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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화의 멋있는 음식이야기]얼큰한 사랑 수제비

[고대화의 멋있는 음식이야기]얼큰한 사랑 수제비

기사승인 2014. 12. 05.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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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입니다. 오늘은 서울이 영하 7도랍니다. 갑자기 추워져서 그런지 뼛속까지 파고드는 바람이 당황스럽기까지 합니다. 누구는 겨울은 추워야 제맛이라지만, 올해는 좀 느닷없이 추워지는 것 같아 걱정이 됩니다.


오늘 점심은 뜨뜻한 수제비 한 그릇 하지, 선배가 이야기합니다. 조그만 수제비 집, 햇 빛 잘 드는 창가자리를 잡고, 따뜻한 엽차잔에 손을 녹이며 김치수제비요. 주문을 합니다. 주문을 받고서 곧바로 밀가루 반죽을 떼기 시작하는군요.

수제비라. 수제비에 관해서는 한국 사람만큼 애증을 갖고 있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렸을 적 엄마가 김치국물에 끓여 주던 맛있는 수제비에 대한 기억은 누구나 있을 터인데,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사람 같으면 먹을 것이 없어서 매일 수제비로 억지로 끼니를 때웠던 기억도 있는거지요.


못 사는 집에서 태어나 먹을것이 없어 수제비만 먹고 달렸다고 TV에 나와 인터뷰하던 육상선수가 있었는데. 누구였더라. 해방 이후 한국전쟁을 전후해 식량사정이 극도로 좋지 않았을 때, 미국의 원조물자로 쏟아져 들어 온 밀가루로 만든 수제비가 한국인의 배고픔을 해결해 준 시절이 있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수제비가 지금처럼 보편적으로 먹는 음식이 된 배경에는 미국이 잉여농산물인 밀가루를 한국에 원조했기 때문인겁니다. 그러나 사실 조선시대만 해도 밀 재배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밀가루는 귀한 곡식이었습니다. 드라마 <대장금>에서 밀가루를 ‘진가루’라고 표현할 정도이었지요.


우리 민족의 주식은 쌀과 보리였기에 밀의 재배는 아주 적었고 그래서 값이 비싸며 귀해 일반 백성은 먹을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서긍이 쓴《고려도경(高麗圖經)》에는 “고려에는 밀이 적기 때문에 중국에서 수입한다. 그러나 밀가루값이 매우 비싸서 혼인이나 잔치 같은 날이 아니면 먹지 않는다”라는 기록이 보일 정도입니다.


수제비는 장국을 끓여 부드럽게 반죽한 밀가루를, 손으로 얇게 떼어 넣어 구수하게 끓이는 음식입니다. 장국은 조개나 쇠고기로 끓이기도 하며 멸치를 넣어 끓이면 국물이 시원하고, 채소나 미역만 넣고 끓이기도 합니다. 밀이 귀한 곳에서는 그 지역에서 가장 흔한 재료, 즉 감자, 강냉이, 메밀, 도토리 등으로 수제비를 만들었지요.


감자수제비는 감자녹말과 무거리로 만드는데 동그랗게 만들기 때문에 ‘감자옹심이’라고도 하며, 강냉이수제비는 강냉잇가루만으로 만들거나 밀가루를 섞어서 만듭니다. 전국 어딜가나 수제비는 있지만, 그 재료에 따라 조리법도 이름도 조금씩 다릅니다. 북한에서는 '밀가루뜨더국’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손으로 일일이 뜯어서 뜨더국이라고 하는 모양입니다.


수제비가 나오기 전에 작은 종지에 담긴 보리밥을 먼저 내옵니다. 양념간장에 비벼 먹으랍니다. 밀가루음식만 먹으면 속이 좀 허할 수도 있고, 또 반죽을  삶고 그러자면 시간이 좀 걸리니 시장기나 잠깐 면하라는 뜻이 있다는 겁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수제비가 한그릇 나옵니다. 뜨거운 국물을 한 수저 떠 먹어봅니다. 짜르르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국물맛. 추위에 언 속을 데워주는 맛입니다. 김치국물로 간을 해서 얼큰한 것이, 속이 금새 따뜻해집니다. 수제비를 수저로 떠 먹어 봅니다. 입안에서 야들야들 쫄깃쫄깃 탱글거리는 밀가루의 낯익은 질감. 따뜻하고 부드러운 수제비의 탄력이 느껴 집니다. 달달하게 씹히는 잘익은 수제비. 굳이 여러번 씹지않고 후루룩 넘겨도 국물과 함께 잘 들어갑니다. 김치 한 점 올려서 먹어 봅니다. 뜨거운 입김을 후후 불면서 국물도 들이킵니다. 이 맛은 한국인의 뼛속에 각인된 맛인 것 같습니다.


청양고추 풀어넣어 칼칼한 국물에 어느덧 추위는 눈독듯 풀어지고, 이마에도 코끝에도 땀방울이 송송 맺힙니다. 한국사람은 밥먹을 때 땀이 나야 먹은 것 같습니다. 옷 섶을 손으로 열어 설렁설렁 흔들어주면, 얼굴에 바람이 일어 시원해집니다. 마지막 남은 국물까지 쭈욱 들이킵니다.  캬. 역시. 수제비는 맛있습니다.


수  제  비                      - 이 재무              

한숨과 눈물로 간 맞춘/수제비 어찌나 칼칼, 얼얼한지/
한 숟갈 퍼올릴 때마다/이마에 콧잔등에 송송 돋던 땀/
한 양푼 비우고 난 뒤/옷섶 열어 설렁설렁 바람 들이면/
몸도 마음도 산그늘처럼/서늘히 개운해지던 것을//
살비듬 같은 진눈깨비 흩뿌려/까닭 없이 울컥, 옛날이 간절해지면/
처마 낮은 집 찾아들어가 마주하는,/뽀얀 김 속 낮달처럼 우련한 얼굴/
구시렁구시렁 들려오는/그날의 지청구에 장단 맞춰/
야들야들 쫄깃하고 부드러운 살/훌쩍훌쩍 삼키며 목메는 얼큰한 사랑.’


요즘처럼 느닷없이 추워져서 마음까지 쓸쓸해지면 저는 수제비가 생각납니다. 수제비는 흔히들 향수(鄕愁)로 먹는다 하는데, 어쩌면 오래전 어머니가 제일 만만하게 끓여 주신 게 수제비라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밀가루를 반죽하시던 어머니의 손. 펄펄 끓는 냄비에 한점씩 밀가루 반죽을 떼어 넣으시던 모습. 냄비가 끓어올라 뚜껑을 열면 자욱이 피어오르던 김나는 수제비.


누구나 마음을 채우는 소울푸드(Soul Food)가 있다지요. 혀끝은 미각과 더불어 추억을 감지하기 때문입니다. 추억은 곧 스토리이지요. 몸과 마음도 추워 갑자기 따뜻한 옛날이 그리워지는 오늘. 당신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데워주는 소울푸드로, 간만에 얼큰한 수제비 한그릇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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