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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울릉도 일주도로엔 주민애환이 담겨 있다

<기자의 눈> 울릉도 일주도로엔 주민애환이 담겨 있다

기사승인 2019. 03. 26.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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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2부 조준호 기자.
이달 29일이면 경북 울릉도는 일주도로 미 개통구간 개통 준공식을 갖는다. 울릉도 재 개척령이 내린 137년 만에 교통혁명이 시작되는 경사스런 날이다.

지금까지 미 개통구간인 울릉읍 내수전~와달리~북면 섬목까지 4.75㎞는 울릉도 주민들의 추억이 녹아있는 애환의 장소다.

개통식을 가질 미 개통구간은 터널화 돼 시원스럽게 차들이 질주할 예정이다. 터널을 달려 본 누구에게는 우리나라 인터넷 속도처럼 속 시원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고, 또 다른 이는 터널 조명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며 이 길에 녹아있는 추억을 상기시키기도 할 것이다.

터널화 되기 전까지 미 개통구간을 다니려면 몇 시간동안 깍아지른 산 능성이를 넘어 정매화골을 지나야만 했다.

정매화골에는 이효영 부부가 1962년부터 1981년까지 주막을 열고 이 길을 지나가는 주민과 관광객을 맞았다. 폭설과 기상이 안 좋을 때 피난 온 300여명의 귀한 생명을 구한 장소이기도 하다.

1970년대 공직생활을 한 전 공무원은 “예전 북면에서 문발이나 당시 주민들에게 세금을 거둬들인 것을 군청으로 가져가기 위해 기상악화 시에는 이 길을 통해 가야만 했다”고 추억을 회고했다.

그는 또 “갑자기 눈이 내리면 금새 발목까지 차고 길을 잃고 헤매다 밤이 됐다”며 “주막 불빛을 보고 찾아가 하루 묵었던 기억이 아직까지 생생하다”고 덧붙였다.

정매화골에서 바닷가쪽으로 비탈을 내려가면 와달리 마을이 있었다. 행정구역상 울릉읍 저동 3리에 속해 있으며 1970년대 30가구, 150여명이 넘는 주민이 거주한 마을이었다.

와달리에서 바다를 보면 손에 잡힐 듯한 섬이 바로 죽도다. 죽도를 개척하고 죽도주민들이 적을 둔 곳이 바로 와달리 마을이었다. 죽도에 식수가 떨어지면 봉화를 피워 와달리에 알렸고 와달리 주민들이 강꼬배에 물을 실어 죽도로 날랐다.

예전 석포초등학교 와달리 분교가 위치했던 위쪽에 지금은 일주도로 휴게소가 자리잡았다. 석양이 질때면 울릉도 어느 곳보다 고즈넉한 풍광을 자아낸다. 이 곳에 아름다운 풍광과 더불어 울릉도 개척민의 애환을 기록으로 남겨 의미를 부여해 보면 어떨까?

사실 이런 주민의 애환을 해결키 위해 노력한 일등공신은 41, 42대 울릉군수인 정윤열 전 군수다.

2006년 당선된 정 군수는 공약사항으로 “지방도로 관리되는 일주도로를 국도나 국가지원 지방도로 승격해 국비가 집중적으로 투자해 주민들이의 불편을 줄여야 한다”며 부단히 노력했다. 2008년 11월 국비 지원이 가능한 ‘국가지원지방도로’로 노선이 승격돼 정 군수의 소원이 이뤄진 해였다.

일주도로가 개통되면 주민 정주기반과 관광 등에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도로는 생활환경에서 자연스럽게 많은 변화를 가져온다. 한 마을이 흥하게도, 도태 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그 길을 걸어갔던 흔적을 잊으면 안된다.

일주도로 개통식을 앞두고 이 길에 스쳐 지나갔던 사물들의 의미를 되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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