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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500년 전 오늘, 마르틴 루터 수사가 한 일

[칼럼] 500년 전 오늘, 마르틴 루터 수사가 한 일

기사승인 2017. 10. 30.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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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정확하게 500년 전 오늘, 그러니까 1517년 10월 31일 독일의 비텐베르크(Wittenberg) 대학 신학 교수이자 어거스틴파 수사였던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비텐베르크 교회의 문에 "95개조 반박문"을 게시했다. 전언처럼 실제로 반박문을 교회의 문에 못을 박았는지 아니면 단지 주교에게 편지를 보냈는지 역사가들이 논쟁중이지만, 아무튼 그의 행위는 로마의 교황의 권위에 대한 충격적인 도전이었고 이는 결국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도화선이 됐다.
  

잘 알려진 것처럼 루터는 "95개조 반박문"에서 당시 교회의 면죄부 판매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교황이 발부한 면죄부를 사면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벌을 감면받고 연옥에서의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당시 카톨릭  교회의 주장에 대해, "교황이 '모든 형벌의 무조건적인 사면'이라고 했지만 이는 교황이 가할 수 있는 형벌에 국한되며(20조), 따라서 인간이 교황의 면죄부를 통해 모든 형벌을 면하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설교자는 모두 잘못을 범하는 것"(21조)이라고 통렬하게 비판했다.
 

그의 표현은 거침이 없었다. "돈이 헌금함에 짤랑 떨어지는 순간 영혼이 연옥으로부터 풀려난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지만"(27조) 실은 죄의 사함은 오로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28조) "진정으로 회개하는 그리스도인은 면죄부 없이도 죄와 벌로부터 완전한 사함을 받을 수 있다"(36조) "교황이 면죄부 교사들의 진상을 안다면, 그는 자기 양의 뼈와 살 그리고 그 가죽으로 성 베드로 사원을 세우기보다는 오히려 그 사원이 재로 화하기를 원했을 것임을 그리스도인들은 알아야 한다."(50조) "면죄부 판매를 위해서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 전파를 금하는 교황은 그리스도의 적이다."(53조)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고 있는 지금의 시점에 읽어보더라도 전율하게 하는 바가 있는데 카톨릭교회가 속세의 권력도 향유하던 당시에 교황을 향해 일개 수사가 감행했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강력한 항의가 이루어졌다. 당시 이런 항의를 하고도 무사하기를 바라기는 어려웠지만 특히 두 가지 요인이 그를 살렸다고 한다.
 

우선 작센의 프리드리히 3세의 보호다. 그는 비텐베르크 대학의 설립자이기도 했는데 그는 그 대학의 신학교수 루터를 넘겨달라는 교황청의 요구에 불응하고 그를 바트부르크성에 은신케 했다. 다음으로는 인쇄술의 역할이다. 라틴어로 쓰인 95개 논제는 독일어로 번역되어 2주 만에 독일 전역으로 퍼졌으며 한 달 만에 유럽 각지로 배포되었다고 한다. 그 덕분에 루터의 소책자(면죄부와 은총에 대한 설교)는 1518년 한 해 동안 14쇄, 약 1만 4000부가 인쇄되고 3년 만에 무려 23판까지 출판되었다고 한다.(이상규, 유럽을 깨운 루터, 미래한국) 이처럼 루터가 대중의 지지를 얻게 되자 교황청이 루터를 파문하고 당시 독일황제 카를 5세에게 루터를 처단하도록 압력을 행사했지만 루터를 지지하는 독일국민을 적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그를 처단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볼 때 인쇄술을 통한 루터 사상의 급격한 전파와 이로 인해 루터가 생명을 구한 것을 두고 "하나님의 준비"라고 부를 만하다.
 

그가 처단을 피한 채 성경에 대한 무지가 부패의 원인이라는 생각으로 라틴어로 된 성경을 일반 독일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독일어로 번역하고 자신의 생각을 적은 저술들을 꾸준히 꿋꿋하게 해나갔다. 그 결과 비록 그는 이단으로 몰렸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사후에도 자신의 생각대로 카톨릭교회까지도 개혁을 하게 만들었다. 1962년 제2차 바티칸 공회는 루터의 가르침의 대부분을 수용했다.
 

우리가 이렇게 500년 전 오늘 루터가 감행한 행동을 기리는 것은 지금 우리가 누리는 종교의 자유, 언론의 자유, 서구 개인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전개가 그의 그 행동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쇄술이 종교개혁에 미친 영향을 돌아보면서 인터넷이나 인공지능의 발달은 또 어떤 미래의 '마르틴 루터'를 우리 앞에 데려다줄지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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