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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뒷담화] 권오준 포스코 회장, ‘순혈주의 타파’...어느때 보다 어려운 퍼즐 맞추기

[취재뒷담화] 권오준 포스코 회장, ‘순혈주의 타파’...어느때 보다 어려운 퍼즐 맞추기

기사승인 2015. 05. 30.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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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적개선·재무구조개선 보다 더 우선되야 할 문제점
'영포라인' '공기업마인드' 등 그룹 내부 '편가르기식·나몰라식' 내부 인식부터 바꿔야
포스코 권오준
포스코가 ‘비상경영쇄신위원회’를 발족시켜 그룹 전반의 고강도 경영쇄신을 실시하기로 했다. 취임 2년차인 권오준 포스코 회장의 그룹 구조조정 의지가 수위를 높이는 모습에 예상보다 심각한 포스코의 내부 분위기를 대변하고 있는 모습이다.

현재의 포스코는 수년째 어려움에 빠져 있는 철강업계의 맏형이라는 책임감과 수익성악화에 따른 투자자들의 곱지 않은 시선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이런 문제점들, 구체적으로 경영적 차원의 문제점들은 사실 핵심이 아닐 수도 있다. 다른 여타 부실 기업들과 사업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제조기업들의 성적표와 비교해도 나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정준양 전 회장이 포스코를 이끌던 시절 계열사를 늘리며 몸집을 키웠던 것에 대한 여파가 지속되고 있지만 권 회장은 이를 해결하기 위한 자구노력을 지난 1년간 진행하고 있고, 그 노력은 어느 정도의 성과도 보이고 있다. 100%도 넘지 않는 부채 비율이었지만 소위 잘나가던 시절에 비해 높아진 재무위험을 낮추기 위한 현금확보 차원의 자산 매각이 성사됐다. 또 중국발 악재와 시장침체로 악화된 수익성 개선을 위해 월드프리미엄 제품과 포스코만의 기술력을 사업 전면에 내세운 솔루션마케팅으로 나름의 돌파구를 찾았다.

포스코만의 기술인 파이넥스 기술을 수출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고,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로부터 조단위의 투자도 약속받았다. 미래 먹거리 사업중 하나로 여기는 리튬 소재 사업 진행상황도 나쁘지 않다. 과거부터 쌓아온 기술력으로 자동차용 프리미엄 강재의 판매도 늘어나고 있다.

실적 수치로 봐도 마찬가지다. 포스코는 연결기준으로 지난 1분기 4.84%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지난해 4분기 4.58%보다는 소폭 상승한 수준이다. 요즘과 같이 제조업 경기 자체가 침체된 상황에서 5%에 가까운 마진을 남겼다는 것은 최악의 성적이라 말하기 힘들다. 특히 별도기준으로만 보면 9.16%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최근 가장 핫(hot)하게 잘 나간다는 현대제철의 영업이익률(별도) 9.84%와 별반 차이가 없다.

낙제점이라고 치부해 버리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포스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키우는 것은 포스코라는 존재감 때문이다. 대한민국 산업 발전의 근간이 됐던 철강 산업을 이끌어 온 장본인이고, 저가 중국산 제품의 공습에서 가장 선봉에 서 국내 철강산업을 지켜낼 맏형이 포스코다.

하지만 올해 포스코는 재계에 대한 대대적인 사정바람의 시작점이 됐다. 이는 포스코에게 ‘부패’라는 낙인을 안겼다. 포스코건설 비자금 문제를 거쳐 정 전 회장이 인수합병을 했던 성진진오텍이 권 회장의 부담을 키우고 있고 질타를 당할 만큼 나쁘지 않은 실적임에도 눈총을 받고 있다.

포스코플랜텍 포항 본사
포스코가 인수하기 전부터 자본잠심상태였던 성진지오텍은 포스코에 편입된 이후 포스코 계열사인 (구)포스코플랜텍과 합병을 했지만 그 부실의 늪은 오히려 커져가기만 했다. 권 회장이 취임한 이후 3000억원이 넘는 자금지원과 자체적인 구조조정에도 재무상황은 악화 돼 왔다.

