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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화의 멋있는 음식이야기]따뜻하고 착한 가을 아욱국

[고대화의 멋있는 음식이야기]따뜻하고 착한 가을 아욱국

기사승인 2014. 10. 24.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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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점점 깊어가고 있습니다. 이맘때 한국의 산에는 온갖 색깔의 단풍이 눈물나도록 아름답습니다. 저는 다른 산보다 유달리 관악산 등산을 아주 좋아하는데, 그 등산로 초입에 재래시장이 있답니다.


저번 주에 함께 등산하는 일행을 기다리느라 시간이 남아서 재래시장을 기웃거리는데, 시장 통 한 구석에서 할머니 한 분이 두 어가지 채소와 아욱을 몇 다발 놓고 파시더라고요. 초록빛 풀 빛 선명하고 건강해 보이는 아욱이 한 다발씩 쪼란히 묶여 있습니다. 어렸을 적 저희 아버님은 평상시 술을 좋아하셔서, 해장국을 많이 드셨는데, 가을이 되면 어머니는 자주 아욱국을 끓이셨지요. 된장을 넣어 끓인 아욱 토장국입니다. 그 구수한 냄새와  부드럽고 편안한 그 향기를 기억합니다.


가을 아욱은 연하고 맛이 깊습니다. 아욱은 예로부터 중국에서 오채((五菜 다섯가지 채소 : 부추, 달래, 아욱, 파, 콩잎)의 으뜸이라 불렸을 정도로 아주 오랫동안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서 널리, 그리고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채소입니다. ‘가을 아욱은 사립문 닫아걸고 먹는다’, ‘아욱국 3년 먹으면 외쪽 문으로 못드나든다’, 는 속담이 있을만큼, 가을 아욱은 영양가 좋고 맛이 각별하다고 합니다.


시골가면 할머니들이 농담반 진담반으로 ‘우리 사위 가을 아욱국 저리 먹다가 바람날라’고 이야기하실 정도로 아욱은 스태미나에도 좋다고 합니다. 몸에 좋다는 시금치보다 단백질이나 칼륨이 두 배이상 들어있어서 영양가가 아주 높은 알칼리 식품이라는 거지요. 시골에서는 해산했을 때 미역 대신 끓여 먹었을 정도로, 옛날에는 상당한 영양식으로 생각되었던 음식입니다.


아욱은 별달리 손질할 게 없고, 크기가 너무 큰 잎은 적당히 잘라서 요리하면 됩니다. 다만, 쉽게 무르는 채소이기 때문에, 한 번 사시면 얼른 먹어치우셔야 합니다. 온갖 푸성귀는 다 장아찌를 만들 수 있으나 아욱은 만들지 못하는데, 그래서 못생긴 사람을 ‘아욱장아찌’라 한다고 하지요. 큰 이파리에 비해서 아욱꽃은 크기가 아주 작습니다.


아욱꽃               - 김나영
 
아욱꽃이 피어있다/코끼리 귀같이 펄럭거리는 큰 잎사귀 틈에
코끼리 눈처럼 작은 아욱 꽃이 피어있다(중략) 
어느 벌이, 어느 나비가 저 꽃에 들겠는가/
저 꽃도 꽃인데, 왜 색을 버렸겠는가
세상에는 꽃을 위해 잎을 포기하는 꽃이 있고
잎을 위해 꽃을 포기하는 꽃이 있다
 
봐라! 식구들 밥해 멕이려고/수백 평 푸른 밭 경작하고 있는
저 장딴지를!


아욱국은 우선 된장. 고추장을 풀고 마른 새우를 넣은 뒤 아욱의 연한 줄기와 잎으로 국을 끓입니다. 이때 억센 줄기나 잎은 손으로 주물러 치대서 풋내를 빼고 끓여야 제 맛이 납니다. 말린 새우는 아욱과 상생의 음식이라 아욱국을 끓일 때는 꼭 말린 새우를 넣고 끓여야 한다고 합니다. 서로 궁합이 맞는 거지요.


아욱국                ―김선우(1970∼ )

아욱을 치대어 빨다가 문득 내가 묻는다몸속에 이토록 챙챙한 거품의 씨앗을 가진시푸른 아욱의 육즙 때문에 (중략)치대지는 아욱 풀잎 온몸으로 푸른 거품끓이는 걸 바라보네

치댈수록 깊어지는
이글거리는 풀잎의 뼈오르가슴의 힘으로 한 상 그득한 풀밭을 차리고슬픔이 커서 등이 넓어진 내 연인과
어린것들 불러 모아 살진 살점 떠먹이는아욱국 끓이는 저녁이네 오, 가슴 환한


어머니가 끓여주셨던 아욱국이 생각납니다.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 앉아 있지요. 아욱국이 보글보글 끓는 소리. 국물을 한 수저 떠먹어 봅니다. 구수한 된장과 말린 새우의 맛. 잎이 부드러워 별로 씹을 것도 없이 술술 넘어가는 느낌입니다. 이 따뜻하고 착한 식감. 약간 미끌거리며 씹히는 아욱잎의 은은하고 차분한 향기. 이 착한 채소가 아무런 저항없이, 부드럽게 식도를 넘어가 속을 차분히 풀어 줍니다.


아욱국에는 역시 방금 지은 김 모락모락 나는 하얀 쌀밥을 말아먹어야 합니다. 자극적이지 않은, 착하고 순한, 어머니같이 자애로운 맛입니다. 이제 약간씩 스산한 기운이 감도는 이맘때입니다. 앞으로 조금씩 더 가을이 깊어지겠지요. 낙엽이 지고 조금씩 추워지는, 그래서 마음도 조금씩 쓸쓸해지는 가을입니다. 오늘 저녁은 아욱 한 다발 사가지고 들어가셔서,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가을 아욱국 한 그릇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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