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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파워]기세 꺾인 행동주의 펀드…조양호 한진칼 회장 승기 잡나

[마켓파워]기세 꺾인 행동주의 펀드…조양호 한진칼 회장 승기 잡나

기사승인 2019. 03. 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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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KCGI 주주제안 자격없다"
사외이사 추천 등 물 건너가
표 대결서도 승리 가능성 희박
의결권자문사들도 한진 손들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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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주주 일가의 전횡을 방지하고, 낙후된 지배구조 문제를 개선해 기업가치를 증대시키겠다.” 한진칼의 2대주주인 KCGI가 지난 1월 지배구조 개선을 목표로 내건 슬로건이다. 지난해 11월 한진칼은 유한회사 그레이스홀딩스가 자사 주식 9%를 보유하고 있다고 공시했다. 그레이스홀딩스의 최대주주는 국내 사모투자펀드(PEF)인 KCGI로, 대표의 이름을 따 ‘강성부펀드’로 불리며 업계에 파란을 일으켜왔다. 외국계의 전유물로 인식되던 행동주의 펀드의 영향력이 토종 PEF까지 확대된 상징적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KCGI는 이후 한진칼의 지분을 12.8%까지 확대하며 단숨에 2대주주로 올라서며 대주주로서의 경영참여를 본격화했다. 특히 오는 27일 열릴 예정인 한진칼 주주총회를 통해 사외이사 감사 후보자를 추천하고, 사측이 제시한 이사 보수한도 50억원을 30억원으로 낮추는 제안을 내놓는 등 조양호 회장 등 사측과의 표대결에 전의를 불태웠다. 한진칼은 대한항공과 한진, 진에어, 정석기업 등을 거느린 한진그룹의 지주사다.

결론적으로 KCGI의 기세는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2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21일 “주주제안을 하기 위한 6개월 보유요건을 갖추지 못했다” 이유로 KCGI의 주주제안을 제한했다. 이로써 막대한 지분을 직접 사들인 토종 행동주의 펀드의 유례없는 경영참여 행보에 당분간 브레이크가 걸릴 수밖에 없게 됐다는 평가다.

앞서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소수 주주의 권익보호라는 입법취지를 고려해 두 차례에 걸쳐 KCGI의 주주제안 등 대주주로서의 권리를 인정했다. 하지만 한진칼이 ‘6개월 보유요건’을 이유로 항소에 나섰고, 결국 KCGI는 주총 소집청구는 물론이고 자신들이 추천한 사외이사를 추천조차 할 수 없게 됐다.

KCGI로선 주주제안은 막혔지만, 주총 의안에 대한 표 대결 시도는 여전히 가능하다. 다만 이 경우에도 사측이 내건 의안에 찬반 의견 표시만 가능해, 애초 기대했던 지배구조 개선 시도는 어려울 전망이다. 막상 표 대결도 실익을 얻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현재 조양호 회장을 비롯한 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은 28.83%에 달한다.

KCGI의 독자행동이 수포로 돌아간 상황에서 남은 시선은 국민연금으로 쏠린다. 국민연금은 한진칼 지분 6.7%를 보유한 3대주주다. 하지만 KCGI와 국민연금의 지분을 모두 합친다 해도 19.4%에 불과해 조 회장 측에 10% 가까이 밀린다. 지분 3.92%를 보유한 크레디트스위스를 제외한 나머지 기관과 개인의 지분 47.65%가 통일된 목소리를 내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기관과 개인의 표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의결권 자문사들도 잇따라 한진칼 측의 손을 들어주는 모양새다. 한진그룹은 국민연금의 의결권 자문사인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이 이번 주총 의안으로 상정된 석태수 대표이사의 사내이사 재선임에 대해 찬성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석 대표는 1984년 대한항공 입사 이후 그룹 내 요직을 두루 거쳤고, 조 회장의 최측근 인사로 평가받는다.

앞서 지난 18일 글로벌 자문사인 ISS도 KCGI가 내건 주주제안에 모두 ‘반대의견’을 내며 한진칼의 손을 들어줬다. ISS는 특히 KCGI가 추천한 사외이사 후보인 조재호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와 김영민 변호사의 임명 제안에 대해 “회사 발전 및 지배구조 개선에 기여할 수 있다는 데 설득력 있는 근거가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다만 ISS는 석 대표의 연임안에 대해선 반대 의견을 냈다. 지난해 10월 조 회장이 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되는 등 석 대표가 사내이사로서 ‘선관주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KCGI의 주주제안 자체가 무산되고, 실제 표 대결 시에도 승리 가능성이 희박해지면서 초기 지분확대 때보다 기세가 한풀 꺾인 것은 사실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이 같은 토종 행동주의 펀드의 지분 확대가 국내 기업의 경영관행에 경종을 울리는 선례가 됐다는 평가다. 이왕겸 서스틴베스트 이사는 “국내서 보기 드문 토종 행동주의 펀드가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기업의 실제 변화를 이끌어냈다는 것만으로도 고무적인 사례”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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