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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화의 멋있는 음식이야기]가을 서해안의 맛 우럭

[고대화의 멋있는 음식이야기]가을 서해안의 맛 우럭

기사승인 2014. 10. 10.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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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입니다. 하늘은 높고 푸르고, 부는 바람은 시원합니다. 천고마비, 말이 살찌는 계절입니다. 남자들이 심난해하고 공연히 외로워지는 계절이지요. 저녁때 드라마 일로 작가 두어 분을 만납니다. “가을이네요. 이제 슬슬 생선이 맛있어지는 계절이지요.” 떠들썩한 횟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입니다. 회가 한 접시 올라옵니다. 흰 접시에 얌전히 올라 온 우럭회입니다. 착해보이는 하얀 생선 살. 보기에도 탄탄해서, 다른 생선회와는 확연히 구분이 됩니다.


1990년대에 우리나라 외식산업에 큰 혁명이 왔지요. 외식이라면 무슨 무슨 가든에서 갈비를 먹을 줄 밖에 모르던 한국 사람들이 생선회를 먹기 시작한 겁니다. 우럭은 자연에서도 많이 잡히는 생선입니다만 그 수요를 댈 수 없어서, 양식이 매우 많아진 겁니다. 아주 오랫동안 고등어와 갈치를 구워먹거나 조림으로만 먹어오고 다른 생선은 별로 먹지 않던 우리나라 사람들이 처음으로 생선회를 대량소비하게 된 거지요.


특별히 한국인은 쫄깃한 생선회를 좋아하는데, 우럭은 살이 탄탄하여 '씹는 맛'을 충족시키기에 더없이 좋았던거지요. 또 한국인은 활어회를 특히 좋아하는데, 우럭은 숙성시키지 않아도 감칠맛이 웬만큼 살아 활어회로 내놓기 적당한 생선이란 것과, 생선회 다음에 매운탕을 먹는  식습관도 우럭양식이 엄청난 발전을 하는데 주요한 이유가 되었습니다.


우럭은 우리나라의 전 연안, 일본 및 중국의 연안에 분포하며 특히 황해 및 발해만에 많이 서식합니다. 그래서 바다낚시 어종으로도 인기가 매우 높은 생선입니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는 검어(黔魚), 검처귀(黔處歸)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럭의 색깔이 매우 검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겠지요. 어민들은 가을의 우럭이 맛있다고 말하는데, 우럭의 제철은 봄, 가을 두 차례 있는 셈입니다.


제 고향 충남 서해안에는 예로부터 우럭이 많이 잡혔습니다. 십년도 더 전에, 아버님과 삼촌들과 사촌들 여럿이 어울려서 서산바다에서 배낚시를 갔었답니다. 서해에서 배낚시 해보셨나요? 낚시를 시작한 지 십여분이나 되었을까. 팔뚝만한 시커먼 우럭 한 마리가 올라옵니다. 자연산 우럭은 힘이 대단합니다. 한참동안 씨름을 해야 배위로 올라온답니다, 함성이 터져 나옵니다. 갓 잡혀 올라와 펄펄뛰는 이 녀석을 선장님이 묵묵히 회를 쳐 주십니다. 거무튀튀하고 눈도 허옇게 크고 입도 크고 뭔가 조직폭력배같이 생긴 이녀석은 시커먼 겉모습과 다르게, 속살은 아주 새하얗답니다. 아버님께서 우럭회 한 점을 된장에 푹 찍어서 먹여 주십니다. 이 탄탄하고 실한 조직감. 이 튼실한 근육. 씹을수록 올라오는 고소한 단 맛. 씹어도 살이 물러지지 않아 끝까지 탄력을 유지해줍니다. 역시 씹는 맛은 우럭이 최고입니다.


서산의 우럭은 아주 유명해서 자연산 우럭이 넘쳐났었지요. 지금은 개발과 오염에 밀려, 옛날같이 큰 자연산 우럭은 많지 않답니다. 서산의 향토시인 한동철은 서산 사람들의 마음을 ‘오지리2’라는 시로 썼습니다. ‘옛날엔 그래도 괘안찮었슈/이따시 되는 우럭두 펄떡펄떡 잡히구유/망뎅이 같은 거는 잡지두 안었슈/…’라고 말이지요.


살을 회로 뜨고 난 다음 남는 머리와 뼈로 매운탕을 끓여 맛을 낼 만한 생선으로는 우럭만한 것이 없습니다. 시원하고 얼큰한 맛입니다. 우럭은 기름이 많아 매운탕으로 끓이면 고소한 기름이 올라 와 국물이 훨씬 맛있어지고, 맵고 칼칼하게 끓이면 감칠맛이 일품이랍니다. 서해안에서는 우럭이 많이 잡히면 며칠동안 햇빛에 꼬득꼬득하게 말려서 우럭포로 만듭니다. 서산에서는 제사상에도 이 우럭포를 올리지요. 우럭포에 쌀뜨물 붓고 새우젓 간을 맞춰 끓인 우럭젓국 드셔보셨나요? 우럭의 씹는 맛도 좋아지고 살도 숙성이 되어서, 그 탄력과 깊은 맛은 가히 천하일품입니다.


우럭젓국                  하 재일

(전략) 이럴때면 으레 바닷가 고향마을에서 먹던
간간한 우럭젓국이 생각났다
우선 곱게 소금을 친 후
한 사나흘 동안 꾸득꾸득 그늘에 말린 우럭포에
뿌얀 쌀뜨물을 붓고 두부와 청양고추
마늘과 대파를 넣고 푹 끓이기만 하면,
이때 새우젓으로 간을 맞춰서 솜씨를 부려
우럭안에 숨은 마른 햇빛을 잘 꺼내기만 한다면 (후략)


회를 다 먹고 매운탕을 내오네요. 저는 통우럭 한 마리를 다 넣은 우럭매운탕을 좋아합니다. 얼큰한 매운탕에 푹 익은 통통한 우럭살의 유혹도 지나칠 수 없거든요. 물론 햇빛에 잘 말린 자연산 우럭포로 끓인 우럭젓국을 주시면 더없이 좋겠지만, 서울에서는 바라기 어려운 호사인지라 양식이라도 통 우럭으로 끓인 매운탕을 간곡히 부탁하고는 합니다.


우럭이라. 조만간 아버님 모시고, 서산에 배낚시 한 번 가야겠습니다. 가서, 팔뚝만한 우럭 몇 마리 잡아서, 뱃전에서 회를 치고 매운탕도 끓여서 소주랑 시원하게 한 번 먹어야겠습니다. 혹, 서해안의 아름다운 낙조도 볼 수 있다면, 너무너무 행복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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