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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의 극적 재구성] ‘가짜 부모’의 40년 악행에서 해방된 ‘원주 귀래 사랑의 집’ 피해자들

[기사의 극적 재구성] ‘가짜 부모’의 40년 악행에서 해방된 ‘원주 귀래 사랑의 집’ 피해자들

기사승인 2015. 05. 21.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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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귀래 사랑의 집' 사건 피해자들이 가해자들과의 친자관계를 단절하는 판결을 받았다. /사진=픽사베이

 

“편하게 목사라고 부르세요 

 

, 목사님이세요? 그럼 더욱 믿을 수 있겠네요

 

아이를 숨처럼 랑 하겠다는 의미의 목사입니다

 

좋은 일 많이 하셔서 언론에도 여러 차례 소개됐다고 들었습니다

 

, 내 자식처럼 키웠습니다. 실제로 아이들을 내 호적에 올렸지요

 

, 그러셨군요. 그런데 왜 10년째 당신의 죽은 아이를 병원 냉동고에서 찾아가지 않았나요?”

 

/사진=픽사베이

 

여러 번 버스를 갈아탔다.  

 

엄마는 순철을 어디론가 데려갔다. 순철이 바라보는 세상은 늘 고요했다. 바쁘게 움직이는 차들을 눈으로 쫓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엄마의 입과 어떤 아저씨의 입이 바쁘게 움직였다. 태어날 때부터 소리를 듣지 못한 순철은 그저 셋이 앉아있는 방의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엄마와 이야기하는 아저씨와 여러 아이들이 찍힌 사진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환한 미소의 아저씨와 아줌마 그리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멍하니 사진기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자세히 보고 있는데 엄마의 손길이 느껴졌다.

 

엄마는 흐르는 눈물로 엄마의 말을 대신했고 그대로 방을 나섰다. 순철은 멍하니 엄마의 뒷모습만 바라보다 방안에 혼자 남겨졌고, 잠시 후 아저씨가 아줌마와 방으로 들어왔다. 아줌마의 거센 손길에 이끌려 질질 끌리다시피 순철은 아이들이 있는 다른 방으로 옮겨졌다.

 

아이들 중에 몇 살 터울 형이 있었다. 순철은 형에게 이 곳을 배웠다. 듣지 못했지만 글로 대화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계속 이 곳으로 온다고 형이 말했다. 아이들 대부분은 지적장애 아동이었고 순철처럼 정신이 성한 아이는 형 밖에 없었다.

   

/사진=픽사베이
다시 아저씨와 아줌마가 방에 들어와 형과 대화했다. 아줌마의 손짓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아줌마의 얼굴을 살피니 얼굴색이 변했다. 옆에 서 있던 아저씨가 갑자기 형의 뺨을 때렸다. 형은 공중에 붕 떴다 구석으로 나자빠졌다. 순철은 바로 '이 곳'이 어떤 곳인지 알 수 있었다.

 

아침이 되었다. 아줌마가 순철의 머리채를 잡고 깨웠다. 부스스한 눈으로 아줌마를 따라가니 밥통과 국이 보였다. 아줌마는 손짓으로 식판을 가리키며 음식을 푸라는 모양을 했다. 잠시 후, 걸을 수 있는 아이들이 형을 따라 나왔고 순철은 그들의 식판에 밥과 국을 떠줬다. 그 순간 아저씨가 순철의 배를 발로 찼다.

 

순철은 입이 벌어진 채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아저씨가 식판으로 순철의 머리를 때리며 손짓으로 설명했다. ‘이렇게 많이 주면 남은 애들은 어떻게 할 거냐라는 의미라는 걸 바닥에 쓰러진 순철은 알 수 있었다.

 

아이들 배식이 끝났다. 이젠 일어서지 못하는 아이들의 밥을 챙겨줘야 했다. 순철은 누워있는 아이의 입으로 조금씩 음식을 넣어줬다. 씹거나 삼키지 못하는 아이들의 입에서 도로 음식이 나왔다. 바닥이 더러워졌다. 뒤에서 지켜보던 아줌마가 순철의 뒤통수를 때렸다. 순철은 누워있는 아이의 품에 얼굴을 부딪쳤고 가져간 음식은 방에 널브러졌다.

