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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가짜’주식 발행, 도덕적 해이 아닌 위법행위

[칼럼] ‘가짜’주식 발행, 도덕적 해이 아닌 위법행위

기사승인 2018. 04. 16.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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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석
필자는 우리나라에 삼성전자 같은 세계일류기업들이 몇 개만 더 출현한다면 우리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할 것으로 믿고 있고, 또 이윤을 창출해내는 기업가정신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기업의 이윤을 별 성찰 없이 세금으로 가져다 쓰려는 반기업적 태도를 강력하게 비판해왔다. 그렇더라도 대기업집단 소속 기업이라고 해서 무조건 옹호하거나 반대로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비판하는 것은 일종의 진영논리이므로 결코 바람직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최근 삼성증권으로부터 빚어진 ‘유령’ 주식 사태가 우리 사회에 반기업 정서를 키우지 않을지 걱정이지만, 그대로 묵과할 수는 없다. 이런 일이 재발하면 자본시장의 작동 자체가 심각한 위기에 처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자본시장의 발달 정도는 그 나라 경제발전의 바로미터’다. 아무리 훌륭한 기술이 있어도 ‘자본’이 없으면 그 기술이 실제로 적용되어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지 못한다. 자본시장이란 민간의 저축을 기업의 투자로 연결시켜 그런 기술의 실제 적용을 가능케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자본시장에 믿기 어려운 일이 터졌다.

삼성증권의 전산직원이 지난 6일 우리사주에 대해 원래 주당 1000원을 배당할 것을 1000주를 배당하는 바람에 28억3000만주가 삼성증권직원들의 계좌에 입고됐다고 한다. 삼성증권의 총 발생주식은 8930만주인데 그 수십 배의 ‘가짜’ 주식이 발행된 것이다. 1주당 1000주가 배당됐다면 4000만원에 가까운 돈이 들어왔기에 일반인도 착오였음을 알 텐데 증권사 직원 16명은 501만2000주를 시장에 내다팔았다. 수표를 주워도 주인을 찾지 않고 쓰면 범죄가 되는데….

증권사 측에서는 전산직원의 실수로 배당된 주식이 팔리는지 일부 직원이 테스트를 해봤다고 해명했다. 설사 이를 수용해도 시장에 가짜를 내다판 행위는 일부에서 규정하는 것처럼 ‘도덕적 해이’(moral hazard)가 아니라 엄연한 위법행위다. 사고가 나지 않도록 조심해서 운전하던 사람이 자동차보험에 들고 종전보다 부주의하게 운전하는 게 도덕적 해이다. 사고발생시 운전자의 비용분담, 무사고시 보험료 혜택 등이 도덕적 해이를 줄이지만 이는 자동차 사고가 나지 않았는데 사고가 난 것처럼 꾸미는 위법행위와는 전혀 다르다. 응당 대응도 달라야 한다.

시중에서는 삼성증권 직원들의 가짜주식 매도가 공매도 세력과 결탁해서 주가하락을 유도해 이득을 보기 위해서였다는 의혹과 함께 이런 유형의 결탁이 예전에도 있었으리라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청와대에 공매도 폐지 요구가 물밀 듯 쇄도하는 것도 공매도의 기능을 이해하지 못해서라기보다는 증권사들과 감독기관에 대한 불신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공매도란 주가하락이 예상될 때 그 주식을 특정수량만큼 빌려 나중에 주가가 내린 후 갚아 자본이득을 취하는 것이다. 공매도가 가능하면, 주가상승뿐만 아니라 주가하락 요인을 빨리 알아낼수록 돈을 벌 수 있다. 증권시장의 상장회사들에 대한 ‘감시의 눈길’이 더욱 매서워진다. 이런 결탁이 묵인되면, 공매도는 그런 순기능은커녕 주가조작 수단으로 전락한다.

현대의 증권시장처럼 복잡한 권리가 만들어지고 거래될수록 그 권리의 존재에 대한 신뢰가 생명이다. 그런데 ‘가짜’ 권리가 만들어졌고 가짜가 버젓이 유통됐다. 심지어 공매도 세력과 결탁해서 주가를 낮추기 위해 이런 거래를 했다는 ‘그럴듯한’ 의혹까지 계속 제기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벌금 중과, 신용등급 인하, 국채매입자격 박탈 등을 통해 문제를 일으킨 증권사에 책임을 묻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 어떻게 가짜주식이 발행·등록되고 거래되는 게 가능했는지, 공매도 세력과의 결탁은 없었는지, 그런 일이 다른 증권사에서도 가능한지 철저하게 조사해서 발표하고 필요한 법적책임을 묻는 한편, 그런 일이 불가능하게끔 시스템을 확실하게 재구축해서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알리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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