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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블라인드 채용과 능력사회

[칼럼] 블라인드 채용과 능력사회

기사승인 2017. 06. 26.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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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blind) 채용’이라는 단어가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학벌과 학력 때문에 취직이 어려운 사람들은 신이 나서 야단이다. “취직 얘기만 나오면 절망을 했는데 이제 희망이 보이는 것 같다”고 말하는 젊은이들도 많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기업에 블라인드 채용을 지시했기 때문이다.

블라인드는 눈을 가리는 것을 말한다. 창문에 달아 햇빛을 가리는 것도 블라인드라고 한다. 블라인드 채용이란 이력서나 지원서에 학력, 학벌, 출신지, 신체 조건 등 외형적인 내용을 기재하지 않고 실력으로만 사람을 뽑는 제도다. 기업 입장에선 부담스럽고 응시자에게는 참으로 좋은 제도다.


문 대통령은 최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특별한 경우 외에는 이력서에 학벌·학력·출신지·신체조건 등 차별적 요인을 일절 기재하지 않도록 해서 명문대 출신이나 일반대 출신이나, 서울에 있는 대학 출신이나 지방대 출신이나 똑같은 조건과 출발선에서 오로지 실력으로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블라인드 채용이 보도되자 인터넷에는 수천 개의 환영 댓글이 달렸다. 학력, 학벌, 출신지 뿐 아니라 이왕이면 나이와 성별 기재까지 없애라는 주문이 쇄도했다. 나이와 성별까지 없앤다면 공공부문 취업문은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에게 ‘열린 문’이 된다.


블라인드 채용이 확산만 된다면 한국의 가장 고질병인 ‘학벌주의’와 ‘지역주의’를 타파하는 데 크게 한 몫을 할 것이다. 학벌주의가 없어지면 유치원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과외공부를 하는 진풍경은 상당부분 해소된다고 봐야 한다. 아이들이 아침부터 밤까지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지겨운 일’ 도 줄어든다. 지방 대학들은 어깨를 펼 것이다.


한국의 학벌주의는 세계에서 유명하다. 일류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지원서를 낼 수도 없는 구조다. 지원서를 내도 서류에서 밀린다. 그러니 일류 소리를 듣지 못하는 대학을 나오거나 지방에서 졸업을 할 경우 이들은 비벼댈 곳이 없다. 좌절에 빠지고, 사회에 대해 실망하고, 불평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소위 말하는 일류 대학을 안 나와도, 지방에서 다녀도 같은 자격이 주어진다. 학벌이나 학력, 출생지, 신체 조건을 따지지 않고 같은 조건으로 지원할 수 있다. 시험에 붙고 떨어지는 것은 나중의 문제다. 블라인드 채용 시행 자체만으로도 음지에 있던 사람들이 양지로 나오게 됐다.


중요한 것은 이제 실력이다. 지금까지 학벌과 학력이 사람을 차별했다면 앞으로는 실력이 합격 불합격을 가르는 시대가 다가 왔다. 능력이 합격 여부를 결정한다. 실무경험도 중요하게 됐다. 이에 못지않게 인간성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다른 말로는 사람 됨됨이다.


아무리 블라인드 채용이라도 떨어지는 사람이 있고, 붙는 사람도 있다. 지금은 취업이 안 되면 학벌, 학력 등을 내세워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핑계 거리도 되었다. 하지만 이젠 핑계 댈 게 없다. 실력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 희망하는 기업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연구하고, 맞춤형 전략으로 밀어붙여야 한다.


대학들도 전략을 바꿀 필요가 있다.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졸업생을 실력으로 무장시켜 내보내야 해서다. 스펙이나 점수보다 실무능력을 키워주어야 한다. 지금 일류 대학이라고 해서 능력배양을 게을리 하면 취업은 3류 대학으로 떨어진다. 대학의 교육과정도 블라인드 취업 트렌드에 맞춰야 한다. 그런 대학이 이제 일류 대학이 된다.


블라인드 채용은 기업에는 부담이 된다. 학벌과 학력을 보지 않고 어떻게 유능한 사람을 뽑을지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평가 기준을 합리적으로 마련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개인의 능력, 인간성, 업무 지식 등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가 있어야 한다.


블라인드 채용의 범위에 나이와 성별을 포함시키는 것도 연구해볼 만하다. 대학을 막 나온 20대 30대 뿐 아니라 직장에서 퇴직한 50대 60대, 능력에 따라서는 70대도 원서를 내고, 합격해 근무한다면 대한민국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될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화끈하게 열린 취업시장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블라인드 채용만 공기업과 민간 기업에 성공적으로 정착시킨다면 엄청난 업적으로 남을 것이다. 학벌사회를 능력사회로 바꾼 대통령, 부모들의 교육비 부담을 덜어준 대통령, 학생들을 사교육에서 해방시킨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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