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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직은 평화를 노래할 때가 아닙니다

[칼럼] 아직은 평화를 노래할 때가 아닙니다

기사승인 2018. 11. 15.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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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변호사 사진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고문 / 숙명여대 석좌교수
장마당을 헤매는 어린 꽃제비들이 오늘도 쓰레기더미를 뒤지며 음식찌꺼기를 찾고 있습니다. 그대여, 아직은 평화를 노래할 때가 아닙니다. 중국 대륙 어느 외진 구석에 숨어든 탈북동포들이 지금도 애타게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곳에서 붙잡혀 북한에 되넘겨진 탈북자들은 공개 처형되거나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간다고 합니다. 수용소의 벽이 헐리고 저들이 자유의 대기를 숨 쉴 때까지, 우리는 아직 평화를 노래하지 못합니다.

얼마 전 북한은 집단체조 ‘빛나는 조국’을 공연했습니다. 수만명의 어린이들이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기계처럼 움직이는 몸짓은 소름끼치도록 정교했다고 합니다. 무슨 뜻일까요? 집단체조에 동원된 어린이들이 모진 연습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는 사실입니다. 한여름 내내 뜨거운 햇볕 아래 대소변을 참아가며 혹독한 연습에 내몰리는 동안, 지쳐서 기절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유엔 인권청문회에서 “집단체조의 뒷면에 피눈물이 있다”는 증언이 나왔겠습니까? 어린이들의 눈에서 피눈물을 자아내는 집단체조가 때마다 벌어지고 있는데 그대여, 벌써 평화의 노래를 부르렵니까?

세계의 언론과 인권단체들이 전하는 소식에 따르면, 평양 밖의 북한주민들이 겪는 가난과 부자유의 고통은 비참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3만명이 넘는 동포들이 조상 대대로 살아온 정든 고향을 등지고 몰래 떠나왔겠습니까? 누군가는 저들을 배신자라고 꾸짖었다지만, 그처럼 동포의 아픔을 헤아리지 못하는 이념의 도그마가 깨어지지 않는 한, 아직은 평화를 노래할 때가 아닙니다. 어느 혈통의 커다란 동상 앞에 줄지어 늘어선 인민들이 집단으로 절을 올리는 의식이 사라지기까지는 아직 평화의 시절이 아닙니다.

북한이 핵무장을 포기하면 저들의 통치체제를 보장해준다고 합니다. 3대 세습독재의 전체주의 유일체제를 보장해주는 대가로 얻는 평화…. 그 평화의 의미는 과연 무엇인지, 무거운 회의(懷疑)가 가슴을 짓누릅니다. 억압받는 북한주민들의 아픔을 외면한 채 우리만 속 편히 평화의 찬가를 부를 수 있겠습니까? 마음 졸이게 하던 한반도전쟁설이 수그러든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북한이 보유한 핵탄두 수십 기는 아직 그대로 있습니다. 비핵화의 길은 여전히 살얼음판입니다. 지금도 120만명의 북한 청년들이 꽃다운 청춘 13년 그 긴긴 세월을 병영에서 전쟁연습에 바치고 있습니다. 저들의 일그러진 젊음이, 그 섬뜩한 정열이 줄곧 남쪽을 흘기고 있는데, 무슨 노랫말로 벌써 평화시대를 구가(謳歌)하렵니까?

매국노 이완용도 동양평화를 명분으로 경술년 국치(國恥)조약에 도장 찍었고, 미치광이 히틀러도 평화협정에 서명한 뒤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종이쪽지에 적힌 평화가 나라를 지켜주지 못합니다. 무슨 선언문이나 협정서 한 통 달랑 받아들고 평화의 찬미를 부를 수야 없지 않겠습니까? 함경북도 산간벽지에서 황해남도 어촌마을까지 고을고을마다 자유투표소가 세워지고, 이 정당 저 단체에서 나온 후보자를 주민들이 제 마음껏 골라 투표하는 날이 올 때까지는 아직 평화를 노래하지 못합니다. 남한 보수정권의 10년 적폐를 낱낱이 파헤치듯 북한 수구(守舊)정권의 70여년 적폐 또한 샅샅이 도려내는 날이 오기까지, 그리하여 이 땅의 남과 북에 드리운 음울한 이념의 그림자가 아침안개 걷히듯 스러질 때까지, 우리는 아직 평화의 곡조를 읊조릴 수 없습니다.

남녘에서 인권투쟁과 민주화운동에 청춘을 불사른 그대들이여, 북녘에도 인권과 민주의 바람이 일렁이는 날이 오기까지는 아직 평화의 노래를 부를 때가 아닙니다. 땅굴 깊숙이 숨겨진 핵무기와 생화학무기가 몽땅 쓸모없이 되고, 북한 곳곳의 정치범수용소들이 죄다 무너져 내린 자리에 자유와 인권의 물결이 넘실거릴 때, 그제야 비로소 우리는 참 평화의 송가를 목 놓아 부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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