 

아이들 식사가 끝나면 한명씩 머리를 감기고 이를 닦였다. 이 일에 익숙한 형이 순철을 도왔다. 점심은 없었다. 배고파 할 시간도 없이 다른 일을 계속 했다. 집이 깨끗해 보이도록 청소했고 아이들의 옷을 빨았다. 이제 아홉이 된 순철이 하기에는 너무 많은 일이었다. 저녁이 돼도 일은 끝나지 않았다.

 

/사진=픽사베이


'이 곳'에 적응할 무렵 순철은 새벽 다섯시에 일어났다. 일어나 화분이나 꽃에 물을 줬다. 형은 집에서 기르는 흑염소를 산에 데려갔다. 이 집에서 일을 하는 사람은 형과 순철이었다. 아저씨와 아줌마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순철은 참을 수 없었다. 이제 아홉 살인 순철이 참는다는 의미와 고통이라는 개념을 알 리 없겠지만 몸이 반응했다. 순철은 도망가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실행에 옮겼다. 

 

하지만 곧 다시 잡혀왔다. 아저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순철을 때렸다. 욕을 했겠지만 순철이 듣지 못했을 뿐이었다. 아저씨는 순철의 목덜미를 잡고 화장실로 끌고 갔다. 물이 가득 찬 욕조에 순철의 머리를 처박았다. 숨이 막힌 순철은 있는 힘껏 저항했지만 아홉 살 소년의 힘은 아저씨의 두 팔을 이길 수 없었다. 순철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떴을 때 순철의 옷이 벗겨져 있었다. 아저씨가 바늘을 잉크에 찍어 순철의 몸을 찔러댔다. 순철은 비명을 질렀다. 아줌마가 순철의 입을 막고 몸을 잡았다. 아저씨는 순철의 몸에 글씨를 새겼다.

 

장애아동입니다. 연락처는 000-000입니다. 연락 부탁드립니다

 

순철은 몸에 새겨진 글씨를 비누로 지우려 해봐도 지워지지 않았다. 손으로 긁으면 상처만 더 심해질 뿐이었다. 몇 차례 아저씨에게 더 맞은 순철은 한동안 말없이 아저씨와 아줌마가 시키는 일을 했다.

 

그러던 중 누워있던 아이가 죽었다. 아침에 밥을 먹이려 깨웠는데 숨을 쉬지 않았다. 떨리는 몸을 이끌고 아줌마에게 사실을 알렸다. 아줌마는 발로 아이의 몸을 툭툭 치더니 방을 나갔다. 늦은 저녁이 될 때까지 아이는 죽은 자세 그대로 누워있었다.

 

아저씨가 비닐봉지를 들고 방에 들어갔다. 빨래를 하고 있던 순철은 비닐봉지에 뭔가가 담겨져 아저씨의 두 팔에 들린 채 차로 옮겨지는 걸 지켜봤다. 방에 있던 아이는 사라졌고 아저씨는 다음날 아침에 집으로 돌아왔다.

 

순철은 두 번째 탈출을 시도했다. 담을 넘어 달리고 달렸다. 하지만 곧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순철의 몸에 새겨진 글을 보고 다시 아저씨와 아줌마의 품으로 돌려보냈다. 경찰에게 고개를 조아리는 아저씨는 문을 닫자마자 순철을 때렸다. 막대기로 맞던 순철은 너무 아파 얼굴을 가렸으나 아저씨는 더욱 강하게 얼굴을 내리쳤고 순철의 손가락은 부러졌다. 부러진 손가락은 그 이후에도 치료를 받지 않아 비정상적인 상태로 아물었다.

 

/사진=픽사베이

 

또 한 아이가 죽었다. 아이들은 죽을 수밖에 없었다. 밥과 국이 나오는 날이 별로 없었다. 반찬 없이 밥과 물만 주는 날이 많았다. 집에 누군가 찾아올 때야 과일을 먹을 수 있었다. 아이들은 자다가 죽고 앉아있다 죽고 갑자기 쓰러져서 죽었다. 그럴 때마다 아저씨는 아이를 차로 옮겼다. 아침이 되면 아저씨는 돌아왔고 죽은 아이는 사라졌다. 

