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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친시장적 규제입증책임제, 노동시장으로 확대 못하나

[칼럼] 친시장적 규제입증책임제, 노동시장으로 확대 못하나

기사승인 2019. 04. 01.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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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석(논설심의실장)
논설심의실장
지난달 27일 정부는 공무원이 규제의 필요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해당 규제를 폐지하거나 개선하는 ‘규제입증책임제’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기획재정부가 외국환거래·국가계약·조달 등과 관련한 규제 272건에 대해 시범적으로 규제입증책임제를 적용해본 결과, 30%정도인 83건은 규제 필요성이 설명되지 못했다고 한다. 저축은행의 해외송금 금지, 조달분야의 과도한 입찰 참가자격 제한 등이 그런 사례였는데 이런 규제들을 폐지하거나 개선하겠다고 했다. 정부는 규제입증책임제를 전 부처로 확대하겠다고 한다.

이 발표는 두 가지 점에서 놀랍다. 또 ‘규제’를 ‘자유로운 경제활동에 대한 제한’으로 인식하지 않고 지나치게 좁게 해석하고 있어서 당면한 문제들을 풀어나가기에는 미흡하고 더 나아가 ‘혁신’을 통한 성장을 가능하게 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게 아쉽다.

우선 해당 규제의 담당 공무원들조차 왜 필요한지 설명하지 못하는 규제들이 그렇게 많다는 게 놀랍다. 여타부처보다 성장잠재력을 키우는데 상대적으로 관심이 많을 핵심경제부처인 기획재정부 공무원들조차 필요성을 설명하지 못하는 규제들이 10건 중 3건에 해당할 정도라니…. 개인 재산권을 잘 보호하는 법체계는 경제적 진보를 위한 필수조건이다. 필요성조차 해명이 어려운 규제가 이렇게 많다면 재산권 보호보다는 ‘자의적’ 규제를 해왔다는 말이 아닌가.


다음으로 놀라운 것은 규제가 필요하지 않다는 입증을 기업인들이 하는 게 아니라 규제를 행하는 공무원들이 하게 했다는 점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규제가 없는 상태를 바람직한 것으로 보는 시각을 반영한 친(親)시장적 발상이다. 시장에서 불필요한 규제가 없을수록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기 위한 기업들의 다양한 실험의 폭도 넓어지고, 이를 통해 소비자들이 무엇을 선호하는지, 어떤 방식이 효율적인지가 더 쉽게 발견되고 적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공무원들은 일반적으로 더 많은 예산과 더 많은 권한을 가지려고 한다는 점에서 규제권한도 가능하면 최대한 유지하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규제와 관련된 입증책임을 기업인들이 아니라 공무원이 지도록 하는 것은 그런 속성을 감안한 친시장적인 시도다. 그렇지만 이런 시도가 기업인들이 만족할 수준으로 실행될지는 미지수다. 스스로 필요성을 설명하지 못하는 규제인데도 폐지보다는 개선을 택할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현재 정부가 추진하려는 공무원 규제입증제도는 규제를 너무 좁게 해석해서 ‘정책’이나 ‘제도’라는 이름으로 시행되는 ‘규제’들은 예외로 취급하고 있다. 저축은행의 해외송금 업무와 같은 자잘한 것들을 풀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경제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규제를 푸는 것이 더 중요하다. 최저임금이나 노동시간 ‘정책’도 노동시장 참여자들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막는다는 점에서는 엄연히 규제이고 많은 사람들의 생계가 걸린 중요한 문제다.

최저임금을 올리는 것이 취약계층의 소득을 올려주는 게 아니라 이들을 실업으로 내몰리게 한다는 게 점차 확연해지고 있다. 이들이 법정 최저임금에서라도 일하고 싶고,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라면 왜 구태여 이들의 ‘일할 자유’를 규제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또 영세자영업자들뿐만 아니라 중소기업들도 국내에서 기업을 계속하기가 어려워졌다면서 문을 닫거나 임금이 더 싼 해외로 기업을 옮겨갈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이미 영세자영업자들뿐만 아니라 중소기업들은 수차례 이런 노동시장 ‘규제’를 풀어달라고 호소했다. 정부도 문제점을 일부 시인하고 소위 ‘사회적 대타협’에 붙이기도 했지만 별로 변한 게 없다. 노동시장 ‘규제’도 고위 공무원들이 그 필요성을 입증해야 유지되는 규제입증책임제에 포함시킨다면, 우리 경제의 문제들도 한결 쉽게 풀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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