세지감이다. 그런데 지난 세기를 돌이켜보면 방탄소년단과 아미의 등장이 완전히 새로운 현상으로만 보이진 않는다. 20세기의 문화의 근간이기도 한 미디어 자본과 대중문화의 연장선에서 이해되는 면도 있다. 많은 이들이 BTS를 비틀즈와 비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뚜렷하게 구별되는 점이 분명 있다. 미디어 플랫폼의 극명한 차이다. 비틀즈의 열풍이 텔레비전과 라디오라는 대중매체가 주도해 공연과 음반시장의 확대에 영향을 미쳤다면 BTS와 아미 현상은 적어도 그 출발에 있어 SNS상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점화됐다고 볼 수 있다.

많은 이들이 변방의 변방에서 출몰한 방탄소년단을 보면서 공감하고 따라 하고 퍼 나르며 들끓는 사이에 그들 간에 유대가 만들어졌다. 그러고 나서 아미가 출몰하는 현상에 뒤늦게 발맞추어 메이저 판세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런 면에서 세상을 바꿔나가는 주체가 변하고 있다는 점을 주시해야 한다. 말하자면 세상을 흔드는 역동성을 만들어내는 심장 덩어리(매스)가 어떤 방향으로 생성돼 가는가를 주목해야 한다. 바로 인류가 숱하게 시도하고 실패한 혁명의 방향성인 수직에서 수평구조로 이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BTS와 ‘애국’을 애써 연결시켜 논하는 글들이 넘쳐난다. 이와 같은 부수적인 또 다른 기현상을 보면서 혁명이 녹록한 일은 아니구나 싶었다. BTS가 젊은이를 위로하는 지점은 국가주의와 같은 가부장적인 구조의 피라미드 사회, 그 맨 아래로부터 스스로 떨쳐 일어났다는 점이다. 그들은 존재만으로도 그들이 속한 Z세대를 위문한다. 그들이 그들 세대를 향해 선언적으로 방탄하겠다는 적의 총알은, 바로 왜곡된 애국을 강요함으로써 앙시앵레짐을 수구 하려는 세력의 총구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간과한 데서 온 어리석은 집단 무의식이다. 진짜 애국은 대상을 통하지 않고 스스로 자부심을 가질 때에야 가능하다. 방탄소년단처럼 말이다.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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