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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儒商] 집안 노비 30명 신분해방…‘인재제일’ 호암철학 태동

[한국의 儒商] 집안 노비 30명 신분해방…‘인재제일’ 호암철학 태동

기사승인 2016. 04. 03.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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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 5
성호 이익 사상과 日 유학 영향
솔거노비에 '자유의 길' 선사해
제일모직 설립시 최고복지 강조
'사람 중시' 기업가정신 대물림


이병철 회장은 일본의 와세다 대학을 중퇴하고 고향 중교리로 돌아온 뒤 2~3년 동안은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지내게 된다. 이 기간 중 그는 무엇인가 생각이 여물고, 입지를 위한 모색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이병철 회장은 자서전에서 "그 시기 한 일 가운데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일이 하나 있었다. 집의 노비를 해방시킨 일이었다"고 하였다. 

조선시대의 노비제도는 오랜 옛날부터 있어 왔다. 다른 나라에서는 전쟁에서 포로가 된 경우나 생활고로 인하여 자기나 처자식을 팔 경우에만 노비가 된다. 그러나 조선의 노비제도는 부모가 노비면 자식도 노비가 되는 세습제였다. 즉 부모 중에 한명은 양민이고, 다른 한명이 천민이면 그들 사이에서 태어나는 아들과 딸은 모두 노비가 되는 '일천즉천(一賤則賤)'제도를 채택하고 있었다. 그 아들과 딸은 어머니집 주인의 노비가 되어 노비 신분이 세습되었던 것이다. 고종의 갑오경장(1894)으로 법적으로는 노비제도가 폐지되어 인신매매는 제도상으로 없어졌다. 그러나 노비 호적의 정리가 상당 기간 후에 이루지는 등 실제 관습은 그 후에도 크게 변하지 않았었다. 

이병철 회장은 "구한말 고종 때 노비제도가 폐지됨에 따라 인신매매는 제도상으로는 없어졌다. 그러나 수백 년 동안이나 이어온 관습이었던 만큼 노비는 일조일석에 없어질 수는 없어 당시의 농촌에는 아직 그 잔재가 남아 있었다. 주인집에 얹혀살면서 농사일이나 집안 막일을 했다. 그러나 노동에 대한 보수나 독립된 인격이 인정되지 않고 있었다는 점에서, 노비제도의 폐지 이전과 다를 것이 없었다"고 하였다. 또한 그는 "우리 집에도 이러한 노비가 5가구 30명가량 있었다. 와세다대학 유학시절부터 이것은 인도에 어긋날 뿐더러 사회발전에도 큰 장애요인이 된다고 생각했다. 일본에서 돌아온 후에 이들을 해방시킬 기회를 얻으려고 여러 모로 궁리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친에게 '그들에게 자유를 주면 어떨까요?' 하고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선친은 뜻밖에 선뜻 쾌락하셨다. … 이 일이 인근 사람들에게 알려지자, '장한 일이다' '가산탕진이다'하는 칭찬과 비난이 엇갈렸다.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던 것 같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노비해방을 부친으로부터 흔쾌히 승낙을 받았다고 하였지만 그러한 일이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그의 가문은 기호남인 집안이다. 조부 이홍석은 기호남인의 마지막 거유(巨儒) 성재 허전의 문하생이었다. 허전은 노비의 축소를 주장했던 실학자 성호 이익의 학문을 이어 받았다. 조부 이홍석과 부친 이찬우도 그에 상당한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노비해방은 당시 이미 조부와 부친의 사상에 침투되어 있었고, 여기에 이병철 회장의 동경 유학에서 얻어진 근대사상이 합쳐져 이루어진 합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이병철 회장은 "막상 마음대로 떠나가라고 한들, 그들에게는 살 집도, 몸을 기탁할 곳도 없었다. 그래서 약간의 돈과 양식 그리고 토지를 나누어 주면서 '이것으로 우리 집과의 주종관계의 인연을 끊는다. 자유롭게 살라'고 하며, 그들의 속박을 풀어 주었다"고 했다. 그는 자기 집의 노비를 자발적으로 풀어 주고, 토지도 나누어 주어 살게 하였는데, 당시로서는 매우 혁명적인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병철 회장의 이러한 생각은 그 뒤 기업 활동에  일관되게 투영되어 왔다. 인재제일이라는 삼성의 인사관리원칙도 그의 이러한 사상에서 나왔을 것이다. 1954년 제일모직을 설립할 당시에 종업원들의 기숙사를 최상급의 쾌적한 시설로 갖추었고, 이후 그는 항상 종업원을 최고수준의 급여와 복리후생으로 대우하여 왔다. 1990년대 어떤 재벌 총수가 기업의 한 임원을 '머슴'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는 자신만을 회사의 주인이라 생각하고, 회사 종업원은 모두 종(노비)으로 본 것이다. 그 회사는 얼마 뒤 부도가 나서 새 주인을 맞이하였음은 물론이다.

/글=이제홍 태성회계법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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