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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칠성, 소외된 조선인 인도네시아 독립영웅

양칠성, 소외된 조선인 인도네시아 독립영웅

기사승인 2019. 08. 12.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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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카 세미나 프로포절 표지
양칠성 세미나 프로포절 표지 /출처: 히스토리카
인도네시아는 일본이 패망한 8월 15일 대신 독립선언서 낭독일인 8월 17일을 독립기념일로 정했다. 일본을 이용해 350년 네덜란드 식민지배의 굴레를 끊으려 했던 수카르노와 당시 인도네시아 지도층은 태평양전쟁 내내 일본에 적극 협력했으므로 그날의 독립선언은 일본이 아닌 네덜란드를 향했다. 연합군의 일원으로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 열도에 귀환하면서 자바와 수마트라에서 격렬한 독립전쟁이 점화됐다. 4년간의 독립전쟁은 1949년 5월 7일 체결된 로엠-반로엔 조약을 통해 수습국면으로 접어들어 8월 3일 휴전협정이 서명되고 자바에서 8월 11일, 수마트라에서 8월 15일 각각 휴전이 발효했다.

자바 휴전발효 하루 전인 8월 10일 서부 자바 가룻(Garut)에서 세 명의 외국인이 처형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일본군을 이탈해 네덜란드군 전선 후방의 독립군 유격대 ‘빠빡왕자의 부대’에서 활약했던 아오키, 하세카와, 야나카와를 네덜란드군은 살려두지 않았다. 전후 이들이 독립영웅으로 인정돼 가룻 영웅묘지로 이장된 것이 1975년이고 그 중 현지명 꼬마루딘으로도 알려졌던 야나카와 시치세이가 훗날 전북 완주군 출신 조선인으로 밝혀져 양칠성이란 한글이름이 묘비에 새겨진 것은 1995년 8월의 일이다.

대체로 저평가된 영웅들을 발굴하고 독립투사 가족들을 지원하는 인도네시아 역사연구단체 히스토리카(회장: 압둘 바시드)는 작년부터 양칠성을 비롯해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에 등장한 한국인들을 조명하는 세미나를 현지인 대상으로 열고 있다. 올해 세미나는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에서 한국인 투사의 역할’이란 주제로 인도네시아 국립대학교(UI)에서 8월 16일 열리며 한국인 발제자도 참여한다. 히스토리카는 지난 3월 4일 아트마자야 카톨릭대학교 대강당에서 우리 대사관과 한국문화원이 주최한 ‘3.1운동 및 임정 수립 100주년 기념세미나’에 전방위적 협력을 제공했다. 이들은 연내 가룻 지역 ‘양칠성로(路)’ 명명식을 위해 지방정부와 협의 중이다.

지난 10일은 양칠성이 처형당한지 70주기 되는 날이었다. 양칠성에게는 일본군 포로감시원으로 연합군 포로를 학대했을 것이라는 정황과 처형 직전 일본인 동료들과 함께 천황폐하 만세를 외쳤다는 소문이 있다. 이 주장은 처형 직전 양칠성과 일본인 동료들이 인도네시아 국기를 연상시키는 적백색 수의를 요구했고 독립이란 의미의 “머르데카”를 총살 직전 외쳤다는 역사지 마잘라 히스토리아 헨디 조하리 기자의 현지 취재와는 상충된다. 우리 공관에서는 양칠성에 대한 공식입장을 정하지 않았을 뿐 외면하는 것은 아니라며 향후 관련 협의의 여지를 남겼다.

남양군도에 끌려가 비슷한 길을 걸었을 수많은 조선인 학도병들과 군무원들의 삶이 투영된 양칠성은 항일투사가 아니었지만 일본과 일제 강점기를 바라보는 시각에 큰 온도차를 가진 한국과 인도네시아를 심정적으로 이어주는 중요한 접점이라는 후대의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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