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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전 여는 추상미술 거장 박서보 “숨기고 싶던 것까지 다 드러냈다”

회고전 여는 추상미술 거장 박서보 “숨기고 싶던 것까지 다 드러냈다”

기사승인 2019. 05. 17.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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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서울서 160여점 전시 "그림은 수신을 위한 수행의 결과"
박서보 간담회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박서보(88)가 16일 자신의 회고전 ‘박서보 : 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가 열리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작품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제공=국립현대미술관
“자다가 남산 중앙정보부도 끌려가고 숱한 어려움이 많았지만 어떤 것에도 굴하지 않고 도도하게 살아온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습니다.”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박서보(88)는 16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린 대규모 회고전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는 18일부터 9월 1일까지 ‘박서보 : 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란 제목으로 열리는 이번 회고전은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과 함께 해 온 박서보의 삶과 화업을 조망한다. 1950년대 ‘원형질’부터 2000년대 ‘후기 묘법’, 올해 신작까지 총 160여 점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박서보는 “살아오면서 때로는 숨기고 싶었던 것까지 (이번 회고전에서) 다 드러냈다”며 “발가벗고 서 있는 입장”이라고 털어놨다.

이어 그는 “평생을 한국 현대미술을 어떻게 세계화할 수 있는가, 독자적 예술세계를 어떻게 구축하는가 고민해왔다”고 전했다.


《박서보-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 전시 전경
박서보 회고전 ‘박서보-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 전시 전경./제공=국립현대미술관
‘묘법’ 연작으로 독보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온 박서보는 평론가, 행정가, 교육자로 평생을 한국 현대미술을 일구고 국내외에 알리는 데 힘써왔다.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한 그는 1956년 ‘반국전 선언’을 발표하며 기성 화단에 도전했고, 1957년에 발표한 ‘회화 No.1’으로 국내 최초 앵포르멜 작가로 평가받았다. ‘파리비엔날레’에 한국이 참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등 한국 미술의 해외 진출과 국내에 서구미술 동향을 알리는 데 힘썼다. 홍익대 미대 교수로 재직하며 학장을 역임했고 미술교육 혁신에도 앞장섰다.

이날 간담회에서 박서보는 홍대 교수 시절을 돌아보며 “학생들이 교수를 선택해서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바꾸었다”며 “전기가 안 들어와서 촛불 켜놓고 수업하기도 하고 신촌 집에서 새벽 3시에 학교로 가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고 얘기했다.

이번 전시는 그의 70여 년 화업을 다섯 시기로 구분해 보여준다. 역순으로 구성된 전시는 들머리에 작가가 올해 완성한 대작 2점을 걸었다.

핑크색과 하늘색 바탕에 유백색 물감을 바르고 연필로 무수히 그은 작품이다. 조수를 쓰지 않고 혼자 완성했다는 이 신작들에 관해 박서보는 “얼마를 준다 해도 팔지 않겠다”고 했다.

‘후기 묘법’ 시기 작품들을 소개한 공간에서는 작가가 1990년대 중반부터 손의 흔적을 없애고 막대기나 자와 같은 도구를 이용해 일정한 간격으로 고랑처럼 파놓은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이 시기 작품들에 사용된 미묘한 색채의 향연은 그야말로 감탄을 자아낸다.

‘중기 묘법’ 시기를 소개한 전시장에는 1982년 닥종이를 재료로 사용하면서 한지를 발라 마르기 전에 문지르거나 긁고 밀어 붙이는 등 행위를 반복한 작품들이 전시된다. 이른바 ‘지그재그 묘법’이다.

‘초기 묘법’ 시기에서는 어린 아들의 서툰 글쓰기에서 착안해 캔버스에 유백색 물감을 칠하고 연필로 수없이 선긋기를 반복한 1970년대 ‘연필 묘법’을 소개한다.

‘유전질’ 시기는 1960년대 후반 옵아트, 팝아트를 수용하며 기하학적 추상과 한국 전통 색감을 사용한 ‘유전질’ 연작, 1969년 달 착륙과 무중력 상태에서 영감을 받은 ‘허상’ 연작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원형질’ 시기에서는 한국전쟁의 상흔으로 인한 불안과 고독, 부정적 정서를 표출한 ‘회화 No.1’, 1961년 파리 체류 이후 발표한 한국 앵포르멜 회화의 대표작 ‘원형질’ 연작을 소개한다.

박서보는 지난 화업을 돌아보며 “테크닉이 정신을 앞서면 그림이 망하는 것”이라고 예술에 대한 지론을 펼쳤다.

“예술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시대를 꿰뚫어보는 통찰력과 식을 줄 모르는 열정입니다. 이 두 가지만 있으면 돼요. 오히려 지식은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책을 읽고 나서 버렸습니다.”

또한 그는 “그림은 수신(修身)을 위한 수행의 결과”라며 “21세기 지구는 스트레스 병동이 됐는데 내 그림은 ‘치유’를 전한다”고 자평했다.


박서보, 묘법(描法) No.080618
박서보의 ‘묘법(描法) No.080618’./제공=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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