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투데이 로고
[기고]시간을 건너온 맛의 깊이 ‘종가맛집’

[기고]시간을 건너온 맛의 깊이 ‘종가맛집’

기사승인 2018. 05. 11. 06:00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톡 링크
  • 주소복사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이용범 원장님(기고용)
이용범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장
종가음식은 몇 백 년 동안 대를 이어 한 집안에 전해 내려오는 전통음식이다. 켜켜이 쌓인 시간과 정성 덕분에 깊은 맛이 난다.

오랜 세월 전해진 음식이기에 식재료마다, 조리법마다 함께 내려온 이야기가 있어 재미를 준다. 한 예로 경남 함안 고려종택의 전복요리에는 효심 깊은 며느리가 병이 깊은 시어머니에게 전복을 대접하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자 우물에서 전복이 나왔다는 이야기가 함께 전해진다.

음식과 더불어 종가의 문화와 역사가 이야기가 되어 상 위에 오르는 것이다.

종가는 한 가문을 대표하는 곳이고 1년 내내 제사뿐만 아니라 손님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보니 음식의 모양새와 차림새도 허투루 하지 않는다. 맛과 색을 고려해 조화롭게 차려진 음식은 화려하진 않지만 품격 있고, 소박하지만 정갈해 입뿐만 아니라 눈까지 즐겁게 만든다.

한 호텔에서 종가음식의 대중화를 위한 프로모션을 시작하며 ‘미미정례(味美情禮)’라는 말을 선보인 적이 있다.

한결같은 맛과 멋, 상부상조를 실천하는 정과 관혼상제의 예. 종가음식에 내재된 가치, 종가음식이 추구하는 바를 정확히 표현한 말이 아닐까 싶다.

사람들은 보통 종가음식이라고 하면 진귀하고 값비싼 식재료를 쓰고 상차림이 화려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종가음식은 그렇지 않다.

직접 담근 장과 지역에서 난 제철 식재료로 만들어 신선하면서도 건강한 맛이 나는 것이 종가음식이다.

또한 충남 홍성 양주 조씨 장렬공파 종가의 붕어찜, 경기 안성 오정방 종가의 소고기 국말이 국밥, 경남 함양 일두 정여창 종가의 종가국수처럼 지역 특색을 갖춘 향토음식이자 철에 맞게 먹는 일상 음식이다.

멀게만 느껴지던 종가가 문을 활짝 열고 우리 앞에 섰다.

농촌진흥청이 ‘종가음식 관광프로그램 운영 시범 사업’을 통해 ‘종가맛집’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종가의 문턱은 낮아졌지만 맛과 품격은 그대로다. 음식과 함께 오랜 시간 익어온 문화도 만날 수 있다.

종가는 내림음식을 비롯해 가문의 제례, 각종 건축기법이 녹아있는 종택, 역사와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잘 보존돼 있어 한국 전통문화의 정점으로 손꼽힌다.

식사 후 잘 손질된 고택을 둘러보고 마당을 거닐며 종가만의 분위기를 오롯이 느껴볼 수 있다.

몇몇 종가에서는 쌀떡 만들기, 다도 등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에도 좋다.

종가를 품고 있는 농촌마을도 빼놓을 수 없는 여행 코스다. 시골길을 거닐고 군데군데 숨어 있는 옛 정취를 둘러보면서 봄을 만끽하는 것은 어떨까? 아마도 종가의 ‘미미정례’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1990년대 연 평균 86일이던 봄이 2000년대 76일, 2010년대 68일로 바짝 짧아졌다.

가는 봄이 아쉬워 나들이를 준비한다면 ‘종가맛집’을 추천하고 싶다. 인스턴트와 외식에 익숙해진 입을 편안하면서도 깊은 맛으로 위로하고, 시간을 건너온 듯 잘 보존된 고택에 앉아 옛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종가맛집’만이 줄 수 있는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될 것이다.
후원하기 기사제보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