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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윤동주의 십자가

[칼럼] 윤동주의 십자가

기사승인 2018. 02. 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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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변호사 사진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고문 (숙명여대 석좌교수)
하이데거의 생각이 옳다면, 시인은 신과 인간 사이에 있는 존재다. 2월 16일은 신과 인간 사이에 있었던 시인, 아니 지금도 분명히 거기에 있을 시인 윤동주의 73주기(周忌)이다. 윤 시인이 깊은 성찰과 저항의 시어(詩語)들을 피 토하듯 쏟아낸 시절은 조국이 일제의 식민통치에 몸서리치던 암흑시대였다.

정신과 육신을 송두리째 죄어오는 군국주의의 촉수(觸手)는 식민지의 젊은 시인에게 저항할 수밖에 없는 실존의 멍에였을 것이다.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바람이 불어’ 중) 그는 사랑도 거부했고 괴로움도 부정했으며, 심지어 슬픔에까지도 처연하게 저항했다. 일본제국주의의 광기가 자유혼을 짓누르던 지옥 같은 시대를 어찌 슬퍼하지 않았겠는가. 다만, 시대를 슬퍼하기에는 그의 고뇌가 너무도 깊고 무거웠을 게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별 헤는 밤’ 중) 시인이 별 하나 하나에 추억과 사랑과 쓸쓸함을, 그리고 동경과 시와 어머니를 새겨 넣은 하늘은 하냥 멀기만 한 슬픈 허공이었고, 그 하늘 아래의 시인은 “한 번도 손들어 보지 못한 나/ 손들어 표할 하늘도 없는 나”라는 자의식(自意識)으로 번민의 밤을 지새워야 했을 것이다.(‘무서운 시간’ 중)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들을 사랑”했던(‘서시’ 중) 윤동주의 시들은 저항의식은 물론 성찰의 깊이에서도 남달리 빼어났다. 민족의 수난기에 고뇌의 영혼으로 빚어낸 값진 결실이었지만, 그 결실에는 가혹한 희생이 따랐다.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던 시인은 “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처럼(‘참회록’ 중) 스물여덟 해의 짧은 삶을 군국주의 폭력에 저항하는 자유의 제단에 바친다. 윤동주의 성찰은 철학자의 시선보다 치열했고, 그의 저항은 독립투사의 가슴보다 뜨거웠으며, 그의 참회는 종교인의 영혼보다 경건했다.

군국주의만이 저항의 대상은 아니다. 선군(先軍)의 세습독재는 물론이고 정치·경제·문화·종교의 권력들도 원리주의적 독단(獨斷)에 빠져있는 한 그 폭력의 실체를 감추지 못한다. 성장과 풍요의 욕망으로 인간성의 다양한 가치들을 억누르는 물신(物神)의 우상, 특정 이념에 중독된 외눈박이 권력의 독선과 오만, 사람과 자연의 생태적 본성을 거스르는 과학기술의 무절제한 질주, 양심과 영혼의 자유를 폐쇄적 교리(敎理)의 사슬에 얽어매는 종교적 근본주의 따위도 마땅히 거부해야 할 저항의 대상임에 틀림없다. 윤 시인이 제국주의 폭력에 순교자처럼 저항했듯이.

자신의 운명을 미리 알았던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스물다섯 살 창창한 나이에 쓴 첫 시(序詩)의 첫 구절을 어찌 ‘죽는 날’로 시작할 수 있단 말인가!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면서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붉은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십자가’ 중) 구원의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어두운 하늘 밑, 갈급한 자유혼은 예언이라도 하듯 십자가 앞에서 죽음을 불러낸다. “종점(終点)이 시점(始点)이 된다. 다시 시점이 종점이 된다.”고 읊었듯이(‘종시’ 중) 희생의 마지막 자리이자 부활의 새 자리인 십자가를 그리워하던 시인은 불과 6개월 뒤면 울려 퍼질 광복의 종소리를 듣지 못한 채 일제의 감옥 안에서 마지막 숨을 거둔다. 괴로웠던 사나이, 그제야 비로소 행복해졌을까, 예수 그리스도처럼? 73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시인은 순수한 영혼의 고뇌를 안고 다시금 우리에게 다가온다. 서슬 퍼런 이념의 도그마가 자유의 터전을 유린하는 곳에, 민족의 깃발 아래 온 민족이 고통받는 자리에, 시인은 또 다른 성찰과 저항의 핏줄기를 뿜어내며 다가오고 있다.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붉은 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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