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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준식 독립기념관장 “남북관계 개선…北독립운동 자료 확보할 것”

[인터뷰] 이준식 독립기념관장 “남북관계 개선…北독립운동 자료 확보할 것”

기사승인 2018. 03. 05.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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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식 독립기념관장 /사진=독립기념관 제공
“남북 모두 3·1운동이나 신채호 선생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여건이 무르익으면 남북이 모두 인정할 수 있는 사건과 인물을 중심으로 해서 자료를 발굴하고 학술행사도 하는 활동을 추진하겠다.”

이준식 독립기념관장은 지난 1일 아시아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북한지역에 있는 독립운동 관련 사적지를 조사하는 것이 현재 독립기념관이 추진하고 있는 내년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과 3·1운동 100주년 사업의 한 방향”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다른 100주년 사업과 관련해 이 관장은 해외의 독립운동으로 형성된 재외동포 사회에 대한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현재 운영하고 있는 독립군 체험학교에 더해 임시정부가 상해에서 운영하던 인성학교를 모델로 한 교육 프로그램을 신설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관장은 독립군 양성소였던 신흥무관학교 교장과 한국광복군 총사령관으로서 일본군과 최전선에서 싸웠던 독립운동가 지청천 장군의 외손자로, 이 관장의 외할머니와 어머니도 광복군으로 활동했다.

그는 “어렸을 때는 잘 몰랐지만 어머니와 어울리는 독립운동 동지들을 많이 봤다”며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의 삶이 제대로 기억되고 보상받는 나라가 돼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의 은덕이 오늘의 저를 있게 한 바탕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이 관장은 향후 독립운동가의 발굴과 관련해 “올해부터는 더 많은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발굴하는 사업을 할 것”이라며 “한분 한분 찾아내 포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름을 남기지 못한 무명의 독립운동가들을 기억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이 관장과의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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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식 독립기념관장 /사진=독립기념관 제공
-독립운동가에 대한 예우와 보상에 있어서 미흡한 부분은

“독립운동가에 대한 예우와 보상은 정부가 수립된 직후부터 했어야 됐지만 오랫동안 방치돼 오다가 1960년대 이후에 비로소 포상제도가 실시됐다. 포상된 분들께는 연금도 지급되고 자녀들에 대한 여러 보훈정책들이 실시돼 다행인데 문제는 정부가 노력을 많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포상이 되지 못한 분들이 아직도 많다는 것이다. 독립운동을 한 사실이 분명하지만 포상되지 못한 분들이나 포상됐더라도 혜택을 골고루 못 받는 분들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분들에 대해서 계속 포상을 확대해야 한다.”

“독립운동가로 이름을 남기지 못한 분들의 수가 훨씬 더 많다. 3·1운동만 하더라도 일제가 남긴 통계에 따르면 만세 시위에 200만명 정도가 참여했는데 3·1운동 공로로 포상을 받은 분들은 한 5000명으로 극히 일부만 포상이 됐다. 대부분의 참여자들은 이름이 확인이 안 되기 때문에 무명의 독립운동가로 남아있다. 독립군도 그렇고 의병도 그런 분들이 많다. 한분 한분 이름을 찾아내서 포상하고 기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름을 남기지 못한 분들을 기억하는 것도 중요하다. 무명의 독립운동가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독립기념관도 독립운동가 발굴에 나서나

“독립운동가들 찾아내는 일을 꾸준히 해왔다. 정부에서 좀 더 체계적으로 독립운동가를 발굴해 포상하겠다고 방침을 정했기 때문에 올해부터 독립기념관 안에 독립운동사연구소에서 독립유공자를 발굴하는 사업을 펼칠 예정이다. 기존에 있던 조직들이 산발적으로 작업을 해왔는데 올해부터는 좀 더 많은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독립유공자를 발굴하는 사업을 펼치려고 한다. 독립유공자를 한명이라도 더 찾아내자는 취지에서 사업을 펼칠 예정이다.”

-외할아버지께서 독립운동가로 유명한 지청천 장군이다

“어머니께서 늦게 결혼하시고 저를 늦게 낳으셨다. 제가 돌이 되기 전에 돌아가셨는데 저를 굉장히 예뻐하셨다고 한다. 제 기억 속에는 없지만 외할아버지의 존재가 오늘의 저를 있게 한 중요한 바탕이 됐다고 생각한다. 독립운동사를 공부하겠다고 마음먹은 이유가 어렸을 때 어머니께 들은 이야기가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기회만 있으면 만주 이야기나 중국 이야기를 하시면서 독립운동 하신분들 이야기도 했던 것이 제게 영향을 미쳐서 독립운동사를 공부하게 된 것 같다.”

“어렸을 때는 잘 몰랐다. 어머니와 같이 어울리는 독립운동 동지들도 많이 뵀는데 그땐 그냥 아저씨들로 보고 넘어갔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보니 그분들이 다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이었고 젊었을 때 모든 것을 다 바쳐서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이었다. 그런 분들의 삶이 제대로 기억되고 제대로 보상받는 나라가 돼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역사와 관련된 공부도 하고 시민운동도 하다 보니까 독립기념관장까지 오게 됐다. 독립운동 하신 분들의 은덕이 오늘날의 저를 있게 한 바탕이 된 것 같다.”

