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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혁명, 이념, 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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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혁명, 이념, 특권

기사승인 2019. 09. 3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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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변호사 사진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고문 / 숙명여대 석좌교수
“왕의 목을 베어본 역사를 갖지 못한 국민은 혁명을 말하지 말라!” 프랑스대혁명으로 권력을 거머쥔 로베스피에르의 말이다. 그의 말대로 자코뱅 일파는 급진적 개혁을 추진하면서 광기서린 공포정치를 폈다. 국왕은 물론 수많은 정적들의 목이 단두대에서 잘려나갔다. 시민들은 자코뱅의 부릅뜬 눈초리를 피해 하루하루를 죽은 듯이 지내야했다. 자유·평등·박애의 이념은 정치적 선전구호일 뿐, 국민이 누릴 수 있는 권리는 아니었다. 봉건계급이 지녔던 특권은 폐지되었는가? 아니다. 부패한 자코뱅의 전유물이 되었다. 혁명 주역인 당통마저도 부정부패 혐의로 처단될 정도였다.

공포정치는 영구히 지속될 수 없다. 결국 테르미도르 쿠데타로 집권 5년 만에 실각한 로베스피에르는 정적들의 피로 얼룩진 기요틴의 칼날 아래 엎드려야 했고, 오래지 않아 나폴레옹 황제가 등장한다. 전제 왕정을 타도한 자유혁명의 뒤끝에 절대권력의 제정이 시작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왕족의 특권은 자코뱅을 거쳐 황족에게로 넘어갔다. 새 권력이 옛 특권을 차지한 것이다. 앙시앵레짐은 무너졌지만, 특권은 무너지지 않았다. 무너진 것은 시민혁명의 이념이었고, 능멸 당한 것은 프랑스 국민이었다.

니콜라이 2세 일가족을 즉결처형한 볼셰비키는 러시아의 왕족, 봉건귀족, 정교회 성직자들을 사형대로 내몰았다. 그들이 누리던 특권은 폐지되었는가? 아니다. 볼셰비키의 손에 들어갔다. “인류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다.” 공산당선언은 노동자·농민의 투쟁으로 계급을 타파하고 평등사회를 지향한다고 주장했지만, 무산계급의 대표라던 볼셰비키는 새로운 유산계급 ‘노멘클라투라’로 변신했다. 특권을 누리는 계급만 달라졌을 뿐, 특권 자체는 사라지지 않았다.

무산대중은 숙청된 귀족·지주들의 재산과 권리를 자기네가 차지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그 재산과 권리는 공산귀족의 차지가 되었다. 민중은 여전히 가난한 상태로 남겨졌고 그들의 후손 역시 빈곤만을 상속받았지만, 특권계급인 노멘클라투라는 제 자식들까지 공산당에 입당시켜 부와 권력을 대대로 이어갔다. 소련이 붕괴되고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정책이 시행되자, 권력실세들은 국영기업의 민영화에 뛰어들어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러시아의 새로운 특권계급 ‘올리가르히’의 출현이다.

‘자본주의의 고질적 폐해는 행복의 불공평한 분배, 사회주의의 고질적 폐해는 불행의 공평한 분배’라는 처칠의 지적은 부분적으로 옳지 않다. 사회주의 러시아에서는 불행도 공평하지 않았다. 민중은 혁명 이전에나 이후에나 늘 빈곤의 불행 속에 있었지만, 특권층인 올리가르히는 천민자본주의적 사치와 향락을 행복으로 여기면서 심지어 마피아와도 검은 손을 맞잡았다. 계급타파와 평등의 이념은 정치적 선동구호일 뿐, 러시아 국민에게 주어진 현실은 아니었다. 민중은 철저히 능멸 당했다.

“정직한 좌파는 머리가 나쁘고, 머리가 좋은 좌파는 정직하지 않다.” 레이몽 아롱의 촌철살인이다. 지난날 마치 정의와 도덕의 화신처럼 행세해온 고위공직자가 전대미문의 부패 의혹에 휩싸였다. 그는 사회주의 활동 전과가 부끄럽지 않다면서 전향 고백을 끝내 거부했다. 좋은 머리로 정밀하게 기획한 듯한 그 희대의 부패 의혹이 사실이라면, 아롱의 말처럼 그는 정직하지 않은 좌파, 위선적인 특권좌파에 불과할 것이다.

촛불시위를 혁명이라 부르는가? 혁명도 이념도 특권을 없애지 못한다. 특권계급만을 바꿀 따름이다. 부르주아 자유혁명은 우파특권계급을, 프롤레타리아 공산혁명은 좌파특권계급을 키워냈다. 역사의 뼈아픈 증언이다.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 현란한 정치구호가 등장할 때마다 서민대중은 넋을 잃고 환호성을 지르지만, 결국엔 스스로 능멸 당했음을 깨달아야 하는 비극으로 끝나곤 한다. 그 비극은 역사에서 배우기를 싫어하는 국민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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