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법꾸라지’라는 비아냥 섞인 표현이 유행하고 있다. 의혹이 있고 심증으로는 혐의점이 있는 인물들이 자신들의 해박한 법률 지식과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법망을 미꾸라지처럼 교묘히 빠져나간다는 뜻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핵심 의혹 인물인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전형적인 ‘법꾸라지’다. 김 전 실장은 최순실 사태가 수면 위로 떠오르자 몇 상자 분량의 서류를 폐기하고 본인의 휴대폰을 초기화하는가 하면 자택의 CCTV 녹화기록마저도 모두 삭제했다. 김 전 실장의 말대로 본인이 최순실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면 굳이 할 필요가 없는 일들이다.
우 전 수석도 마찬가지다. 그는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의 증인으로 채택되었음에도 단 한 차례를 제외하고는 번번이 출석을 거부했다. 국조특위가 그를 출석시키기 위해 동행명령장을 발부했음에도 그는 일부러 잠적해 동행명령장이 집행되지 못하게 했다.
이들이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이들이 고의로 증거를 인멸하고 동행명령을 회피했다는 심증은 충분하지만 법적으로는 그것을 입증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고위 인사가 얽힌 권력형 스캔들이 터질 때마다 증거인멸을 막기 위해 ‘긴급 구인 명령’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거나 동행명령 거부에 대한 적용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법과 제도를 아무리 강화한다 해도 경찰과 검찰 등 사법기관의 집행 의지가 약하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법을 잘 모르고 힘없는 서민들에게는 가장 무서운 것이 공권력의 집행이다. 하지만 오히려 더 높은 기준으로 법 적용받아야 할 고위층들에게 사법기관은 미온적인 수준을 넘어 오히려 우호적으로 보일 때도 있다. 고위층 인사에 대한 사법기관의 대응이 더욱 엄격해지지 않는 한 이러한 권력형 스캔들은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