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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두 개의 초상화

[칼럼] 두 개의 초상화

기사승인 2018. 07. 23.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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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변호사 사진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고문 / 숙명여대 석좌교수
자금성은 하나의 거대한 도시다. 수백 년 전에 무슨 기술과 장비로 그렇듯 웅장한 도성을 쌓을 수 있었을까. 그 턱없이 큰 스케일의 궁성을 짓기 위해 얼마나 많은 목숨이 희생되어야 했을까. 그에 비하면 우리네 임금님들이 크나큰 궁궐을 좋아하지 않은 것은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그러나 자금성 끝자락에 있는 후원은 뜻밖에도 초라하다. 우람한 황성에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작고 비좁은 뒤뜰은 문화적 심미안과 미적 완성도에서 우리 창덕궁의 비원에 견줄 바가 못 된다.

만리장성에 올라 총 길이의 수만 분의 일도 안 되는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데도 비지땀을 흠뻑 흘려야했다. 높고 낮은 산등성이를 줄곧 오르내리면서 너비 4m가 넘는 돌 벽을 만리에 걸쳐 쌓아간다는 발상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장성을 쌓는 동안 100m당 평균 30여명이 죽어갔다고 한다. 만리라면 4000km, 자그마치 120만명의 시체가 성벽 밑에 묻혀있는 셈이다. 진시황은 북방의 호족(胡族)이 진나라를 멸망시킨다는 망진자호(亡秦者胡)의 헛소문에 놀라 호족을 막으려고 장성을 쌓았다지만, 정작 진나라를 멸망시킨 호(胡)는 호족이 아니라 시황의 아들 호해(胡亥)였다. 그의 무능과 부패가 나라를 결딴냈으니 말이다.

장성 쌓기의 대역사는 만주족이 일으킨 청나라 때 중단됐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만주족은 이 장성을 타고 넘어와 중원을 함락했다. 장성을 쌓느라 부질없이 숱한 목숨만 희생되고 말았던가. 그러나 만리장성은 오늘날 수많은 외국 관광객을 불러들이는 중국 제일의 관광자원이 되어있다. 가여운 민초들의 희생이 후손들의 손에 달러뭉치를 듬뿍 쥐어주는 관광지원이 되었으니, 장성 밑에 묻힌 120만 목숨은 그런대로 희생할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할 것인가. 자본보다 인민을 더 아낀다는 사회주의 중국에서 말이다.

서태후의 여름별장으로 쓰이던 이화원에는 290만㎡의 땅을 파고 또 파서 만든 거대한 인공호수와 그 파낸 흙으로 쌓아올린 만수산이 있다. 황제를 허수아비로 만들고 권력을 한손에 틀어쥔 서태후는 청일전쟁을 치르는 동안에도 이화원을 호화롭게 꾸미는 공사에 열중했다. 유례없이 표독한 한 여인의 짧은 쾌락을 위해 또 얼마나 많은 백성이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져 강제노역에 시달리다가 야윈 몸을 호수바닥에 뉘어야 했을까.

자금성과 만리장성을 거쳐 이화원을 뒤로 하고 윤동주 시인의 고향인 연변 용정골에 이르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시인의 모교인 옛 대성중학교 기념관에서 마주친 초상화는 충격과 전율이었다. 일제의 어두운 감옥에 갇혀 철창을 부여잡고 밖을 응시하는 윤 시인의 모습을 대하는 순간, 차마 마음껏 터뜨리지 못하는 눈물샘을 달래기 위해 잠시 밖으로 몸을 피해야 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괴로워하다가 일제의 감옥에서 스물여덟 해의 슬픈 삶을 거둔 식민지의 불행한 시인, 불사장생의 불로초도 알지 못했고 천하통일의 큰 포부도 품지 못했던 윤 시인의 애틋한 초상화는 지금도 고뇌와 성찰의 영혼을 안고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붉은 이념으로 뒤엎은 중국대륙을 문화혁명의 반문화적 폭력으로 또다시 검붉게 물들인 ‘반신(半神) 우상’은 천안문 높은 문루에 내걸린 초상화 속에서 인민들을 굽어보고 있다. 그 눈매가 지금 한반도의 남북을 아래위로 훑어보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누군가는 그 우상의 눈길에 존경과 신뢰를 보내는 듯한데, 집안현 통구의 광개토왕 비(碑)에 ‘중화민족 비석 예술의 진품’이라고 써놓은 안내문이나 길림 용담산성 입구에 ‘고구려인은 결코 조선인이 아니다’(高句麗人幷非朝鮮人)라고 쓴 비문을 보고도 존경과 신뢰가 지속될 수 있을까. 신뢰는커녕 그 천박한 역사왜곡에 분노보다 차라리 경멸의 느낌이 앞섰다. 천안문 초상화 속 우상의 눈길에 비하면 애잔하기 그지없는 철창 속 윤동주 초상화의 시선은 얼마나 맑고 순수한가. 그 시리도록 투명한 눈길을 가슴에 품고 겨레의 영산(靈山) 백두산으로 향한다. 우리 쪽 동파가 아니라 중국 쪽 서파로 오르는 것이 못내 마뜩찮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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