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투데이 로고
[창간 14주년 특별기고]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정시·수시 논쟁 넘어, 교육의 미래지향적 혁신방향 논의돼야”

[창간 14주년 특별기고]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정시·수시 논쟁 넘어, 교육의 미래지향적 혁신방향 논의돼야”

기사승인 2019. 11. 20. 06:00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톡 링크
  • 주소복사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대전환기에 요구되는 교육혁신의 방향 고민해야"
"학생들, 암기식 교육에서 벗어나 창의적·주체적 지식탐구자 돼야"
조희연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최근 고교체제와 대입제도 개편 방안이 연이어 발표되면서 그 어느 때보다 교육 개혁에 관한 관심이 높아져 있다. 그리고 이를 반영하듯 우리 교육이 갖고 있는 문제점과 이에 대한 해결 방식도 백가쟁명으로 제출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이 빠진 느낌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2019년 대한민국은 어떤 내외적 조건에 처해 있고, 그렇다면 우리 교육의 목표와 방향은 무엇이 돼야 하는가 하는 근본적 물음말이다.

현재 전 세계인의 삶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조건은 두 가지, 기술 발전과 세계화다. 그것도 이전과는 다른 종류의 기술 발전이 세계화의 성격을 확장하고 있다. 스위스 제네바 국제경제대학원의 리처드 볼드윈 교수는 ‘그레이트 컨버전스’에서 이를 세 단계로 정리한다. 19세기 초 증기혁명으로 상품의 이동 비용이 낮아졌고(1차 세계화), 20세기 후반 정보혁명으로 지식의 이동이 자유로워졌으며(2차 세계화), 앞으로 텔레프레젠스(Telepresence)와 텔레로보틱스(Telerobitics)의 발전으로 인간(노동력)의 이동마저 세계화되리라(3차 세계화)고 전망했다.

1차 세계화의 열매는 흔히 우리가 선진국이라 부르는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주로 차지했다. 한국은 냉전이라는 환경 속에서 여러 우연과 노력의 결과로 이 흐름에 올라탈 수 있었다. 동아시아 국가로는 매우 예외적인 경우다. 1차 세계화 시기는 우리의 산업화 시기와 겹친다. 이 시기에 대기업 중심, 수출 주도를 특징으로 하는 대한민국 경제와 산업정책의 패러다임뿐만 아니라 교육의 패러다임까지 결정됐다. 선진적인 지식을 누가 더 잘 암기하는가를 놓고 줄세우는 ‘암기식 지식교육’ 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이후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2차 세계화는 냉전의 붕괴와 아시아 국가들의 개방으로 인해 전세계 노동력이 두 배로 늘어났고, 하버드대 리처드 프리먼 교수가 ‘그레이트 더블링’이라 부르는 현상과 동시에 전개됐다. 이로 인해 선진국의 제조업은 가격 경쟁력을 잃고 급속히 몰락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실리콘 밸리’로 표상되는 새로운 고부가가치 산업과 서비스 산업이 팽창했다. 제조업이 제공하던 중산층 일자리가 없어지고 고임금·저임금 서비스업 일자리가 대폭 늘어난 결과 주요 선진국의 불평등은 점점 심해지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지방의 괜찮은 제조업 일자리가 매년 사라지는 가운데 소득 및 자산 불평등이 날로 심해지고 있다. 게다가 이는 적성과 특기를 강조하는 교육 패러다임의 변화와 맞물려 교육에서의 격차를 더욱 두드러지게 만들었다. 최근 우리 사회를 흔들어놓은 몇몇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그동안 부모의 사회경제적 위치가 교육의 접근성 자체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에도 부모의 소득이나 자산이 자녀의 교육에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대학 진학률 자체도 높지 않은 상태였고, 암기식 교육이 개인적인 노력에 일정하게 보상하는 측면도 있었다. 확장 국면에 있던 제조업 일자리 역시 사회경제적 격차를 완화하는 역할을 해냈지만, 지금은 이 모든 조건이 달라지고 있다.

여기에 더해 그것을 3차 세계화, 또는 4차 산업혁명 또는 인더스트리 4.0, 또는 인공지능시대, 또는 그 무엇으로 부르든 간에 새로운 종류의 기술 발전 흐름이 더해지고 있다. 노동의 종말을 예측하는 학자들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기본소득을 보장해야 한다는 논의도 있다. 반대로 기술 발전이 다른 종류의 일자리를 만들어낼 것이기에 큰 문제가 아니며, 이와 동반되는 인구 감소는 오히려 다행이라는 주장도 있다. 어찌됐든 우리는 지금까지 익숙했던 환경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도전들에 마주했다고 할 수 있다.

그간 한국의 교육은 학생들을 더 많은 지식을 습득해 승자가 되도록 하는 경쟁에 내몰았다. 혹자의 표현대로 인공지능을 ‘기계의 인간화’라 표현한다면, 우리는 학생들을 지식 암기 기계로 만드는 ‘인간의 기계화’를 실천하고 있었다. 우리 시대 교육혁신의 핵심은 어떻게 하면 과거의 암기식 지식교육을 뛰어넘어 진정으로 학생들의 창의력을 길러낼 것인가 하는 것이다.

학벌이나 학력과 같은 고정화된 기득권 자본을 획득하기보다 창의적이고 유연한 미래역량을 키우는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 학생들이 단지 지식의 수동적인 피전달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창의적이고 주체적인 지식탐구자가 되도록 해야 한다.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가 아니다. 교육 문제를 이런 거시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교육을 마치 세상과는 무관한, 독립적이고 기술적인 문제로 접근해서는 답이 없다. 최근 치열한 정시·수시 비율을 둘러싼 논쟁이 학부모들에게는 지극히 절박하지만, ‘찻잔 속의 태풍’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승자를 정하는 방식에 대한 토론만 있지 우리 시대의 승자와 패자 모두가 과거와는 다른 어떤 미래지향적 역량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없다. 지금이라도 ‘도대체 2019년 대한민국의 교육은 어떤 방향과 목표를 가지고 있는가’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정책적 대안은 무엇인가’와 같은 보다 본질적인 논의가 이뤄지길 소망한다.
후원하기 기사제보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