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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역할과 ‘불편한’ 진실을 듣는 사회

지식인의 역할과 ‘불편한’ 진실을 듣는 사회

기사승인 2017. 10. 23.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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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이든 사회과학이든 과학을 공부하는 첫 번째 목적은 아마도 진리 추구일 것이다. 물론 그렇게 주장한다고 해서 진리 추구의 현실적 효용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진리 추구를 통해 우리가 오류에서 벗어나면 직간접적으로 실제 생활에서도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자연과학과 달리 사회과학에서는 실험실에서처럼 여타 조건들을 고정시킨 채 특정 변수만을 변화시키면서 실험을 반복할 수 없다. 개개인을 동의 없이 실험대상으로 삼는 것 자체가 인권에 반하기 때문이다. 단지 논리적 추론, 각종 사고실험(thought experiment), 역사적 경험 등을 통해 연구할 수 있을 뿐이지만 그래도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진리'는 사회과학에서도 존재한다.
  

자연과학에 비해 사회과학에서는 소위 잘못된 가설이 제거되는 과정이 더딜 뿐만 아니라 잘 정리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지금 천동설을 주장하면 미치광이 취급을 받겠지만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실패로 판명난 지금도 노동가치설에 근거한 착취이론을 믿으면서 혁명을 꿈꾸거나 이를 의회민주주의 속에서 실현하려는 세력이 있다. 왜 그런 실험이 실패로 끝났는지를 설명하는 이론과 경험적 증거들이 나와 있지만 대중은 무관심하다. 더구나 각 정파는 사회과학 이론을 진실 여부보다 누구에게 유리한가로 판단하려는 성향도 매우 강하다.
 

그렇다면, 사회과학을 공부한 지식인들은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진리는 스스로를 밝힌다'는 고매한 믿음을 가지고 오로지 학문에만 천착할 것인가? 물론 그런 지식인도 필요하지만 자신이 연구한 결과를 가지고 현안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적극 밝히는 지식인들이 필요하다. 그런 이들이 없다면 그 사회는 불행하게도 마치 그런 지식을 가진 지식인이 없는 것과 다름없게 될 것이다. 


최근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가 국감장에서 참고인으로 나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의 문제점을 피력했는데 국회의원들이 그의 태도를 문제 삼자 '내가 의원님의 자식이냐'고 반문해 국회의원의 갑질 여부를 둔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만약 국회가 최저임금에 관한 '진실'을 추구했더라면, 비록 이병태 교수의 견해가 일부 의원들에게 '불편'했더라도 이런 논란은 없었을 것이다. 이런 논란은 우리의 국회가 지식인의 의견을 존중하기보다는 특정한 견해가 누구에게 당장 유리한지에 너무 민감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선거에서 수천 명의 대학교수들이 자신의 평소 지론과 상관없이 대선캠프에 몰려다니는 현상을 두고 지식인 스스로가 지식인 사회가 병들었다는 뼈아픈 평가를 내렸다(전성인 서울대 교수). 사회과학의 질문들에 지적 성실성(intellectual integrity)을 가지고 천착해서 답을 찾고 현안에 대해 이를 적용해서 의견을 내야 하는데 이와 정반대로 관(官)주도 용역에 동원되는 지식 잡상인에 불과해졌다는 통렬한 비판을 했다. 


이런 자성의 목소리는 한 출판기념회에서도 나왔다(최광 성균관대 석좌교수, 『오래된 새로운 비전』). 사람들은 사고(思考)에 따라 행동하고 행동의 결과가 역사다. 역사를 바꾸려면 사고를 바꿔야 하는데 그것은 지성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 대한민국의 위기는 대한민국 지성의 위기인데 그 이유는 나라가 번영하고 국민이 잘사는 해답은 나와 있지만 우리의 지성이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거나 이를 깨달은 사람도 현실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지식인들의 식견을 잘 활용해서 바람직한 사회의 변화를 모색하려면, 지식인들의 자성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우리 사회가, 특히 정치권이 자기에게 당장 듣기 불편한 진실도 참을성 있게 끝까지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정치권력이 입맛에 맞는 말만 들으려 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도 없고 최고의 지식인들이 그런 주문에만 보조를 맞추려는 것만큼 슬픈 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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