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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지식인들의 오만 혹은 치명적 자만(Fatal Conceit)

[칼럼] 지식인들의 오만 혹은 치명적 자만(Fatal Conceit)

기사승인 2017. 09. 11.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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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교수로 재직하면서 시민단체 활동을 하던 시절부터 좋든 싫든 언론의 주목을 받아왔다. 최근에는 그의 두 번에 걸친 '잡스' 발언이 묘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5일에 행한 언론 인터뷰(보도는 8일)에서 '이해진 전 네이버 의장은 스티브 잡스처럼 미래를 보는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이틀 뒤 강연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은 제2의 스티브 잡스로 진화 중"이라고 했다.
  

'재벌 저격수' 소리를 듣는 교수가 똑 같은 말을 했다면 기업가들이 아마도 그를 뭣도 모르면서 '경영'을 가르치려고 드는 사람 정도로 치부하고 말았을지 모른다. 지금은 '경제검찰'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수장의 발언이기 때문에 흘려들을 수 없다. 더구나 '총수' 지정을 두고 네이버와 공정위원회는 이견을 표출 중이다. 김 위원장은 오로지 총수 지정이 왜 필요한지 설명하는 데 집중하는 게 좋았다.
 

김 위원장의 문제의 발언 이후 지난 9일 다음의 창업자인 이재웅 벤처기업협회 부회장은 트위터에 "김상조 위원장이 앞으로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없이 맨몸으로 정부 도움 하나도 없이 한국과 일본 최고의 인터넷 기업을 일으킨 기업가를 이렇게 평가하는 것은 오만"이라고 썼다. 나중에 '오만'을 '부적절'로 표현을 바꾸었지만 "동료 기업가로서 화가 난다"는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3류 정치가 1류 기업을 비판하는 격"이라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공정거래위원장은 기업가의 자질을 평가하는 자리가 아니다. 기업의 미래가 기업가에 달려있기 때문에 가깝게는 당해 기업의 이사들과 주주들, 더 넓게는 증권시장에서 기업가를 유심히 살핀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시장의 경쟁 질서를 보호하는 일에 주력하면 된다. 김 위원장은 총수 없는 준(準)대기업 지정을 요청하러 공정위를 방문한 이해진 전 의장을 만났는데 당시 잡스 이야기를 꺼낼까 하다가 안했다고 했다. 인내심을 더 발휘했더라면 좋았을 걸 아쉽다. 그가 특정 기업가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면 공정위 직원들도 부지불식간에 영향을 받지 않겠는가.
 

기업가들과 경제주체들에 의사결정을 맡겨두기보다는 지식인들이 경제전체를 더 '합리적'으로 계획할 수 있고 따라서 시장의 결과보다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생각은 그 뿌리가 매우 깊다. 이런 생각의 종착점이 바로 사회주의 계획경제인데 20세기에 그 아이디어를 대대적으로 실험했지만 참담한 실패를 경험했다. 1920년대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아이디어가 만들어질 때부터 그의 스승 미제스와 함께 그런 생각이 오류임을 밝히고 시장의 자생적 질서의 우월성을 옹호하는 데 평생을 바친 대표적인 학자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다.
 

흥미롭게도 그의 만년의 저서명이 '치명적 자만'(Fatal Conceit)이다. 영어 conceit는 자부심, 오만, 자만 등으로 번역될 수 있기에 정확하게 이재웅 부회장의 표현인 '오만'과 부합한다. 이 부회장은 관료와 지식인이 기업가를 저평가하는 것에 분개하고 있지만, 하이에크는 바로 그런 지적 오만이 시장경제에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강력하게 경고했다.  
 

하이에크의 관점에서는 시장경제란 각 경제주체들에 흩어져 존재하고 계속 변화하는 여러 현장 정보들을 처리하고 활용하는 정보처리시스템이다. 그런데 지식인 혹은 정부가 이런 정보시스템인 시장을 (정보처리 능력에서) 이길 수 있다는 발상이 바로 '치명적 자만'이라는 게 그의 핵심적 주장이다. 기업가에 대한 평가를 잘하는 게 생업인 시장도 존재하고 있다. 그런 만큼 김 위원장이 기업가 자질까지 더구나 공개적으로 평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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