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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구 순천향대 교수 “이순신 종가 귀선도‘는 ’거북선‘ 고증 사료” 주장

홍순구 순천향대 교수 “이순신 종가 귀선도‘는 ’거북선‘ 고증 사료” 주장

기사승인 2019. 04. 25.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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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선도
귀선도 /제공=순천향대학교
순천향대는 홍순구 교수(디지털애니메이션학과)가 그동안 아산 현충사 소장의 이순신 종가에서 전해지던 작자 미상의 ‘귀선도’가 1747년 112대 삼도수군통제사 이언상의 ‘귀선’이라는 것을 처음 밝혀냈다고 25일 밝혔다.

이번 연구결과는 ‘1747년 이언상 거북선과 임진왜란 이순신 거북선의 원형’이란 제목으로 조형미디어 학술지에 발표됐으며 이와 연관된 거북선 고증과 연구가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홍 교수는 그동안 이언상의 귀선도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1795년 ‘이충무공전서’의 통제영 귀선과 전라좌수영 귀선보다 48년 이전의 귀선으로 3층 개판의 전안과 2층 패판의 구조는 임진왜란 이순신 거북선에서 그대로 계승된 구조로 사실상 이충무공전서의 귀선 못지않게 사료적 가치가 높다고 주장했다.

이언상은 덕수 이씨 이순신의 후손으로 1747년 통제사로 수군조련을 위해 귀선의 장대를 꾸미면서 ‘귀선도’를 작성한 것이라는게 홍 교수의 주장이다.

특히 ‘귀선도1’의 개판위에 좁고 세로로 길게 그려진 18개의 활을 쏘는 전안은 이순신 거북선의 활을 쏘는 개판구조와 동일한 구조로 추정했지만 이번 연구에서 확실하게 고증을 마쳤다고 했다.

이번에 3차원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제작된 복원도(홍순구 교수의 1592년 이순신 거북선 복원도)는 현재까지 여러 연구자의 발표된 임진왜란 이순신 거북선 중에 가장 원형에 가까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홍 교수는 이순신 거북선의 3층 개판에서는 활과 황자총통을 같이 사용했기 때문에 현재 복원돼 있는 1592년 거북선 모형 또는 복원도의 3층 개판에 동그란 형태의 포구멍(砲眼)만 뚫려 있거나 1592년 당시에 사용하지 않았던 조총을 쏘는 원형의 작은 구멍(銃眼)으로 복원된 거북선은 고증에 오류가 있는 연구라고 설명했다.

그는 전라좌수영 귀선의 패판구조는 이순신 거북선의 패판구조와 전혀 관계가 없으며 임진왜란 당시 판옥선과 귀선의 미익은 매우 짧은 것이 특징이라고 지적했다.

1604년에 그려진 해전기록화 당포전양승첩지도의 분석으로 1592년 이순신 거북선의 좌우 현측의 패판은 18개이며, 2층 패판은 천자·지자·현자총통을 쏘는 원형의 포안과 장방형의 패문구조로 되어있고, 노는 좌우 모두 12개로 전·후진 노젓기가 가능한 공간구조로 설계됐다고 주장했다.

이순신 거북선의 선형은 상하 대칭의 ’오뚝이 구조‘로 심한 충돌에도 전복되지 않고 개판의 전후좌우 사다리꼴 구조는 공기의 저항을 최소화해서 빠른 속도로 이동할 수 있는 과학적인 구조가 적용돼 있다고 발표했다.

이순신 거북선의 철갑여부에 대해서 홍 교수는 거북선 개판에는 불의 공격을 막기 위해 얇은 철판을 덮고 그 위에 칼 송곳을 꽂았다고 주장했다.

거북선 개판 위를 철판으로 덮었다는 기록이 사료에 전해지지 않은 이유는 이순신의 거북선은 1592년 전라좌수영에서만 건조된 비밀무기였기 때문에 이순신은 상세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고 임진왜란 이후 조선의 수군은 활을 버리고 조총과 화포로 무장하면서 먼 거리에서도 전투가 가능해 거북선 개판에 철판을 씌우거나 칼 송곳을 꽂고 적진 속으로 파고들어 근접전을 할 필요성이 없어졌기 때문에 철갑이나 칼 송곳은 계승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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