검찰 수사가 전 성진지오텍 대표였던 정전도 세화엠피 회장으로 확대되면서 경영정상화를 추진하던 포스코도 포스코플랜텍에 대한 더 이상의 지원을 할 수 없게 됐고, 결국 자연스럽게 워크아웃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일각에서는 검찰수사가 그룹 전체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한 ‘꼬리자르기’라는 시선도 나왔지만 사실 포스코에게는 다른 카드가 없었다.

포스코플랜텍의 워크아웃 결정 시기와 맞물려 권 회장은 그룹의 쇄신을 위해 비상경영쇄신위원회를 조직했다. ‘사즉생’의 각오로 모든 계열사 대표들이 사표를 제출하며 쇄신을 위한 의지를 다지고 나섰다.

재계에서는 위원회가 계열사에 대한 구조조정에 속도를 높일 것으로 예상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대우인터내셔널의 지분 매각과 관련된 문건이 공개되면서 이런 관측은 더 힘을 받게 됐다. 이 과정에서 전병일 대우인터내셔널 사장이 공개적으로 이 문서에 대해 반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계열사 간 조직원 간의 의견충돌도 조금씩 발생하는 조짐이 나오는 대목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포스코 그룹 내부에서는 언제 정리대상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커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까지 한번도 없었던 계열사 법정관리(포스하이알)과 워크아웃 사태도 불안감을 키우는데 한몫 하는 모습이다. 시장은 포스코의 계열사 관리가 예전같이 될 수 없다는 판단에 포스코 계열사들의 신용등급을 일제히 내리고 있다.

미얀마가스전
대우인터내셔널 미얀마가스전
포스코의 위기는 저조한 실적, 경영상황 악화에 따른 부실 확대, 시장침체, 리더십 부재 등 경영적인 요소가 아닌 내부 조직원들의 생각에서 나타나는 것일 수 있다. 대우인터내셔널 사례처럼 그룹과 계열사간 간극이 넓어지고, 일반 직원들 사이에 불안감이 커지는 것은 그 어떤 악재보다 더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포스코는 이미 내부적인 악재를 껴안고 수십 년째 돌아가고 있다. 포항제철소로 철강사업을 시작한 이해 뼈 속 깊이 박혀 있는 순혈주의와 공기업 마인드가 그것이다. 그리고 이런 요소가 현재 위기의 시발점이 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조직이든 소위 ‘라인’이라는 배타적 조직문화는 있기 마련이지만 포스코의 라인은 조직의 성장을 가로 막고 있다는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라인문화가 작금과 같은 부패와 부실을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지는 이미 오래다.

얼마전 비상경영쇄신위워회는 포스코의 순혈주의를 타파하고 외부인재를 적극 받아들여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를 낸 것도 이미 자신들도 문제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작업이 언제 빛을 낼지는 미지수다. 공기업에서 민간기업으로 거듭난 것이 15년이 됐지만 여전히 포스코 내부에는 ‘영포라인’ 등 폐습에 가까운 ‘라인’ 문화는 존재하고 있다. 일부직원들은 여전히 ‘철밥통’으로 불리는 공기업의 무사안일 주의가 알게 모르게 몸에 베어 있다.

이는 단순히 권 회장의 의지, 각 계열사 대표들의 의지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뿌리 깊은 종양과 같은 부분이다. 포스코의 48개 계열사 임직원들 모두가 앞장서서 해결해야 할 과제이기 때문이다.

권 회장은 취임 2년차에 들어서며 재무구조개선, 경쟁력 강화, 미래경영 동력 발굴 과 같은 경영상 과제보다 포스코의 성장에 걸림돌이 되는 포스코의 태생적 악습을 깨 부셔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권 회장이 소기의 성과를 낼지 아니면 패장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권 회장은 지금 어느 때 보다 어려운 퍼즐을 맞추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지리한 싸움이 되겠지만 권 회장이 반드시 풀어야 내야 할 퍼즐이기도 하다.

어떤 묘수가 됐든 정공법이 됐든 그룹 전체에 혼란은 불가피하겠지만 권 회장은 국가 경제의 초석이 된 포스코라는 거대 기업을 정상화 하는 작업을 늦추거나 포기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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