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투데이 로고
[칼럼] 절대적 평화주의

[칼럼] 절대적 평화주의

기사승인 2017. 11. 16. 09:11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톡 링크
  • 주소복사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이우근 변호사 사진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고문 (숙명여대 석좌교수)
마하트마 간디를 비폭력 무저항의 평화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은 온당치 않다. 간디는 비폭력의 위인이었을지언정 무저항의 평화주의자는 아니었다. 그는 대영제국이 두려워할 만큼 치열하게 저항했다. 간디는 식민제국과 공존하는 평화를 거부했다. 그 공존은 자유인의 평화가 아니라 노예의 굴종이기 때문이다. 간디는 비폭력의 용맹한 전사였다.

제1차 세계대전을 ‘모든 전쟁을 끝내는 전쟁’으로 만들었다고 칭송받던 베르사유 평화협정은 이미 제2차 대전의 불씨를 품고 있었다. 막대한 전쟁배상금에 시달리던 독일은 히틀러의 선동에 놀아나 군국주의로 치달았다. 영국 총리 체임벌린은 히틀러를 만나 체코 영토의 일부를 체코의 동의 없이 독일에 넘겨주는 뮌헨협정을 체결한 뒤 “우리 시대에 평화가 도래했다”고 선언했다. 그는 히틀러의 선의(善意)를 믿었다. 윈스턴 처칠은 히틀러를 노상강도에 비유하며 위장평화의 속임수를 격렬히 비난했지만, 당장 전쟁이 나는 것을 두려워한 영국인들은 처칠을 전쟁광으로 몰아붙이면서 체임벌린을 열렬히 지지했다. 그러나 그 지지는 1년도 가지 못했다.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제2차 대전의 불이 붙었고, 영국은 또다시 독일과 전쟁을 치러야 했다.

미국의 키신저와 북베트남의 레둑토는 베트남전쟁을 종식시킨 평화협정의 체결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협정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된 남베트남 국민은 지긋지긋한 전쟁이 끝났다고 기뻐했지만, 평화협정에 따라 미군이 철수한 지 2년 만에 북군은 전면 남침을 감행했고 남베트남은 결국 멸망했다. 미국이 속은 것인가, 아니면 베트남을 포기한 것인가. 속았다면 어리석은 것이고 포기했다면 비겁한 것이다. 어느 쪽이든, 키신저의 평화외교가 노벨상을 받을만한 일이었는지는 의문이다.

평화주의가 평화를 보장하지 못한다. 절대적 평화주의는 더 위험하다. 절대적 평화주의자들은 어떤 위기상황에도 무기를 들지 않는다. 제 가족을 죽이려 드는 흉악범에게도 선의를 기대하고 대화와 설득을 할지언정 결코 물리적 힘으로 저항하지 않는다. 자기 신념에는 충실할지 몰라도 제 가족에게는 무책임한 배신행위다. 그것이 국가의 운명을 책임진 정치인의 신념이라면 예삿일이 아니다.

신념윤리보다 책임윤리가 더 중요하다고 역설한 막스 베버는 “절대적 신념윤리는 무책임하며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평화는 고귀한 가치이지만 자유보다 더 소중한 지고지선의 이념은 아니다. 절대적 평화의 신념은 도덕적 근본주의의 도그마에 지나지 않는다. 자유와 평화의 길에 도그마처럼 위험한 걸림돌은 없다. 신념은 그 정당성을 스스로 증명하지 못한다. 구체적 위기상황에서 책임 있는 결단으로만 신념의 정당성을 입증할 수 있다.

이토 히로부미를 총살하고 ‘동양평화론’을 쓴 안중근은 폭력주의자인가 평화주의자인가. 절대적 평화론자들은 손사래를 칠지 몰라도 안중근의 총탄은 동양평화의 미래를 밝힌 불꽃이었다. 일본은 외적이었고 북한은 동족이지만, 핵무기를 거머쥐고 적화통일을 꾀하는 북의 세습독재정권은 대한민국의 적이다. 적에게 선의를 기대할 수 있는가. 북의 선의를 전제로 하는 일부의 감상적 평화담론에서 체임벌린과 키신저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좋은 전쟁도 없고 나쁜 평화도 없다지만, 자유를 지키기 위한 싸움은 불가피한 선택이고 핵무기 앞에 굴종하는 평화는 나쁜 평화다. 좋은 평화는 값비싼 대가를 요구한다. 자유를 지키려는 결연한 각오 없이는 좋은 평화를 얻을 수 없다. 우리만의 대칭적 무기로는 핵미사일을 막아내지 못한다. 집단안보의 동맹이 깨지면 평화를 구걸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구걸과 굴종의 나쁜 평화를 단호히 거부한 간디는 맨손으로 침략세력에 저항해야 했다. 이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정치인의 올바른 책임윤리다.

평화의 적과는 평화를 약속할 수 없다. 나치와 맺은 뮌헨협정의 교훈이다. 평화협정으로 평화를 이룰 수 있었던가. 기원전 15세기부터 기원후 19세기까지의 3500년 인류역사에서 약 8000번의 항구적 평화조약이 체결되었지만 그 평화의 지속기간은 평균 2년을 넘지 못했다(에리히 프롬 ‘건전한 사회’). “명예롭지 않은 평화는 평화가 아니다.” 영국 정치가 존 러셀의 경고다.
후원하기 기사제보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