 

순철은 세 번째 탈출을 시도했다. 의식적으로 문신을 가렸다. 사람들을 피했다. 하지만 피곤에 지친 순철은 잠이 들었고 지나가던 행인이 어린 순철을 데리고 아저씨와 아줌마에게 왔다. 아저씨의 주먹과 발길질에 쓰러진 순철에게 아줌마가 다가왔다. 아줌마가 뒤에서 순철의 몸을 잡았다. 아저씨가 바늘로 순철의 눈을 찔렀다. 이미 많이 맞은 터라 순철은 반항할 힘도, 소리 지를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눈에서 새빨간 피가 계속 흘렀지만 아무도 순철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 순철의 오른쪽 눈은 영영 앞을 볼 수 없었다.

 

지옥 같은 날들이었다. 여러 번 탈출을 시도했지만 다시 잡혀왔고 순철은 이가 다 부러지도록 아저씨에게 맞았다. 있던 아이는 죽어나갔고 새로운 아이가 들어왔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하루하루였다. 하지만 순철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로 악마의 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보살피던 아이 중 한명을 병원에 입원시켰는데 병원에서 죽어버렸고 아저씨와 아줌마는 아이의 시신을 10년 넘게 찾아가지 않았다. 돈이 아깝단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이를 이상하게 여긴 언론사가 취재를 하다 아저씨와 아줌마의 악행이 드러나게 된 것이었다.

 

사람들에 둘러싸인 순철은 사람들의 모습이 낯설었다.

순철이 경험한 아저씨와 아줌마의 모습과 달랐다.

 

사람들의 눈은 감시와 혐오, 의심의 눈빛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입은 거센 욕설과 비명이 나오는 곳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손은 순철을 때리고 목을 조르는 손이 아니었다.

 

아저씨와 아줌마의 모습과 너무도 다른 사람들의 모습이 낯설었지만 순철은 곧 사람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의 도움을 받아 악마의 사슬에서 벗어나 사람의 품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아직도 순철은 힘없이 죽어간 아이들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았다. 사라진 아이들의 작은 손을 잡고 잠들었던 기나긴 밤을 지울 수 없었고, 순철의 몸과 마음에 새겨진 흉한 상처는 아저씨의 주먹과 아줌마의 날카로운 눈을 기억나게 했다. 

 

/사진=픽사베이


 <기사 원문> 

 2012년 장애인 인권침해로 크게 문제가 됐던 원주 귀래 사랑의 집사건 피해자들이 가해자들로부터 해방됐다. 

 

서울 대법원은 지난 14일 피해자 3인이 가해자들을 상대로 친생자관계부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한 것에 대해 원고와 피고는 친생자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1심과 2심의 판결을 확정했다.

 

원주 귀래 사랑의 집사건은 목사를 사칭하는 장모씨가 미신고 복지시설을 설립하여 장애인을 모집하였고, 장애인의 아버지를 자처하며 21명의 장애인을 친자로 등록한 사건이었다.

 

이 과정에서 장씨는 장애인에게 학대와 감금을 일삼았으며 친자로 등록한 장애인의 기초생활수급비 등을 받아 생활했다.

 

장씨는 장애인의 몸에 이름과 연락처를 강제로 새기고 말을 듣지 않으면 구타 및 치아를 뽑는 등 잔혹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지만, 10년 동안 병원 시체보관소에 방치한 법적 자식인 장애인 때문에 덜미를 붙잡혔다.

 

춘천지방법원 원주지원은 지난 2013년 장씨에게 사기, 상해,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 사체 유기 등의 혐의로 징역 36월을 선고했다.

 

한편, 피해자들의 보호와 법률지원에 앞장서온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피해자들의 안전과 완전한 회복을 끝까지 지원할 것이며 미신고 시설에서 일어나는 장애인 학대와 인권침해에 적극 개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사의 극적 재구성] 실제 사건을 소설 형식으로 재구성 한 기사입니다. 따라서 기사에 등장하는 이름은 가명입니다. 재구성한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 점 유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투톡톡] 아시아투데이 모바일 버전에서는 '기사의 극적 재구성'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http://m.asiatoday.co.kr/kn/atootalk.html#2015.05.21


아시아투데이 조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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