-내년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지만 건국 시점을 놓고는 의견이 분분한데

“역사적인 사실에 입각해서 파악하면 좋겠다. 1919년 4월 임시정부가 출범하면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이름을 정했고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이라고 선언을 했다. 그러면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이 출범한지 100년이 된다. 1919년에 대한민국이 출범했다는 것은 변할 수 없는 역사적인 사실이다. 1945년 해방 후 1948년 7월에 제헌 헌법이 공표되고 제헌 헌법에 입각해서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이미 출범했는데 일제의 식민지배를 받는 바람에 정식 정부가 존재하지 않고 임시정부로 존재하다가 독립이 되면서 정식으로 정부를 수립한 것이다. 그런 사실이 제헌헌법 전문에도 그대로 적혀있다. 3·1운동을 통해서 대한민국을 수립했고 해방 이후 헌법을 만들면서 민주 독립국가를 재건한다고 되어 있다. 대한민국은 이미 1919년에 출범했고 1948년 8월에 대한민국을 재건한 것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헌법을 포함한 사료에 적혀 있는 역사적인 사실이다.”

-임시정부 출범 전에 있었던 3·1운동의 의미는

“3·1운동은 단순히 독립운동에 그치지 않았다. 3·1운동 과정에서 만세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이나 독립선언을 한 사람들의 생각은 ‘독립을 이루고 난 뒤에 우리가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라는 측면에서, 다시 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새로운 나라를 만들자고 생각을 했다. 새로운 나라는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구체적으로 표현이 됐다. ‘제국이 아니라 민국으로 나가자, 민국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국민 주권주의를 여는 역사적인 사건으로서 3·1운동은 의미를 갖는다.”

“3·1운동의 한 과정이자 결과가 1919년 4월 상해에서 출범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다. 임시정부가 출범하면서 대한민국 임시헌장이라는 헌법을 만든다. 헌법 제1조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한다는 구절이다. 그게 오늘날 대한민국 헌법으로까지 이어졌다.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3·1운동을 통해서 처음으로 등장했고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이라고 규정한 것이 지금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역사적인 뿌리로서 의미를 갖는다.”

-정부가 국립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독립기념관과 기능이 겹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데

“부분적으로는 중복이 될 수밖에 없는데 성질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독립기념관은 말 그대로 독립운동의 역사가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에 이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초점이 있다면 임시정부 기념관은 임시정부를 기념하는 시설이다. 부분적으로는 중복되지만 크게 보면 다른 시설로서 의미를 갖는다. 독립기념관은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을 ‘역사와 자연이 어우러지는 공간’으로 해서 더 많은 국민들이 찾아와 역사도 배우면서 동시에 자연을 보며 힐링할 수 있는 곳으로 방향을 잡아가려고 한다. 앞으로 자라나는 세대가 기념관에 와서 즐기면서 독립운동을 체험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 나가려고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는 임시정부 기념관과 차별성이 확보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년 100주년 관련 사업은 어떻게 추진되나

“국가적인 차원에서 100주년 기념사업을 할 테고 독립기념관은 국가적인 기념사업의 한 부분을 맡아서 해야 할 것이다. 현재 독립기념관이 추진하고 있는 것은 몇 가지 방향으로 정리가 된다. 하나는 남북관계가 좋아진다는 전제 하에 북한지역에 독립운동 관련 사적지를 조사했으면 한다는 것이다. 특히 3·1운동 관련해 북한 지역에서도 만세 시위가 많이 일어났기 때문에 북한 지역의 만세 시위 관련 자료를 확보했으면 좋겠다. 2007년까지만 해도 교섭이 있었다. 자료 수집 등 남북이 모두 인정하는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사업에 대해 일정한 논의가 있었고 진전도 있었는데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원점으로 돌아갔다.”

“남북 모두 3·1운동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를 하고 신채호 선생 같은 분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으니 이런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서 남북의 역사인식 차이를 줄이는 방향으로 노력해야 한다. 남북한이 모두 인정할 수 있는 사건이나 인물 중심으로 해서 자료를 발굴하고 학술행사도 하는 활동들을 여건이 무르익으면 추진할 생각 중이다. 지금 같은 분위기면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다. 잘 진행이 되어서 2019년에는 그 물꼬가 트였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갖고 있다.”

-또 어떤 사업들이 추진되나

“독립운동이 국내에서만 벌어진 게 아니라 해외에서도 활발하게 일어났는데 그때 형성된 재외동포 사회가 지금의 재외동포 사회로 이어지고 있다. 독립운동이 단순히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문제였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재외동포이기 때문에 재외동포에 초점을 맞춘 기념사업을 해야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독립기념관에서 독립군 체험학교를 운영하고 있는데 주로 무장투쟁이나 독립전쟁에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이다. 독립운동가들이 무장투쟁만 한 것은 아니다. 임시정부에서 운영하던 인성학교라는 곳이 있는데, 인성학교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운영할 생각을 하고 있다. 인성학교는 독립운동가들이 독립운동과 민주주의에 초점을 맞춰서 더 민주적인 나라를 만들려고 한 것이다. 참여자들이 독립운동 역사를 공부하면서 지금의 민주주의를 되돌아보도록 하는 인성학교를 운영하고 싶은데 예산이 확보돼야 한다.”

-앞으로 독립기념관 운영 방향은

“독립기념관에서 중요한 사업은 전시·연구·교육이다. 지금 3개의 수레바퀴가 잘 굴러가고 있는데 더 잘 굴러갈 수 있도록 강화할 것이다. 기본 목표는 국민들께 더 사랑받고 국민들이 더 편하게 접할 수 있는 독립기념관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처음 독립기념관을 지을 때 웅장하게 지어서 편안히 여긴다는 측면에서는 부족할 수 있지만 공간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실제로 안에 들어가보니 독립기념관이 참 편한 곳이더라. 역사공부도 하고 힐링도 할 수 있구나’하는 공간을 만들 것이다. 독립기념관은 국민들께서 만든 곳이고 국민들이 주인인 공간이라는 사실을 알리면서 국민들께 사랑받는 곳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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