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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불확실성의 시대와 제도: APEC 회의에 대한 기대

[기고] 불확실성의 시대와 제도: APEC 회의에 대한 기대

기사승인 2016. 11. 18.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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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무역통상본부장
정철KIEP사진
정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무역통상본부장
불확실성의 시대다. 최근 미국 대선에서 예상을 뒤엎고 도널드 트럼프가 차기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지난 6월에는 영국의 브렉시트 투표 결과가 우리를 놀라게 했다. 신 고립주의와 보호주의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민이나 자유무역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있다. 특히 신 자유주의의 대표주자인 미국과 영국에서 이러한 결과가 나왔다는 사실은 반세계화 정서의 확산과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우려를 더욱 증폭시킨다. 글로벌 교역이 둔화하는 가운데 정치·경제적 불확실성의 증대와 보호무역주의의 부상은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에 기회라는 요인이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이 그 동안 참여하고 추진해온 양자 간 FTA와 다양한 복수 국 간 협정 등 통상정책과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경제통합을 위한 협력정책의 궁극적 목적이 결국은 제도의 통합과 상생을 통한 기회 창출과 공동번영에 있기 때문이다.

1만 시간의 법칙으로 잘 알려진 말콤 글래드웰의 베스트셀러 ‘아웃라이어’의 하이라이트는 ‘지구상에서 가장 하키에 미친 나라’로 알려진 캐나다에서 잘 나가는 아이스하키 선수들이 태어난 달이 1·2·3월에 몰려 있다는 흥미로운 통계다. 이유가 뭘까? 캐나다에서는 코치들이 아홉 살이나 열 살 무렵의 소년들을 대상으로 후보 군을 찾는다. 이때 몇 달이라도 더 일찍 태어난 소년들이 신체적으로 더 발달하고 더 많은 경험을 갖기 때문에 코치의 눈에 띌 확률이 높다. 이렇게 선발된 소년들은 더 많은 경기에 나가고 더 훌륭한 코치를 만나 더 높은 수준의 리그에서 뛰게 된다. 이들이 선천적으로 재질이 뛰어난 게 아니라 그저 몇 개월 더 일찍 태어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캐나다에서 태어난 모든 1월생이 하키스타가 되는 것은 아니며 12월생 중에도 뛰어난 하키선수가 있다. 다만 같은 재능을 갖고 태어나 같은 수준의 노력을 기울였을 때 1월생이 캐나다에서 하키선수로 성공할 확률이 12월생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것이다. 1월 1일을 기준으로 하는 캐나다와는 달리 9월 1일을 기준으로 하는 영국의 경우 1990년 프리미어리그에 출전한 선수들 중에 9~11월생이 288명인데 반해 6~8월생은 136명에 불과하다는 통계도 있다.

통계에 숨겨진 핵심은 출생 월별로 다른 결과가 나오게 된 이유가 제도에 의해 다르게 주어진 기회 때문이라는 것이다. 개별 국가의 제도가 중요한 만큼 지역의 공동 발전을 위해서 역내 국가들 간의 제도적 일관성이 필수적이다. 근래에 와서 세계무역기구(WTO)와 다양한 복수 국 간 무역협정들이 관세와 비관세장벽의 철폐를 넘어 통일된 규범의 정립과 국내 규제의 투명성 제고 및 일관성 등 회원국 간 제도의 정합성을 강조하는 이유다.

제도는 정책에 의해 만들어진다. 최근 국제사회의 근간을 흐르는 새로운 트렌드는 과거 영국의 경제학자 조안 로빈슨이 명명한 ‘근린궁핍화’ 정책과 맞닿아 있다. 다른 나라의 희생을 강요하면서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상대국들의 반발과 보복을 유발하고 보호주의 경쟁을 통해 공멸하는 ‘바닥으로의 경쟁’ 현상을 필연적으로 부른다. 미국과 영국의 투표결과가 반영하는 세계적 현상에 대한 우려가 더 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올해 APEC 주제는 ‘질적 성장과 인간개발’이다. 지역경제통합과 질적 성장, 중소기업의 현대화, 인적 자원 개발, 역내 식품시장의 발전이 핵심의제다. 그 어느 때보다도 불확실성이 커져가는 국제통상환경에서 다자 간 협력의 중요성을 다시 부각시키고 근린궁핍화 정책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한국 대표단이 나서서 강조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질적 성장과 아태지역의 공동번영을 위한 창의적인 해법이 이번 APEC 회의장에서 도출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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