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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체제 불확실성’이 죽자 ‘투자’가 살아났다

[칼럼] ‘체제 불확실성’이 죽자 ‘투자’가 살아났다

기사승인 2018. 11. 12.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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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석
논설심의실장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케인즈의 가르침을 신봉했던 많은 경제학자들은 엄청난 전시수요가 사라지게 되므로 정부가 이런 전시수요에 버금가는 과감한 적자 재정지출을 하지 않으면 심각한 경기침체를 겪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케인즈의 가르침이란 “총수요가 공급을 창출하기 때문에 민간의 수요가 약할 때는 정부가 적자 재정지출을 해서라도 부족해진 총수요를 메워줘야 실업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말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미국 정부가 그런 막대한 적자 재정지출을 하지 않았지만 심각한 경기침체가 일어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민간의 투자가 빠르게 되살아났다고 한다. 미국의 경제사가 로버트 힉스(Robert Hicks)는 ‘체제 불확실성’(regime uncertainty)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체제 불확실성’이란 “향후 경제 질서에 대한 광범위한 불확실성, 특히 정부가 장래 재산권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한 불확실성”을 말한다. 힉스의 설명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에서 민간의 투자가 활발하게 이루어진 이유는 ‘체제 불확실성’을 불러온 루스벨트 대통령이 서거해서 더 이상 기업가들이 ‘체제 불확실성’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흔히 전임자 후버 대통령의 자유방임정책 대신 뉴딜 정책을 써서 대공황을 끝냈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루스벨트는 후버의 적자 재정정책을 거대한 규모로 키운 뉴딜정책을 실행했지만 오히려 보통 2년 내 회복되던 미국의 경기침체가 후버와 루스벨트의 이런 정책들로 인해 ‘대공황’으로 불릴 만큼 장기화됐다는 것이다. (머피《대공황과 뉴딜정책 바로알기》)

루스벨트 대통령은 과감한 적자재정 정책뿐만 아니라 ‘체제 불확실성’을 불러올 정책들을 펼쳤다. 반(反)시장적인 노동조합법들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기업들을 반(半)국영 카르텔로 편입시키고자 했다. 미국의 대법원이 자신의 정책을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위헌으로 판결하는 것을 막기 위해, 대법원의 구성원 수를 대폭 늘린 다음 코드가 맞는 인물들로 구성하겠다고 ‘위협’해서 그런 판결을 봉쇄시키기도 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대중들이 환호했던 정치적 카리스마가 넘치는 인물이었기에 그에 맞서는 것은 쉽지 않았기에 그의 죽음은 기업가들에게 ‘체제 불확실성’의 종식을 의미했고 따라서 민간의 투자가 살아났다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미국의 역사적 사례를 성찰해보는 것은 단순한 지적 호기심 때문이 아니다. 이런 미국의 사례가 최근 경제 투톱(원톱?)의 교체를 단행한 지금의 우리 경제에 주는 의미를 성찰해보기 위해서다.

새 경제부총리에 내정된 홍남기 내정자는 기자들과 만나 우리 경제가 ‘위기’는 아니지만 민생의 상황이 엄중함을 잘 알고 있으며 경제활성화를 위해 속도를 낼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런 그의 ‘약속’도 ‘이익공유제’와 같은 정책들이 기업가들에게 ‘체제 불확실성’을 안기는 정책 패러다임 속에서는 별 의미가 없을 수 있다. 그래서 그런 패러다임의 변화가 전제돼야 경제활성화도 기약할 수 있음을 기억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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