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투데이 로고
[손수연의 오페라산책]김광보 연출의 서울시오페라단 ‘베르테르’

[손수연의 오페라산책]김광보 연출의 서울시오페라단 ‘베르테르’

기사승인 2019. 05. 13. 11:05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톡 링크
  • 주소복사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봄바람처럼 감상적이고 아련한 한 편의 멜로드라마"
[세종] 오페라 베르테르 01
오페라 ‘베르테르’의 한 장면./제공=세종문화회관
봄은 프랑스 오페라를 공연하기 적당한 계절이라고 생각한다. 5월의 따스한 햇살과 라일락 향기는 프랑스 오페라의 서정적이고 우아한 선율과 닮아있다. 지난 1일부터 4일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서울시오페라단이 공연한 쥘 마스네 작곡의 프랑스 오페라 ‘베르테르’는 그런 의미에서 적절한 기획이었다. 이 오페라는 이루지 못한 사랑의 비극으로 유명한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원작으로 한다.

이번 작품은 서울시 산하 예술단체간 협업의 일환으로 김광보 서울시극단장이 연출을 맡아 더욱 기대를 모았다. 스타급 연극연출가들의 오페라 연출은 이제 우리 오페라무대에서도 낯선 일은 아니다. 연극연출가의 오페라 연출은 장르의 어법과 표현방식이 다르다고는 하나 드라마를 기반으로 하는 모든 극예술 사이에 존재하는 공통분모가 크다는 점에서 그 자체가 큰 이슈가 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오페라에 대한 색다른 접근이 신선한 무대를 만들어 낼 수 있으며, 최근 오페라 트렌드인 연출가 중심주의를 강조한 작품이 나올 수도 있다.

김광보 연출은 여주인공 샤를로트를 팜므파탈처럼 그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원작에 나오는 지고지순한 여성이 아니라 욕정에 흔들려 남성을 파멸로 몰고 가는 치명적 여성을 나타내고자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4일 공연에서 샤를로트는 상당히 적극적이며 뭔가에 쫓기는 여성처럼 표현됐다. 특히 3막과 4막에서 그녀는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베르테르를 감정의 극한으로 몰고 간다.

그러나 연출 의도와는 별개로 이번 오페라는 봄바람처럼 감상적이고 아련한 한 편의 멜로드라마로 다가왔다. 그것은 마스네의 격정과 서정을 동반한 선율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지만 환상적인 영상으로 시각적 효과를 표현한 연출 때문이기도 했다.

1막에서 베르테르와 샤를로트가 함께 파티에 참석한 뒤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까지의 하룻밤은 회전무대를 이용해 파노라마처럼 아름답게 펼쳐졌다. 관객들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끌리게 되는 순간을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바라보았고, 샤를로트가 약혼자를 두고도 왜 베르테르에게 흔들리게 됐는지 공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오페라에서 베르테르와 샤를로트는 봄에 만나 겨울에 이별을 맞이한다. 작품은 사계절의 변화에 따라 변해가는 베르테르와 샤를로트의 상황과 감정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세종] 오페라 베르테르 03
오페라 ‘베르테르’의 한 장면./제공=세종문화회관
이날 베르테르를 맡은 테너 김동원은 안정적인 발성과 서정적인 음색으로 오페라를 이끌었다. 특히 이 오페라의 백미인 3막의 아리아 ‘왜 나를 깨우는가, 봄의 숨결이여’에서는 격렬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빼어난 가창과 표현력으로 소화해 큰 박수를 받았고 4막에서 죽어가는 베르테르의 모습까지 호소력 있게 노래했다. 샤를로트 역할의 메조소프라노 양계화 역시 불안정한 팜므파탈의 모습을 잘 표현했다. 3막 편지의 아리아를 농밀한 감성으로 잘 완성했고, 베르테르의 아리아 뒤에 이어지는 격정적인 이중창을 통해 극적 몰입감을 끌어올렸다.

이번 ‘베르테르’에서 가장 돋보였던 것은 박상봉 디자이너가 맡은 무대였다. 선명한 색감의 영상을 배경으로 무대를 깊숙한 안쪽 공간까지 입체적으로 사용했고 중앙에 투명한 아크릴 박스를 다양한 공간으로 활용해 연출이 의도한 등장인물의 사실적이고 현대적인 표현을 더욱 생생하게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양진모가 이끈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대규모 편성으로 작품에 풍성함을 더했다. 1막에서 우아한 선율의 묘사가 지나친 나머지 다소 나른한 느낌을 주기도 했지만 베르테르와 샤를로트의 감정을 따라가며 점차 강렬한 욕망과 서정적 감성의 양극단을 매끄럽게 그려냈다.

국립오페라단과 더불어 서울시의 국공립오페라의 한 축을 담당하는 서울시오페라단 연간 예산은 10억원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한 편의 완성도 높은 작품을 내놓은 서울시오페라단의 묵묵한 행보에 격려를 보낸다.

/손수연 오페라 평론가, 상명대 교수(yonu44@naver.com)


손수연
후원하기 기사제보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